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역사] 78. 이헤야지마(伊平屋島), 쇼하시(尚巴志) 가문의 뿌리와 류큐 왕통의 기원

제1쇼씨 왕조(第一尚氏王朝)의 혈통, 북방 섬에서 시작되다

이헤야 마기리(伊平屋間切)와 왕조의 성지화 과정

제2쇼씨 왕조와 이어진 ‘왕통의 고향’이라는 상징성

류큐 왕국(琉球王国)의 건국자 쇼하시(尚巴志)의 가문은 오키나와 본도 남부 사시키(佐敷)를 거점으로 성장하였으나, 그 혈통의 출발점은 오키나와 최북단의 섬 이헤야지마(伊平屋島)에 있다고 전해진다. 이는 왕조의 정통성과 권위를 설명하는 중요한 배경으로 제시된다.

 

이헤야지마(伊平屋島), 쇼하시(尚巴志) 가문의 뿌리와 류큐 왕통의 기원[사진=AI 생성]

 

기록에 따르면 쇼하시의 아버지 쇼시쇼(尚思紹)의 가문은 본래 이헤야지마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쇼하시의 조부가 이 섬에서 사시키로 이주하면서 가문의 기반이 확대되었고, 이후 삼산 통일을 이룬 왕조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연원 때문에 이헤야지마는 제1쇼씨 왕조의 ‘조상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이 섬은 단순한 출신지가 아니라 왕통의 상징 공간으로 여겨졌으며, 가문의 기원을 기억하는 장소로 기능하였다.

 

이헤야지마는 왕국 시대 행정 구역 체제인 마기리(間切) 아래에서 이헤야 마기리(伊平屋間切)로 관리되었다. 18세기 후반 제작된 ‘류큐국 총지도’ 등에도 해당 지역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왕실과 관련된 지역으로서 일정한 위상을 유지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언급된다.

 

또한 문헌에서는 쇼하시 가문과 관련된 성역(御嶽, 우타키)이나 주거지 흔적이 섬 안에 전해진다고 설명한다. 구체적인 대규모 건축물은 언급되지 않으나, 왕조의 기원을 기리는 장소로서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고 기록된다.

 

이헤야지마에서는 쇼하시의 업적과 가문의 기원을 기리는 행사와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는 섬 주민들에게 역사적 자부심을 부여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왕실 가요집 《오모로사우시(おもろさうし)》에는 국왕과 왕국의 번영을 노래한 가요가 수록되어 있으며, 북방 섬들과 관련된 서사 역시 문화적 맥락 속에서 해석된다. 이러한 기록은 이헤야지마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왕통의 상징적 근거지로 이해되었음을 보여준다.

 

1469년 가네마루(후일 쇼엔왕, 尚円王)에 의해 제1쇼씨 왕조가 교체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제2쇼씨 왕조의 시조 또한 이헤야지마 인근의 이제나섬(伊是名島) 출신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이헤야지마와 이제나섬 일대는 두 왕조의 발상지로 연결되며, 류큐 왕통의 상징적 중심지로 인식되었다. 비록 2000년 ‘류큐 왕국의 구스쿠 및 관련 유산군’ 세계유산 등재 목록에 이헤야지마 유적이 직접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왕조의 기원을 탐구하는 역사적 공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헤야지마는 쇼하시 가문의 기원지로 전해지며, 제1쇼씨 왕조의 정통성을 설명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더불어 제2쇼씨 왕조의 시조 역시 인근 섬 출신으로 기록되면서, 이 지역은 류큐 왕통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지리적 배경이 되었다.

 

이와 같은 기록은 류큐 왕국이 단순한 정치 공동체를 넘어, 혈통과 기원을 통해 통치 정당성을 강화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이헤야지마는 왕국의 정신적 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역사적 공간이다.

작성 2026.02.15 09:14 수정 2026.02.1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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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