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미호와 도깨비, 그리고 할머니의 따뜻한 기억
- 어른을 위한 전래동화의 새로운 변주
『사라진 할머니』는 단순히 할머니를 찾아 떠나는 아이들의 모험담이 아니다.
작가 성기홍(효린파파)과 줄리 김은 ‘창문’이라는 장치를 통해 현실과 상상,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사를 구축했다.
이 창문은 마치 옛이야기의 문고리처럼 독자를 전통의 세계로 초대한다.
현실의 할머니 집에서 출발한 남매는 어느 날 사라진 할머니를 찾다 낯선 창문을 발견한다. 그 너머로 펼쳐진 세상은 우리가 기억 속에 간직한 한국 전래동화의 마법적 세계다.
이들은 토끼, 도깨비, 호랑이, 구미호 같은 익숙한 존재들과 마주치며, 그 속에서 현실보다 더 진실한 ‘가족의 의미’를 찾아간다.
작품 속 창문은 단순한 판타지의 통로가 아니라, 세대와 문화를 잇는 은유적 장치다.
작가는 “잃어버린 옛이야기를 다시 열어보라”는 메시지를 담담히 전한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전래 캐릭터들의 새로운 해석이다.
도깨비는 더 이상 무섭거나 괴팍한 존재가 아니라, “간식을 주면 뭐든 거래하는 유쾌한 존재”로 등장한다.
호랑이는 힘이 세지만 반칙을 일삼는 익살스러운 캐릭터이며, 구미호는 악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계를 잇는 안내자’로 재해석된다.
특히 구미호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남는다.
현실 세계로 돌아온 남매의 할머니 집 거울 속에 비친 ‘구미호의 꼬리’는, 이야기가 끝나도 여전히 남아 있는 미스터리와 상상력의 여운을 남긴다.
이러한 캐릭터의 재구성은 어린 독자에게는 흥미를, 성인 독자에게는 전통과 상징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전래동화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세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한다.
‘사라진 할머니’라는 설정은 단순한 모험의 출발점이 아니다.
그것은 곧 사라져가는 전통, 잊혀가는 가족의 기억을 상징한다.
아이들이 마법 세계를 여행하며 겪는 모든 사건은, 사실상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과정”으로 읽힌다.
할머니의 팥죽 냄새, 도깨비의 문고리, 구미호의 꼬리 등 작품 속 상징들은 우리 내면에 남아 있는 유년의 그리움을 자극한다.
특히 작가 성기홍은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한국의 옛이야기를 다시 들려주고 싶은 마음”을 작품 속에 녹였다.
따라서 『사라진 할머니』는 단순한 동화책이 아니라, 이민 1.5세대의 정체성과 뿌리를 향한 회귀라는 개인적 서사이기도 하다.
『사라진 할머니』는 겉보기엔 아동용 그림책이지만, 그 서사와 정서는 분명 성인을 위한 동화다.
작가는 전래동화의 외형을 빌려, ‘세대 간의 단절’과 ‘문화의 단속적 기억’을 이야기한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가 “미처 챙기지 못한 마법 가방”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은,
모험의 끝이 아니라 세대 간 이야기의 이어짐을 상징한다.
그것은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이야기의 유산’이다.
『사라진 할머니』는 결국 묻는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로 다음 세대와 이어질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이 책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닌, 한국적 서사의 아름다운 복원으로 자리매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