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0문
Q. 30. How doth the Spirit apply to us the redemption purchased by Christ? A. The Spirit applieth to us the redemption purchased by Christ, by working faith in us, and thereby uniting us to Christ in our effectual calling.
문 30. 성령께서 그리스도가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십니까? 답. 성령께서 그리스도가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것은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시고, 효과적인 부르심으로써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하나님은 미쁘시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도다(고전 1:9)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엡 3: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현대 기술 문명에서 아무리 강력한 에너지가 생성된다 해도, 그것을 기기에 전달할 '인터페이스(Interface)'가 없다면 그 에너지는 무용지물이다. 거대한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가전제품에 도달하기 위해 전선과 플러그가 필요하듯,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거대한 구속의 에너지가 우리 삶에 도달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영적 장치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0문은 성령께서 어떻게 이천 년 전의 십자가 사건을 오늘날 나의 사건으로 연결하시는지,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한다. 바로 '믿음'과 '연합'이다.
첫 번째 메커니즘은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시는 것(Working faith in us)'이다. 믿음은 인간의 주관적 신념이나 의지의 산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소요리문답은 믿음을 '성령의 작품'으로 규정한다. 이는 '자기 초월'의 영역이다. 인간은 본래 자기 중심성의 감옥에 갇혀 있어, 보이지 않는 영적 실재를 스스로 신뢰할 능력이 없다. 성령은 우리 내면의 완고한 방어기제를 허물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의 창을 열어주신다. 앞선 문답에서 언급한 '아는 것(knowing)'이 성령의 역사로 인해 '믿는 것(believing)'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구원의 서사는 개인의 내면에 착륙한다.
두 번째 메커니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시는 것(Uniting us to Christ)'이다. 이것은 신학에서 가장 신비롭고 중요한 개념인 '신비적 연합(Unio Mystica)'을 다룬다. 성령은 우리를 단순히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수준을 넘어, 그리스도라는 유기체에 우리를 접붙이신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죽어가는 가지를 생명이 넘치는 줄기에 이식하여 줄기의 수액(생명력)이 가지로 흘러들게 하는 '영적 이식 수술'과 같다. 이 연합이 일어날 때, 그리스도가 소유하신 모든 의로움과 거룩함, 그리고 생명이 나의 자산으로 전이(Imputation)된다. 그리스도가 승리하셨기에 나도 승리하고, 그분이 죽음을 이기셨기에 나도 영생을 얻는 법적·실존적 일체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효과적인 부르심(Effectual calling)' 안에서 이루어진다. 경영학적 관점에서 '부르심'은 비전의 제시와 같다. 뛰어난 리더는 구성원을 단순히 명령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단순한 초청을 넘어, 부르는 즉시 그 대상을 변화시켜 응답하게 만드는 창조적 권능을 가진다. "빛이 있으라" 하실 때 빛이 생겨났듯, 성령의 효과적 부르심은 죽은 영혼을 깨워 믿음을 일으키고 그리스도와 결합시킨다. 이것은 리더십의 극치라 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신적 수준에서 완성되는 모습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소속감'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갈망을 해결한다. 현대인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도 극심한 고독을 느낀다. 사회적 지위나 소유로 자신을 정의하려 하지만, 그것들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신기루와 같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는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In Christo)"는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얻는다. 나의 가치가 나의 행위가 아닌, 내가 결합된 '그리스도라는 원천'의 가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연합은 고립된 자아를 우주적 생명의 흐름 속으로 편입시키는 진정한 해방의 사건이다.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가 사신 '구속'이라는 보물을 우리 영혼의 금고에 안전하게 옮겨놓는 정교한 배송 시스템이다. 우리는 스스로 믿음을 만들어낼 수도, 스스로 그리스도께 도달할 수도 없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 내면의 가동 스위치를 켜실 때(믿음),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영원한 에너지원과 연결(연합)된다. '아는 것(knowing)'에서 멈추지 않고 '사는 것(living)'으로 나아가는 힘은 바로 이 연합에서 흘러나오는 생명력에 근거한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내 안에 형성된 이 신비로운 연합을 인식하고, 그리스도로부터 공급되는 영적 자양분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연결(Connectivity)'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단절된 존재들이다. SNS의 팔로워는 늘어가지만 영혼의 공허는 깊어만 간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0문은 우리에게 가장 본질적인 연결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성령은 지금도 우리 영혼의 문을 두드리며 이 연합의 초대장을 내밀고 계신다.
당신의 '결단력'이 부족하다고 낙심하지 마라. 믿음을 일으키시고 당신을 그리스도께 단단히 묶으시는 분은 당신이 아니라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이 주권적인 은혜를 신뢰할 때, 당신의 삶은 비로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기 시작할 것이다.
허동보 목사 | 수현교회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