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요한복음 4장은 예수의 사역 중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신학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유대인 남성과 사마리아 여인, 사회적으로 금지된 만남의 자리에서 예수는 ‘참된 예배자’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했다. 사마리아 여인이 말한 ‘이 물’을 구하는 이유는 단순히 육체적 목마름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영혼의 갈증이었다. 예수는 그 갈증의 본질을 꿰뚫어 보셨고, 그 갈증을 해소할 ‘영원한 생수’가 바로 자신임을 드러내셨다. 예배는 바로 그 만남의 자리, 인간이 하나님을 ‘다시 알아보는 순간’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예수는 굳이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지역을 경멸하며 피했지만, 예수는 경계선을 넘으셨다. 그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 세상의 경계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중심으로 초대하셨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란 ‘어디서’ 드려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예수는 “이 산도 아니요 예루살렘도 아니다”라고 하셨다. 장소가 아닌, 마음과 진리, 즉 ‘하나님을 향한 중심성’이 예배의 본질임을 가르치셨다. 예배는 특정한 공간이나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씀은 추상적인 신학 개념이 아니다. ‘영’은 하나님과의 생명적 교감을 뜻하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품에 대한 응답을 의미한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서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삶을 숨기려 했지만, 예수는 그녀의 과거를 드러내며 부끄러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진리 앞에 선 회복의 기회를 주셨다. 진리는 폭로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대면이다. 이 장면은 오늘날 신앙인이 ‘예배’라는 이름 아래 감추고 있던 형식적 신앙의 틀을 깨라는 초대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예배를 ‘프로그램’과 ‘형식’으로 규정하지만, 예수는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예배의 대상일 뿐 아니라, 예배의 시작자이자 중심이심을 뜻한다.
‘영과 진리의 예배’는 인간의 자발적인 감정 표현을 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제의 자리를 의미한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를 ‘선지자’로, ‘메시아’로 알아가며 변화된 것처럼, 예배는 알아봄의 과정이다. 하나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진리를 내 삶 속에서 다시 발견하는 일. 그것이 참된 예배자의 여정이다.
예배는 화려한 예배당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한 여인이 물동이를 내려놓고 예수를 만난 그 순간처럼, 하나님 앞에 선 나의 중심에서 시작된다.
예수의 말씀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온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이 말씀은 단순한 신학 명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선언이다.
예배의 회복은 곧 인간의 회복이며, 하나님께 향하는 진정성의 회복이다.
우리가 진정한 예배자로 서는 순간, 우리의 삶은 이미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