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을 두드린 죄악, 닫힌 눈의 심판
— 소돔의 밤이 오늘을 비추다
창세기 19장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도덕적 붕괴의 장면을 담고 있다. 두 천사가 소돔 성문에 이르렀을 때, 도시의 공기는 이미 악취로 가득했다. 롯은 그들을 알아보고 급히 영접했다. 그의 눈에는 경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도시의 밤은 곧 죄의 손길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경고가 임박했음을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소돔은 스스로 심판을 불러오고 있었다.
롯은 천사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며 ‘거리에서 밤을 새지 말라’고 간곡히 말했다. 이는 단순한 환대가 아니라, 이 도시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의 절박한 경고였다. 소돔의 밤은 이미 도덕이 무너진 밤이었다. 그럼에도 롯은 가족을 지키고 손님을 보호하려 했다. 한 개인의 의로움이 도시 전체를 막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한 사람의 마음을 끝까지 주목하고 계셨다.
오늘날도 사회의 도덕이 무너지고 ‘죄’가 ‘문화’로 둔갑하는 시대 속에서, 작은 의로움이 얼마나 귀한지를 이 장면은 묻는다. 롯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 세상을 향한 경고의 불빛을 켜셨다.
밤이 깊자 소돔의 남자들이 롯의 집을 에워쌌다.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는 그들의 외침은 인간의 타락이 얼마나 극단으로 치달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장면은 단순히 성적 타락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주권’을 하나님 위에 두려는 반역의 선언이었다.
죄는 언제나 문을 두드린다. 그 문이 개인의 마음이든, 가정이든, 도시든 상관없다. 문을 여는 순간, 죄는 그 안을 지배한다. 오늘 우리 사회도 ‘개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죄의 문을 활짝 열어두지 않았는가. 롯의 집 앞에 몰려든 군중은 곧 오늘의 세상이다.
천사들은 롯을 보호하기 위해 군중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 문밖 사람들을 눈멀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 애썼더라”(창19:11). 그들은 물리적 시력을 잃었지만, 그보다 더 오래된 영적 실명이 이미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히 ‘벌’이 아니라, 스스로 눈을 감은 인간에게 주어진 ‘결과’였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보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다. 진리와 거룩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죄를 ‘진보’로 포장한다. 창세기 19장의 이 장면은 “영혼의 시력을 되찾으라”는 하나님의 시대적 경고로 읽혀야 한다.
롯의 집 앞에서 벌어진 일은 4천 년 전의 사건이지만, 그 그림자는 오늘의 도시에도 길게 드리워져 있다. 하나님은 여전히 문을 두드리시는 분이다. 그러나 죄 또한 끊임없이 문을 두드린다. 어느 문이 열릴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창세기 19장 1–11절은 단지 ‘심판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비의 마지막 기회’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님은 지금도 눈먼 세상 속에서 ‘롯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신다. 오늘 우리는 그 부르심 앞에서 어떤 문을 열고, 어떤 문을 닫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