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을 대표한다는 명분 아래 국회에 입성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국회의원’이라는 배지를 옷깃에 달면서부터 상상할 수 없는 권한과 특권을 손에 쥐게 된다. 그리고 당선 순간부터 그들은 카멜레온처럼 변하기 시작한다. 민의를 대변하겠다던 약속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자신의 ‘자리’와 ‘이익’을 수호하는 데 혈안이 된다.
연봉 1억 5천만 원을 훌쩍 넘는 보수에 각종 수당과 명절 상여금, 항공기 일등석과 KTX 무료 이용, 9명의 보좌진 인건비 전액 국고 지원, 퇴직 후에도 지급되는 연금, 그리고 기소조차 쉽지 않은 불체포특권까지…… 알려진 혜택만 200여 가지에 달하는 특권 앞에서, 이들이 과연 ‘공복’인지, 아니면 민의 위에 군림하는 또 하나의 지배계층인지 묻게 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나도 한번 해 보고 싶다”라고 한 염라대왕의 농담이 웃음 대신 씁쓸함을 남기는 이유다.
더 심각한 문제는 책임의식의 실종이다. 헌법에 명시된 청렴의 의무와 국익 우선의 책무는 문장으로만 남아 있을 뿐,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부동산 투기, 성 추문, 그리고 자녀 특혜 채용 같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나 책임지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법을 만드는 이들이 법의 정신을 가장 먼저 외면할 때, 법치주의는 종이 위의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다.
부정부패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등장하는 해명 또한 한결같이 판박이다. “사실무근이다”, “모르는 일이다”, “법적으로 대응하겠다.” 등등. 하루가 멀다고 반복되는 이 레퍼토리는 국민을 지치게 만든다. 형식적인 사과조차도 더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때야 마지못해 나온다. 이러한 행태는 정치에 대한 냉소를 키우고, 혐오만 깊게 할 뿐이다.
법 앞의 불공정 또한 고질적이다. 대가성 금품수수 의혹은 지지부진한 수사 끝에 흐지부지되기 일쑤고, 자녀 불법 채용은 무혐의나 집행유예로 마무리된다. 여론 조작에 연루된 인물들은 처벌을 받으면서도 스스로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포장하며 끊임없이 결백을 주장한다. 국회의원이 불미스러운 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해도 ‘국회장’이 치러지고, 성범죄 혐의의 지자체장은 ‘행정 성과’를 이유로 국민 세금으로 ‘사회장’을 치른다. 어제까지 비난받던 인물이 오늘은 당 대표 후보로 나서고,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하루아침에 당적을 옮기는 일도 다반사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정의와 책임은 사라지고, 권력의 명패 뒤에서 모두가 면죄부를 받는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판은 더욱 요동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서로를 공격하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손을 맞잡고, 후보가 낙마하면 모른 척 안면을 바꾼다. 민심은 점점 멀어지고, 정치는 국가를 위한 과정이 아니라 그들만의 생존 게임처럼 군색해 보인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의 상징이 아니라 개인의 영광과 신분 상승을 보장하는 ‘황금 입장권’으로 변질됐다.
그런데 투표는 유권자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유권자가 외면하는 순간, 정치는 본질을 잃고 권력은 하루아침에 괴물로 변한다. 이 괴물은 방관과 침묵 속에서 대책 없이 자라난다. 이런 까닭에 정치인의 변절과 야합을 욕하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유권자 스스로가 이 구조의 일부임을 직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뿌리 깊은 무관심은 독이 되고, 침묵은 부패를 키우는 원흉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기다림이 아니라 참여에서 시작된다. 깨어 있는 시민의식만이 부패한 정치인을 걸러내고, 낡고 썩은 정치를 도려낼 수 있다. 희망은 여전히 유권자의 손안에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의 손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영원히 ‘을’의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윤배]
(현)조선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이메일 : ybl773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