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어”라는 말이 상처가 될 때: 중학교 1학년 섭식장애 아이들에게 놀이치료가 필요한 이유

걱정에서 나온 말이 왜 아이를 더 멀어지게 할까

말로 묻기 전에 놀이로 들어야 할 때

놀이치료가 아이의 속도를 지켜 주는 이유

[놀이심리발달신문] “밥 먹어”라는 말이 상처가 될 때: 중학교 1학년 섭식장애 아이들에게 놀이치료가 필요한 이유 조우진 기자 

가장 흔한 말, 가장 아픈 말

 

“밥 먹어.”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자주, 가장 쉽게 꺼내는 말이다. 걱정에서 나온 말이고, 사랑이 담긴 말이다. 그러나 섭식장애를 겪는 중학교 1학년 아이에게 이 말은 때로 칼날처럼 꽂힌다. 먹지 않는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은 보지 못한 채, 결과만을 다그치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섭식장애 아이들은 대체로 말을 잘 듣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기대와 시선, 평가 속에서 자기 몸을 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영역으로 ‘음식’을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먹는 행위는 단순한 생리적 행동이 아니라 감정과 관계, 불안을 조절하는 도구가 된다. 그래서 “밥 먹어”라는 말은 “왜 너는 제대로 못하니”라는 메시지로 번역되기 쉽다.

 

이 시기의 아이는 아직 자기 상태를 설명할 언어를 갖추지 못했다. 불안하다고, 무섭다고, 숨이 막힌다고 말하지 못한다. 대신 먹지 않는다. 이 행동은 반항이 아니라 신호다. 문제는 어른이 그 신호를 행동 교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때 시작된다.


 

왜 중1에 섭식장애가 늘어날까

 

중학교 1학년은 인생에서 가장 급격한 전환기 중 하나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며 환경이 바뀌고, 관계의 규칙도 달라진다. 또래 집단의 영향력은 커지고, 비교와 평가에 대한 민감성도 높아진다. 여기에 사춘기가 겹치며 몸의 변화가 시작된다. 이 시기 아이들은 자신의 몸을 낯설게 느낀다. 살이 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 체형에 대한 비교, 타인의 시선에 대한 불안이 자연스럽게 커진다. 

 

이 불안이 정서적으로 정리되지 못하면 음식으로 향한다. 덜 먹으면 안심이 되고, 체중이 줄면 통제감을 느낀다. 그렇게 섭식장애는 조용히 시작된다. 문제는 이 초기 단계에서 주변이 이를 ‘편식’이나 ‘다이어트’ 정도로 치부하기 쉽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1 섭식장애는 단순한 식습관 문제가 아니다. 정서 발달의 어려움, 관계 스트레스, 자기 가치감의 흔들림이 겹쳐 나타난 결과다. 그래서 접근 방식 역시 달라야 한다.

 


왜 놀이치료인가

 

섭식장애 아이들에게 “왜 안 먹니?”라고 묻는 순간, 대화는 막힌다. 아이 스스로도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유는 있지만 말로 정리할 수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놀이치료다. 놀이치료는 아이에게 말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가장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언어인 ‘놀이’를 존중한다. 인형 놀이, 역할 놀이, 그림, 상징적 표현 속에서 아이의 마음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직접 “먹기 싫어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인형이 밥상을 뒤엎고 숨는 장면 속에 아이의 감정이 담긴다.

 

특히 섭식장애 아이들은 통제에 민감하다. 먹는 양, 시간, 종류를 스스로 결정하려는 강한 욕구가 있다. 놀이치료는 이 통제 욕구를 억압하지 않는다. 오히려 놀이 안에서는 아이가 주도권을 가진다.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를 스스로 선택한다. 이 경험이 아이에게 안전감을 준다.

 

전문가들은 놀이치료가 섭식장애를 ‘고치는 기술’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감정을 다룰 수 있는 힘을 키워 주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면, 음식에 집중되던 긴장은 서서히 풀린다.

 


놀이가 만들어 내는 변화의 방향

 

놀이치료의 변화는 눈에 띄지 않게 시작된다. 처음에는 웃음이 조금 늘고, 치료자와의 관계가 안정된다. 그다음 불안 반응이 줄고, 자기 표현이 늘어난다. 이 모든 과정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식사 행동의 변화가 가능해진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 속도가 답답할 수 있다. 당장 체중이 늘지 않고, 식사량이 눈에 띄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섭식장애 치료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조급함이다. 억지로 먹이려 할수록 아이는 더 강하게 통제하려 든다.

 

놀이치료는 아이의 속도를 지켜 준다. 아이가 준비되지 않은 변화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안전한 관계 안에서 스스로 변화를 선택할 수 있게 돕는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재발을 줄이는 이유다. 중요한 점은 놀이치료가 부모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많은 경우 부모 상담이 병행된다.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어떤 말이 도움이 되고 어떤 말이 상처가 되는지를 함께 배우게 된다. “밥 먹어” 대신 “지금 많이 힘들어 보이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관계는 달라진다.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섭식장애를 겪는 중학교 1학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훈육이 아니다. 더 많은 설명도 아니다. 먼저 필요한 것은 이해다. 그리고 그 이해는 아이의 언어를 알아듣는 데서 시작된다. 아이의 언어는 말이 아닐 수 있다. 놀이일 수 있고, 침묵일 수 있고, 거부일 수 있다. 그 언어를 행동 문제로만 보지 않을 때, 치료는 비로소 길을 찾는다. 놀이치료는 그 길을 열어 주는 하나의 방법이다.

 

“밥 먹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한 번 더 멈춰 생각해 보자. 이 아이는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섭식장애 치료의 출발점은 음식이 아니라 관계다.

작성 2026.01.25 10:55 수정 2026.01.2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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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