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반복되는 설날 풍경은 익숙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상징 체계를 깊이 들여다본 적은 많지 않다. 가족이 둘러앉아 떡국을 나누고 차례상을 차리는 일은 단순한 전통 계승이 아니라 조상들이 설계한 상징적 의례 구조라 할 수 있다. 설은 휴식의 시간이기 이전에 새로운 시간 질서로 진입하는 통과의례였다.
1. 설날의 본뜻, ‘축제’가 아닌 ‘경계의 날’
설은 흔히 새해 축제로 인식된다. 그러나 어원을 살피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설’에는 낯설다는 의미, 새로 선다는 의미, 삼간다는 뜻이 함께 내포돼 있다. 과거에는 설을 ‘신일’이라 불렀다. 이는 스스로를 경계하고 몸가짐을 단속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묵은 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전환의 순간에 들뜸보다 절제를 택한 태도는 우리 문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설은 흥겨움 이전에 자신을 다스리는 날이었다.
2. 떡국의 진짜 의미, ‘나이’보다 ‘풍요’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은 익숙하다. 그래서 떡국을 ‘첨세병’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떡국의 상징은 단순한 연령 증가에 있지 않았다.
길게 늘인 가래떡은 장수를 상징했고, 이를 둥글게 썬 모양은 엽전을 닮았다. 동그란 흰 떡 조각은 청정함과 동시에 재물의 형상을 담았다. 새해에 떡국을 먹는 행위는 부와 안정을 기원하는 의례였다. 한 그릇의 음식에 장수와 재복이라는 두 가지 염원이 겹쳐 있었다.
3. 까치 설날, 언어 변화와 시대의 기억
동요 가사에 등장하는 ‘까치 설날’은 본래 ‘작은 설’을 뜻했을 가능성이 크다. 옛말 ‘아치’가 변형되면서 ‘까치’로 굳어졌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또 다른 설화 기록에는 까치 대신 까마귀가 등장한다. 특정 동물을 기리는 날이 전승 과정에서 변형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명칭이 대중적으로 자리 잡은 계기는 1920년대 동요 보급 이후였다. 당시 노래는 단순한 아동가요를 넘어 시대적 희망을 상징하는 매개였다. 설 명칭 하나에도 시대의 기억이 스며 있다.
4. 차례상의 금기, 형식보다 본질
차례상에는 올리지 않는 음식이 있다. 이름 끝이 ‘치’로 끝나는 생선이 대표적이다. 이는 해당 어종이 과거에 흔하게 소비되던 생선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조상에게 드리는 상에는 평범함보다 정성을 담고자 했다.
복숭아, 마늘, 고춧가루 등 향이 강한 식재료를 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례의 집중도를 유지하려는 선택이었다. 다만 최근에는 전통 형식보다 가족 공동체의 의미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해석이 확장되고 있다. 명절 의례의 핵심은 외형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점을 재확인하는 흐름이다.
5. 세주불온, 차가운 술의 상징성
설날에 마시는 세주는 데우지 않았다. 이를 세주불온이라 한다. 한겨울에 찬 술을 마시는 행위는 역설적이지만 상징적이다. 겨울의 끝에서 새봄을 깨운다는 의미가 담겼다.
특히 여러 약재를 넣은 도소주를 가족이 함께 나누며 건강을 기원했다. 이는 신체적 안녕과 정신적 각성을 동시에 상징하는 의례였다. 설날 풍습은 단순한 전통 행사가 아니라 시간의 전환점에서 자신을 다스리고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상징 체계였다. 떡국의 엽전 모양, 차례상의 음식 선택, 세주불온의 관습은 모두 풍요와 절제, 희망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의미를 이해할 때 설은 형식적 명절을 넘어 지적 성찰의 시간이 될 수 있다.
한 그릇의 떡국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장수와 부, 공동체의 결속과 새봄을 맞이하는 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올해 설날, 식탁 위의 상징을 다시 바라본다면 명절은 반복되는 의례가 아니라 현재를 단단히 다지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