[오키나와역사] 57. 카데시가와(嘉手志川) 전설을 통해 본 쇼하시의 남산 정복

물과 권력을 장악한 쇼하시(尚巴志)의 통합 전략

남산(南山)을 무너뜨린 경제 전쟁과 민심 이탈

삼산 통일을 완성한 자원 정치의 결정적 순간

쇼하시의 삼산 통일ⓒ오키나와포스트 AI 삽화 이미지

 

류큐 왕국 건국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카데시가와(嘉手志川) 전설은 단순한 구비 설화가 아니다. 이 전설은 1429년 삼산(三山) 통일을 완성한 쇼하시(尚巴志)가 군사력보다 앞서 자원과 민심을 장악함으로써 권력을 획득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정치 서사이다. 류큐 건국은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생존 자원의 통제에서 출발했다.

 

삼산 시대 남산(南山) 왕국의 중심지는 현재 오키나와현 이토만시(糸満市) 일대였다. 이 지역에서 농경 사회의 생존을 좌우하던 핵심 자원이 바로 카데시가와라 불린 샘이었다. 산호석 지반이 대부분인 오키나와 본도 남부에서 안정적인 담수는 곧 권력이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이 샘은 농업 생산과 인구 유지의 기반이었고, 남산 왕권의 실질적 버팀목이었다.

 

북산(北山)을 제압한 이후 쇼하시는 마지막 경쟁자인 남산 왕 타로마이(他魯毎)를 상대로 즉각적인 군사 충돌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타로마이가 사치와 물욕에 약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전설에 따르면 쇼하시는 대외 무역으로 확보한 화려한 황금 병풍을 제시하며 카데시가와의 수리권을 요구했다. 타로마이는 눈앞의 부에 현혹되어 백성의 생존권을 넘기는 치명적인 판단을 내렸다.

 

카데시가와의 관리권을 확보한 쇼하시는 이를 군사적 압박이 아닌 선택적 공급의 방식으로 활용했다.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은 곧 충성의 증표가 되었고, 남산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생존을 보장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이는 무혈에 가까운 민심 이동이었다. 지도자가 공공 자원을 사적으로 거래했다는 사실은 타로마이의 통치 정당성을 급속히 붕괴시켰다.

 

1429년 남산이 무너졌을 때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쇼하시의 군사 행동은 최종 확인 절차에 가까웠다. 카데시가와 전설은 류큐 통일이 단순한 무력 정복이 아니라 경제 기반과 민생을 선점한 결과였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삼산 시대는 종식되고 류큐 왕국은 중앙집권 국가로 출범했다.

 

카데시가와 전설은 류큐 정치 문화의 핵심을 드러낸다. 권력은 무기보다 자원에서 나오며, 통치는 지배가 아니라 생존의 보장이라는 인식이다. 쇼하시는 교역으로 축적한 부를 정치 자산으로 전환하고, 물이라는 필수 자원을 통해 정통성을 획득했다. 이는 해양 왕국 류큐가 경제와 외교를 통치의 중심에 두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결정적 사례다.


 

카데시가와 전설은 류큐 왕국 건국을 무력 중심 서사에서 경제·자원 정치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게 한다. 이를 통해 류큐가 왜 해양 교역과 민생 기반을 중시한 국가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으며, 동아시아 정치사 속에서 류큐의 독자적 통치 모델을 조명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쇼하시의 승리는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였다. 카데시가와 전설은 권력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류큐 왕국은 물과 사람을 잃지 않는 방향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450년 왕국의 출발점이 되었다.

작성 2026.01.25 10:24 수정 2026.01.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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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