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톨리아 통신사에 따르면,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치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17회 알자지라 포럼에서 이스라엘의 면책 특권이 국제법의 근간을 해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내 집단 학살과 지역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주변국을 고립시키고 군사적, 경제적 약화를 꾀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세계 평화를 위한 공격적인 정책 중단을 촉구했다. 특히, 이란 측은 이스라엘에 대한 실질적인 군사적 및 상업적 제재를 시행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제안했다.
정의가 힘에 굴복할 때, 우리는 모두 '잠재적 피해자'가 된다
2026년 2월 7일, 카타르 도하의 공기는 유난히 무겁고 뜨거웠다. 전 세계의 지성이 모인 제17회 알자지라 포럼. 화려한 조명 아래 연단에 오른 아바스 에라크치 이란 외무장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선명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문장들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우리가 믿어왔던 '국제사회의 약속'이 어떻게 누더기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폭로하는 고해성사였다.
법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을 때, 그것을 과연 법이라 부를 수 있을까. 특정 국가의 야욕 앞에 무력해진 국제법의 민낯을 보며, 그는 인류가 쌓아 올린 보편적 가치가 붕괴하는 '침묵의 현장'을 직격했다. 이 글은 도하에서 울려 퍼진 그 서늘한 경고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정의의 현주소를 묵직하게 되짚어보고자 한다.
누군가에게만 허락된 '법적 치외법권'
국제법은 본래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의 폭주를 막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에라크치 장관은 지금의 국제 질서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가장 먼저 이스라엘에 부여된 '면죄부'를 문제의 핵심으로 꼽았다.
가자지구의 비극과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자행되는 참혹한 현실들이 아무런 법적제재 없이 '침묵의 커튼' 뒤로 숨겨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적 편향이 아니다. 법이 특정 국가의 공격성을 보장해 주는 '법적 선례의 오염'이자, 인류 공통의 정의를 형해화하는 파괴적 행위다. 누군가에게만 허락된 면죄부는 결국 국제사회가 합의한 법치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독버섯과 같다.
공격에 대한 '보상'이라는 지독한 모순
전문가적인 시선으로 볼 때, 현재의 평화는 위태로운 가짜에 가깝다. 세계가 입으로는 평화와 안정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확장주의적 침략과 점령 행위를 묵인하며 사실상 '보상'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에라크치 장관은 "공격적 행위에 대해 보상하는 일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실질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 방조는 가해자에게 "법보다 힘이 먼저"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이러한 보상 심리는 침략자가 자신의 영토를 넓히고 주변국을 압박하는 데 필요한 '전략적 명분'이 된다. 결국, 국제사회의 비겁한 침묵이 지역적 불안정을 영구화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도하에서 들려온 '국가 파괴 전략'의 실체
도하의 포럼 현장에서 에라크치 장관은 더욱 교묘해진 확장주의 전략의 민낯을 공개했다. 법적 면죄부라는 방패 뒤에서, 이스라엘이 주변국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 사용하는 '4대 약화 전략'은 현대판 국가 파괴 매뉴얼과 다름없었다.
군사 및 기술적 고갈: 주변국의 방어망과 첨단 기술 성장을 조직적으로 방해하여 영구적인 열세에 가두기.
경제 및 사회적 고갈: 공급망을 타격하고 내부 혼란을 부추겨 국가 시스템의 회복 탄력성을 마비시키기.
이것은 전면전보다 훨씬 잔인한 방식이다. 상대국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 확장주의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이 전략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주변국들에게는 그야말로 생존의 위협이다.
수사(Rhetoric)를 버리고 제재(Action)를 선택하라
에라크치 장관의 마지막 일갈은 구체적이었다. "도덕적 비난은 가해자에게 아무런 고통을 주지 못한다." 이제는 말뿐인 비판을 넘어 '실질적인 비용'을 지불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기 공급을 끊고, 군사적 협력을 중단하며, 상업적 제재를 가하는 등의 '구체적인 조치(concrete steps)'만이 폭주하는 힘의 논리를 멈출 수 있다. 책임 추궁이 사라진 질서는 질서가 아니라 그저 '강자의 횡포'일 뿐이다. 법의 권위가 힘 앞에 굴복하는 순간,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제사회 전체의 상처로 돌아온다.
영혼의 울림을 위한 묵상
정의는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불의를 목격했을 때 얼마나 단호하게 고개를 젓느냐에 달려 있다. 에라크치 장관이 도하에서 던진 질문은 명료하다. 우리는 법이 강자의 도구가 되는 것을 방관할 것인가, 아니면 만인을 위한 정의의 보루로 되돌릴 것인가. 비단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삶의 모든 현장에서 '힘의 논리'에 밀려나는 정의를 지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품격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