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대신 인형을 건넸다: 섭식장애 중1 청소년, 놀이치료가 마음을 여는 방식

먹지 않는 행동은 ‘의지’가 아니라 ‘언어’다

중학교 1학년, 마음과 몸의 균형이 가장 흔들리는 시기

변화는 관계에서 시작된다

[놀이심리발달신문] 숟가락 대신 인형을 건넸다: 섭식장애 중1 청소년, 놀이치료가 마음을 여는 방식 조우진 기자 

치료실에서 숟가락은 내려놓는다

 

섭식장애를 겪는 중학교 1학년 청소년을 만나는 치료실에서, 치료자는 종종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대신 인형을 건넨다. 먹는 문제를 다루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아이가 아직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의 결을,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만나겠다는 선택이다. 이 시기의 섭식장애는 음식 자체보다 ‘통제’와 ‘안전’의 문제로 나타난다. 먹지 않는 행동은 고집이 아니라, 아이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언어다.

 

“왜 안 먹니?”라는 질문은 합리적이지만, 아이의 내부에는 닿지 않는다. 이유를 묻는 순간, 아이는 방어한다. 방어가 강화될수록 음식은 더 강력한 통제의 수단이 된다. 그래서 치료실에서는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먹는 이유를 캐묻기보다, 아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놀이’로 듣는다. 그 선택이 치료의 출발점이 된다.


 

중1, 섭식장애가 조용히 시작되는 이유

 

중학교 1학년은 발달적으로 매우 취약한 시기다. 환경은 급변하고, 또래 관계는 정교해지며, 사춘기의 신체 변화가 시작된다. 몸은 커지는데 마음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비교와 평가의 시선이 늘어날수록, 아이는 자기 몸을 낯설게 느낀다. 이때 불안을 다루는 기술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면, 불안은 음식으로 옮겨간다.

 

초기 섭식장애는 종종 ‘식욕 부진’이나 ‘다이어트’로 오해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서 조절의 어려움이 핵심에 놓여 있다.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중1 청소년에게, 음식은 가장 즉각적이고 확실한 통제 수단이 된다. 덜 먹으면 안심이 되고, 거부하면 주도권을 되찾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과정을 단순한 습관 교정으로 접근하면 치료는 지연된다.

 


놀이치료가 선택되는 이유

 

놀이치료는 아이의 발달 수준에 맞는 의사소통 방식을 존중한다. 특히 중1 청소년은 말과 감정 사이의 간극이 크다. 감정은 크지만, 그것을 문장으로 정리할 능력은 아직 자라는 중이다. 이때 놀이치료는 감정을 압축하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인형 놀이, 역할 놀이, 상징적 장면은 아이의 내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인형이 밥상을 뒤엎거나 숨어버리는 장면에는, 아이가 느끼는 위협과 회피가 담긴다. 

 

치료자는 그 장면을 해석하기보다, 안전하게 유지한다. 평가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는다. 이 비평가적 태도가 아이의 긴장을 낮춘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주도권’이다. 섭식장애 청소년은 통제에 민감하다. 놀이치료에서는 아이가 무엇을 할지 결정한다. 어떤 인형을 고를지, 이야기를 어디까지 진행할지, 언제 멈출지를 아이가 선택한다. 이 경험은 아이에게 안전감을 회복시킨다. 안전이 회복되면, 변화의 여지가 생긴다.

 


변화의 방향은 관계에서 시작된다

 

놀이치료의 효과는 즉각적인 식사량 증가로 측정되지 않는다. 변화는 먼저 관계에서 나타난다. 치료자와의 신뢰가 쌓이고, 아이의 표정과 호흡이 안정된다. 그 다음에야 감정 표현이 늘어난다. 이 순서를 건너뛰면, 음식 문제는 다시 강화된다.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놀이치료는 종종 부모 상담과 병행된다. 

 

부모는 ‘먹이기’의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아이의 신호를 해석하는 법을 배운다. “밥 먹어” 대신 “오늘 많이 긴장돼 보인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할 때, 관계의 공기가 바뀐다. 이 변화는 느리지만, 재발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임상 현장에서 관찰되는 공통점은 명확하다. 놀이치료를 통해 아이가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되면, 음식에 집중되던 통제 욕구는 서서히 약화된다. 먹는 행동의 변화는 결과이지, 출발점이 아니다.

 


숟가락을 내려놓을 용기

 

놀이치료의 핵심은 비평가적 태도다. 치료자는 장면을 서둘러 해석하거나 교정하지 않는다. 대신 안전하게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긴장은 낮아지고, 신뢰가 형성된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주도권이다. 놀이치료에서는 무엇을 할지, 언제 멈출지를 아이가 결정한다. 이 경험은 통제에 민감한 섭식장애 청소년에게 중요한 안전감을 제공한다.

 

섭식장애 중1 청소년을 돕는 일은, 더 많이 먹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먼저 더 안전해지게 만드는 일이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인형을 건네는 선택은, 치료를 미루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앞당기는 전략이다. 아이의 언어를 아이의 방식으로 듣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결과를 앞당기려다 과정을 놓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놀이치료는 그 방향을 바로잡는다. 마음이 열리면, 행동은 따라온다. 인형을 건네는 순간, 치료는 이미 시작된다.

 

 

작성 2026.01.25 19:24 수정 2026.01.2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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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