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칼럼] 112화 누군가가 걸어간 길을 따라간다는 것

보통의가치 칼럼, '일상에서 배우다'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준비다

그 위에서 나는 다시 나만의 발자국을 남긴다

▲ 누군가가 걸어간 발자국을 따라가니 훨씬 수월했다.  [사진=김기천 칼럼니스트]

 

눈 덮인 출근길에서 마주한 장면

오래전부터 나는 인생을 살아가며 누군가가 이미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 왔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큰 변함이 없다.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늘 불안함을 동반하지만, 그만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된다.

 

하지만 그 확신에도 가끔은 균열이 생긴다. 지난 월요일 아침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출근을 위해 이른 아침 집을 나섰고, 출퇴근을 걸어서 하는 나에게 그날의 날씨는 썩 반갑지 않았다. 전날 뉴스에서는 우리 지역에 0.1cm의 눈이 내릴 예정이라고 했지만, 밤사이 쌓인 눈은 그 예보를 가볍게 무시한 듯 보였다.

 

날씨가 아주 춥지는 않아 길이 얼어붙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인도였다. 차도는 이미 제설이 되어 있었지만, 인도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신발은 젖어 들었고, 바지 가락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때 문득 눈앞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누군가가 이미 지나가며 남겨 둔 발자국들이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 발자국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그 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발자국이 없는 눈길보다 훨씬 수월했다. 발이 깊게 빠지지 않았고, 옷도 덜 젖었다. 그 짧은 순간, 마음속에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걸어간 길도, 가끔은 이렇게 도움이 되는구나.”

 

발자국이 알려준 또 다른 의미

그날의 출근길은 평소보다 조금 더 느렸지만, 생각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나는 늘 새로운 길만이 옳다고 믿어왔다. 남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개성이 없고, 도전이 부족한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다른 방향을 찾고, 다른 선택을 하려 애써왔다.

 

하지만 눈길 위의 발자국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걷는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잠시 빌려 걷는 것만으로도 넘어짐을 줄이고, 불필요한 고생을 덜 수 있었다.

 

이 장면은 곧 자연스럽게 독서로 이어졌다. 내가 꾸준히 책을 읽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았다. 책은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들의 기록이다. 어디에서 넘어졌는지,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어떤 선택이 후회를 남겼는지를 미리 보여준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 길이 곧바로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대로 따라 한다고 해서 같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발자국이 그렇듯, 참고할 수 있는 흔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방향은 한결 선명해진다.

 

모든 길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까

우리는 종종 ‘나만의 길’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해야만 의미가 있고, 스스로 모든 것을 증명해야만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그 태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믿음이 지나칠 때, 삶은 필요 이상으로 고단해진다.

 

모든 시행착오를 직접 겪어야만 성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누군가가 넘어져 본 자리라면, 잠시 멈춰 살펴보는 것도 충분히 현명한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남의 길을 참고하는 일을 ‘편법’이나 ‘도피’처럼 여긴다.

 

눈길 위에서 발자국을 따라 걷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듯, 삶에서도 누군가의 경험을 참고하는 일은 결코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방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남의 길을 따라가느냐, 새로운 길을 걷느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방향을 위해 어떤 선택이 필요한가의 문제다.

 

우리는 언제 발자국을 외면하는가

돌아보면 나 역시 ‘이미 있는 길’을 일부러 피하려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남들과 같아 보일까 봐, 특별해 보이지 않을까 봐, 혹은 뒤처진 선택처럼 보일까 봐서였다. 하지만 그 선택들이 언제나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미 검증된 방식, 이미 누군가가 걸어본 길에는 이유가 있다. 그 길 위에는 실패의 흔적과 성공의 단서가 함께 남아 있다. 그것을 무시한 채 무조건 새로움만을 좇는다면,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도 커진다.

 

발자국은 방향을 대신 정해주지 않는다. 다만 어디가 덜 미끄러운지, 어디에서 발이 빠졌는지를 조용히 알려줄 뿐이다. 선택은 여전히 걷는 사람의 몫이다.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질문

지금 나는 어떤 길 앞에 서 있는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나는 정말로 나만의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에 발자국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가.


누군가의 경험을 참고하는 일이 나의 정체성을 흐린다고 믿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지금 필요한 것은 전혀 새로운 길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흔적을 잠시 살펴보는 일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질문 자체를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속도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발자국을 참고하되, 길은 스스로 걷는다

나는 여전히 나만의 길을 걷고 싶다. 그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안다. 그 길을 걷기 위해 누군가의 발자국을 잠시 따라가는 것도 충분히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것을 말이다.

 

눈길 위의 발자국처럼, 그 흔적은 영원히 따라가야 할 길이 아니다. 필요할 때 참고하고, 다시 나만의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되, 이미 지나간 길에서 배움을 얻는 것. 그 균형 속에서 삶은 불필요하게 미끄러지지 않고,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누군가가 걸어간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준비다. 그 위에서 나는 다시 나만의 발자국을 남기게 될 것이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6.02.08 14:52 수정 2026.02.0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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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