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망과 순수의 경계에서 깜박이는 도깨비 - 어른을 위한 그림책의 미학
권문희의 『깜박깜박 도깨비』는 어린이 그림책으로 분류되지만, 그 속에 담긴 정서는 분명 어른의 마음에 더 깊게 스며든다.
책은 ‘도깨비보다 사람 같은 도깨비’, 그리고 ‘어린아이보다 어른 같은 아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고아 아이는, 어느 날 밤 발이 없는 도깨비를 만나 돈 서 푼을 빌려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서 푼은 아이의 하루 생계비지만, 그는 선뜻 돈을 빌려준다. 이 단순한 사건이 아이와 도깨비의 긴 인연의 시작이다.
이후 도깨비는 돈을 갚으러 매일 찾아온다.
갚은 것도 잊고, 또 갚으러 오고, 또 잊는다.
그러나 그 ‘깜박임’은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선의의 반복’, 즉 인간이 잊지 않으려 해도 잊을 수밖에 없는 순수함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그림 속 도깨비는 괴물이 아니라 인간의 ‘거울’이다. 우스꽝스럽고 서툴지만 따뜻하다.
그는 선의와 욕심 사이를 깜박이며 오가는 인간의 내면을 대변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깜박깜박 도깨비』는 어른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아이에게 돈 서 푼은 단순한 동전이 아니다. 하루의 노동, 생존의 대가, 그리고 신뢰의 시험대다.
하지만 그는 망설이다 결국 그 돈을 도깨비에게 빌려준다.
이 장면은 단순히 착함의 상징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걸고 타인을 믿는 행위, 즉 ‘신뢰의 모험’을 보여준다.
이후 도깨비는 요술 냄비와 방망이를 가져다주며 아이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욕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 욕망을 결코 탐욕으로 확대하지 않는다.
도깨비는 결국 ‘벌을 받으러 하늘로 간다’.
그 이유는 욕심이 아니라 ‘헤픈 정’ 때문이다.
무턱대고 나눠주고, 잊고, 다시 주는 도깨비의 모습은 ‘비효율적인 선의’의 결정체다.
여기서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진정한 선의는 계산되지 않는다.
그것은 효율이나 보상의 문제를 초월한, 인간의 본능적 따뜻함이다.
아이의 선택도, 도깨비의 깜박임도 모두 그 순수함의 변주다.
그림의 구성 또한 이를 강화한다.
권문희 특유의 담백한 채색과 민화풍의 여백은 도깨비의 어설픈 행동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익살스럽지만 결코 우습지 않은, 인간적인 도깨비.
그는 ‘순수와 욕망의 경계에서 깜박이며 서 있는 존재’다.
이 책이 어른 독자에게 특별한 이유는, ‘깜박깜박 잊는 도깨비’의 모습 속에 우리의 삶이 비친다는 점이다.
삶은 늘 주고받음의 연속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셀 수 없는 ‘잊음’을 반복한다.
누군가에게 준 도움을 잊고, 받은 은혜를 잊는다. 그러나 그 잊음 덕분에 삶은 덜 무겁다.
도깨비는 잊음의 존재다.
하지만 그 잊음이야말로 인간이 서로를 용서하고, 세상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그는 계산을 모르는 존재, 즉 순수한 선의의 상징이다.
『깜박깜박 도깨비』는 결국 인간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순수함의 언어’로 번역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품격 있게 다루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의 동화라기보다, 삶에 지친 어른들이 읽어야 할 철학서에 가깝다.
깜박깜박 잊어버린 순수함을 다시 불러내는, 따뜻한 거울 같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