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의 하루는 사랑으로 시작해서 잔소리로 끝납니다.”
대학생과 고등학생, 유치원생 등 3명의 자녀를 둔 엄마 A의 고백이다. 학기 중에는 모두 집을 떠나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겨울방학이라 모두 집에 있다 보니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자녀들과 하루를 함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서 바라볼 때 사랑스럽던 자녀들이지만,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는 잔소리만 한 것 같아 허탈하다.
아스팔트 맘의 조기 개입
엄마 A가 자녀들에게 잔소리하는 것은 안전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가 다치는 것이 두려워, 그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잔소리를 한다. 어린 자녀가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하는 여러 가지 행동으로 다칠까 전전긍긍한다. ‘그렇게 하면 안 돼’, ‘하지 마!’, ‘위험해!’ 등의 말을 입에 달고 지낸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은 어떤 의사결정에 관여한다. 어느 학원에 갈지, 어떤 활동을 할지, 누구와 사귈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등등의 의사결정에 관여한다. 대학에 다니는 자녀의 생활과 결정에 염려하는 눈길을 넘어서 부모의 의견을 중심으로 조언하려고 한다. 과거 자신의 경험과 자기가 생각하는 미래의 위험을 막으려는 행동이다.
엄마 A는 이러한 자신의 잔소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잔소리가 자녀의 성장을 위한 동력이 되기보다는 갈등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잔소리가 자녀를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일으키는 원천임을 알았다. 자녀를 위해 하는 잔소리가 자녀의 발전을 막고 있음을 알았다. 장애를 맞닥뜨리면서 성장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겪은 여러 가지 고통은 미래 인생의 밑거름이 된다. 성장하면서 겪는 경험이 축적되어야 긴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엄마 A는 장애에 맞닥뜨린 자녀가 상처를 받을까 봐 기겁하면서 사소한 장애도 치워주려고 하였다. 자녀의 앞길을 아스팔트처럼 평평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어린 자녀가 겪어야 할 사소한 경험을 엄마가 대신해 주거나 막고 있었다. 청소년인 자녀가 성장하면서 겪어야 할 고통과 갈등을 없애기 위해 엄마가 대신 그 짐을 지려 했다. 자녀에게 장애가 될 것 같은 것은 사소한 것이라도 몸소 치워주고자 몸부림치는 아스팔트 맘과 같았다. 자녀가 안전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녀의 인생에 조기 개입하였던 것이었다. 자녀 스스로가 결정하고 경험하고 성찰하면서 성장할 기회를 엄마가 열정적으로 박탈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녀의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엄마의 만족을 위한 행동들이었다.
잔소리를 바꿔보자
엄마의 잔소리가 자녀의 성장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엄마 A의 고백처럼, 엄마의 잔소리가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성공 경험과 실패의 경험을 할 수 없어 건강한 성장을 방해할 것이다. 자녀가 안전지대(Comfort Zone)를 벗어날 용기를 낼 수 없다. 그것은 급격히 발전하는 기술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경험하지 못하고, 부모가 과거의 경험으로 한정된 지식으로 만든 정원에 갇힌 채 청소년기를 보내게 될 수도 있다. 자녀에게 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자녀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겨울방학에 엄마가 하는 잔소리를 바꿔보기를 권하고 싶다. 자녀에게 말을 할 때 녹음을 해보자. 자녀의 말에 엄마는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살펴보자. 하루가 지난 저녁에, 자녀와의 대화를 정리해 보자. 엄마의 말이 자녀를 성장하게 할 수 있는 말인지 아닌지를 고민해 보자. 자녀를 성장시키는 말을 하기 어렵다면, 부정적인 말이나 지시만을 포함하는 말, 감정을 갖고 내뱉은 말을 삼가는 자신을 그려보자. 판단이나 평가의 시선이 아닌,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그런 후에 자녀의 정체성이나 존재감을 존중하는 말이나, 자녀에게 기대하는 엄마의 입장으로 말을 해보자. 쉽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자녀들이 느끼는 엄마와의 정과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해 더 크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엄마의 말이 갖는 힘
엄마가 자녀에게 하는 말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엄마의 잔소리를 자녀의 행동을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까지도 바꿀 수 있다. 엄마의 잔소리는 자녀의 행동이나 생각을 통제하는 말이 아니라, 자녀의 미래를 열어주고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의 말이 되어야 한다. 엄마는 자녀들이 정서적으로 가장 밀착하고 싶어 하며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상대다. 포근하고 따뜻해야 한다. 한 개인으로서 엄마가 힘들기에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정서적인 목마름을 채워주어야 하는 것은 엄마의 운명이다. 아빠도 비슷하다.
사람은 자주 듣는 말에 따라 인생이 된다는 말이 있다. 어떤 말을 자주 듣는가에 따라 그 인생을 살아가려는 마음이나 행동이 은연중에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은 반복해서 듣는 말과 같이 정체성을 만든다. 그 말이 자기가 가장 믿고 따르는 엄마의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말투를 사용한 아이들은 10대 청소년이 되어서도 엄마 목소리가 계속 나를 책망한다고 했다는 연구도 있다. 자녀들은 엄마의 잔소리를 말에 담긴 의미와 톤, 그리고 감정까지도 물려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자녀는 엄마가 말하는 대로 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기도 한다.
자녀는 엄마와 아빠가 자주 하는 말을 들으며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자란다. 그 말의 내용에 따라 자기가 당연히 그 말에 따른 일생을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웬만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부모와의 관계는 정서적인 친밀감을 유지하면서 성장한다. 필자의 경험이다. 엄마의 말과 태도는 자녀에게는 듣는 힘과 보는 힘을 제공한다. 엄마는 자녀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말과 생활을 제공한다. 자녀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면, 부모는 그에 맞는 방향으로, 자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톤으로 말을 해야 한다. 부모가 자주 하는 말이 아이의 운명을 바꾼다.
엄마 A는 자신의 경험으로 얻은 지혜가 자녀의 성장을 막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녀가 어떤 성장을 하고 있는지를 모른 채, 하나의 행동이나 말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잔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엄마 A는 자기의 존재 이유가 자녀의 행복한 삶을 위한 든든한 기반이어야 하는데, 실제는 자기의 만족을 위해서 자녀를 활용한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했다. 이제 그녀는 자녀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을 품은 말을 하기로 했다. 자녀는 계속 성장 중이기 때문에,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결과적인 판단과 평가를 보류하기로 했다. 자녀가 부모에게서 듣는 말에 영향을 받는 만큼, 자녀에게 하는 잔소리를 사랑의 말로 바꿔보기로 했다. 그것이 신이 주신 선물인 자녀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생각했다. 자녀가 부모와 함께 행복한 순간을 경험할 때, 부모는 더 행복한 순간을 경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