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허베이성(河北省) 바오딩시(保定市)의 작은 현(县), 보예현(博野县)은 오늘날 중국 전체 고무 컨베이어벨트 시장의 약 20~30%를 생산하는 압도적인 산업 클러스터이다. 광산, 발전소, 항만, 건설 현장에서 끊임없이 굴러가는 검은색 고무 벨트들의 상당수가 이곳에서 출발하게 된다. 그러나 이 '중국 컨베이어벨트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여 년 전, 1970년대의 특별한 역사적·사회적 토양 속에서 탄생하였고, 그렇게 성장했다.

보예현에 고무 산업의 씨앗이 뿌려진 1970년대는 중국이 본격적인 산업 국가로 도약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먼저 국가 정책의 바람이 지극히 조용했던 보예현에 불어오게 된다. 당시 중국 정부는 '오소공업(五小工业, 소형 철강·석탄·비료·시멘트·기계 공업)' 정책을 통해 지방 차원의 소규모 중공업 발전을 독려했다. 농업현이었던 보예현에도 농업 기계화와 지역 경제 활성화의 과제가 주어졌고, 이는 단순히 농사만 짓던 지역에 '공장'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때를 같이하여 화북 지역의 산업적 숨결이 거칠어지던 시기였다. 인근 베이징, 톈진, 그리고 바오딩 자체의 공업 발전은 막대한 자재 운송 수요를 창출했고, 특히 석탄의 고향인 산시성과의 접근성은 컨베이어벨트가 절실히 필요한 광산 산업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주요 생산지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현지 수요를 충당할 지역 기반의 공급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생적 혁신이 시작되었다. 국영 대기업의 기술과 자본이 아닌, 지역의 자생력이 산업을 일으켰다. 농업 공동체가 모은 자본, 인근 대도시 국영 고무 공장에서 슬그머니 흘러나온 기술과 경험(때로는 은퇴 기술자들의 지식), 그리고 농기계 수리 등을 통해 쌓인 기초적인 고무 가공 노하우가 결합했다. 이들은 소규모 가내수공업 스타일의 공장을 열어 단순한 고무 호스나 부품을 만들던 것에서, 점차 광산과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컨베이어벨트'라는 더 크고 전문적인 제품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의 거대한 물결은 이 작은 싹에 강력한 생장제 역할을 하게되었다. 계획 경제의 틀에서 벗어나 시장의 수요에 직접 반응할 수 있게 되면서, 보예현의 가내수공업 수준의 소규모 공장들은 본격적인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활로를 찾게 되었다.
오늘날 보예현의 풍경은 그 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수백 개의 고무 제조업체가 밀집해 있으며, 그 규모는 가족 경영의 중소기업부터 현대화된 대규모 공장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들은 단순한 생산을 넘어, 원료 혼합, 강철 코드 제조, 벨트 성형, 가공, 판매에 이르는 완벽한 수직 계열화된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중국 전역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는 보예현은 중국 내 고무 컨베이어벨트 시장의 20~30%를 공급하며, 특히 중국 내 광산(석탄, 철광석)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제품은 내마모성, 내열성, 방염성 등 다양한 특수 사양으로 발전했으며, 중국의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와 글로벌 '일대일로' 건설 현장까지 수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아주 지극히 조용했던 농촌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컨베이어벨트 산업 클러스터로 성장한성공의 핵심 요인은 무엇일까?
먼저 완벽한 클러스터 효과를 들 수 있겠다. 한 마을 안에서 모든 공정과 부품을 해결할 수 있는 집적화는 비용 절감과 빠른 납기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며, 이것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점이다. 두번째로는 탄력성과 적응력으로 무장한 다양한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이다. 수많은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는 소량의 특수 주문에도 민첩하게 대응하며, 치열한 경쟁으로 지속적인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술의 진화를 들 수 있겠다. 1970년대의 수동 장비에서 반자동화, 그리고 최근에는 품질 안정성을 높이는 자동화 라인과 친환경 공정 도입으로 진화하고 있고, 또 그래야만 생존하기에 그러한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컨베이어벨트 산업 클러스터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영광의 뒤편에는 도전이 있다. 환경 규제 강화는 전통적 고무 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며, 저가 경쟁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독일, 일본의 글로벌 강자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술 혁신과 브랜드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현지의 많은 선도 기업들은 이제 ISO 인증 획득, R&D 센터 설립, 스마트 제조 시스템 도입을 통해 '보예 제조'에서 '보예 창조'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실리콘 밸리가 아닌, 고무 벨리(Rubber Valley)의 이야기
보예현의 이야기는 첨단 기술의 실리콘 밸리가 아닌, 전통 제조업의 '고무 벨리(Rubber Valley)'가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1970년대 국가 산업화 정책의 작은 흐름이 지역의 자생력과 맞닿아 싹을 틔웠고, 개혁개방과 세계화의 큰 물결을 타고 거대한 산업 군락으로 피어났다.
오늘날 보예현의 컨베이어벨트는 단순히 자재를 운반하는 도구를 넘어, 중국 경제 발전의 고속도로를 만든 그 자체의 운동 에너지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도전의 상징이 되었다. 이 작은 현의 여정은 국가 정책, 시장 수요, 지역 역량이 어떻게 역사적 순간에 만나 하나의 산업 전설을 써내려가는지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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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교원 대표 / The K Media & Commerce, kyowe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