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은 아이의 선택이 아니었다
아이 방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문은 닫혀 있고, 하루가 끝날 때까지 아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날이 반복된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 점심은 먹었는지, 친구와는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묻는 질문은 늘어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피하거나, 아예 반응하지 않는 침묵뿐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사람은 아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였다. 이혼 후 1년 6개월, 서류 정리가 끝나고 가정에 남은 사람은 아버지와 고1이 된 아이 둘뿐이다. 가장이 되어야 했고, 동시에 부모 역할까지 떠안았다. 아이는 말이 없어졌고, 아버지는 더 많은 말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괜찮아?”, “왜 말 안 해?”, “학교에서는 말하잖아.”
그러나 질문은 쌓일수록 아이를 더 조용하게 만들었다. 침묵은 반항도, 무례도 아니었다. 선택적 함묵증을 가진 청소년에게 말이 나오지 않는 순간은 ‘선택’이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 아버지는 오랫동안 혼자서 아이의 침묵과 씨름해야 했다.
이혼 이후 가정에 남은 것들
이혼은 서류로 끝났지만, 가정의 변화는 그 이후에 시작됐다. 배우자가 떠난 자리는 단순히 한 사람의 부재가 아니라, 역할과 감정의 공백을 함께 남겼다. 아이에게는 말없이 의지하던 존재가 사라졌고, 아버지에게는 ‘버텨야 할 이유’만 남았다. 선택적 함묵증은 주로 불안과 긴장, 통제할 수 없는 환경 변화와 맞물려 나타난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시기는 이미 학업, 또래 관계, 정체성 문제로 압력이 큰 시기다. 여기에 가정 해체라는 사건이 겹치면, 아이의 불안은 말보다 먼저 몸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말하지 않는다는 증상은 그 결과 중 하나다. 하지만 많은 부모, 특히 한부모 가장의 위치에 선 아버지들은 이 침묵을 ‘태도 문제’로 오해하기 쉽다.
말을 하지 않으면 상황을 통제할 수 없고, 통제가 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그 불안은 다시 질문과 지시, 훈계로 이어진다. 아이는 더 긴장하고, 말은 더 나오지 않는다. 이 악순환 속에서 아버지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
아이의 침묵과 아버지의 불안
선택적 함묵증을 겪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특정 상황에서는 말을 할 수 있다. 집에서는 말이 거의 없지만, 친구 한두 명과는 문자로 소통하거나, 특정 어른 앞에서는 짧게 말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부모는 혼란스러워진다. “할 수 있으면서 안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적 함묵증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불안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말이라는 기능 자체가 차단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환경은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다. 문제는 이 안전감이 아버지의 노력만으로 바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혼 이후 한부모 가정의 아버지는 경제적 책임, 생활 관리, 정서적 돌봄을 동시에 떠안는다.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지만, 아이의 반응은 그 확신을 계속 흔든다. 말이 없다는 이유로,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스스로를 실패한 부모처럼 느끼게 된다. 이 감정이 누적될수록, 부모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훈육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
선택적 함묵증 청소년을 둔 가정에서 부모교육의 핵심은 ‘말하게 만드는 법’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된다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질문을 줄이는 법, 반응을 기다리는 법, 그리고 침묵을 개인적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말해 봐”라는 요구가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신호다. 이 신호는 언어보다 행동에서 전달된다. 같은 공간에 조용히 머무는 시간, 결과를 묻지 않는 관심, 성과와 무관한 일상적 지지. 이런 경험이 쌓여야 아이의 불안은 서서히 낮아진다.
아버지에게도 교육이 필요하다. 혼자 감당해 온 시간만큼, 아버지 역시 지쳐 있다. 부모교육은 아이를 고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아버지가 덜 외로워지기 위한 학습이다. 누군가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정리하고, 실패가 아니라 과정임을 확인하는 자리다. 그 과정을 거쳐야 아이에게도 여유 있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침묵 속에서도 연결은 가능하다
선택적 함묵증을 가진 청소년과 단둘이 남은 가정에서, 가장 먼저 고립되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아이는 침묵으로 자신을 보호했고, 아버지는 말로 관계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관계는 말의 양이 아니라, 불안을 견디는 힘에서 회복된다. 부모교육은 정답을 알려주는 과정이 아니다.
다만, 지금 하고 있는 방식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이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아버지는 더 빨리 변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지만, 실제로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아이에게 말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아버지가 스스로를 탓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늘어날수록, 가정의 공기는 조금씩 달라진다. 침묵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생긴다. 그때 비로소 말은, 다시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