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린 도심, 30·40대 직장인들이 퇴근을 서두르며 향하는 곳은 회식 자리가 아닌 대학 캠퍼스의 ‘AI 야간캠프’다. 이들의 모니터 화면에는 경영학 원론 대신 ‘노코드(No-code) 자동화’와 ‘챗GPT를 활용한 보고서 작성’, ‘마케팅용 생성형 AI 실무’ 창이 띄워져 있다. 같은 시각, 혹은 낮 시간의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AI 디지털 교과서’를 곁에 두고 맞춤형 학습을 진행한다. 부모와 자녀 세대가 각기 다른 공간에서 인공지능이라는 동일한 기술을 익히는 이 낯설고도 경이로운 풍경은 2026년 대한민국 교육이 맞이할 새로운 단면이다.

직장인을 부르는 AI 야간캠프… 학위 대신 ‘디지털 배지’의 시대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2026년까지 재직자를 위한 ‘인공지능·디지털 집중과정’ 운영 대학을 30곳에서 38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과정은 전통적인 컴퓨터 공학의 깊이 있는 탐구보다는, 각자의 직무 현장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도구 중심의 실무 역량을 키우는 데 방점을 찍는다.
약 4주간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몰입형 ‘AI·디지털 30+ 집중캠프’와 3개 내외의 강좌를 묶어 제공하는 온라인 기반 ‘묶음강좌’를 통해, 직장인들은 업무 체계화나 사업 홍보 전략 수립 등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법을 배운다.
주목할 점은 이수자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증명 방식이다. 종이 학위장이나 국가자격증 대신 대학 총장 명의의 ‘디지털 배지’가 발급되며, 이는 링크드인과 같은 온라인 경력 플랫폼에서 개인의 AI 실무 능력을 직관적으로 증명하는 전자 인증서로 자리 잡고 있다. 대학 강의실이 지역 산업의 수요와 재직자를 잇는 실무형 AI 부트캠프 플랫폼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생 책상엔 AI 교과서… ‘티칭’에서 ‘코칭’으로 진화하는 교실
변화의 파도는 성인 학습의 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2026년부터 일선 교실에 본격 도입되는 AI 디지털 교과서는 학생 개개인의 학습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취약한 부분을 맞춤형 문제로 다시 제시해, 사실상 학생 1명당 ‘개인 과외’에 준하는 학습 경험을 선사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교사들 역시 지식의 일방적 전달자에서 학생의 학습을 돕는 ‘설계자이자 컨설턴트’로 그 역할이 진화하는 실험적 과정을 거치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변화의 속도는 훨씬 가파르다. 서울 지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압도적 다수인 94.7%가 챗GPT나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수업이나 과제 준비에 AI를 활용한 교사의 비율도 70%를 웃돌며, 평가 단계에 활용한 비율 역시 63.2%에 달한다. 교실 내에서 인공지능은 더 이상 특별한 미래 기술이 아니라 사제지간이 함께 사용하는 일상적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 주도성 잃은 ‘AI 과의존’ 우려
하지만 현장의 시선에는 짙은 우려도 교차한다. 같은 조사에서 일선 교사의 10명 중 9명 이상이 학생들의 ‘생성형 AI 과의존’을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제를 AI에 전적으로 위임하거나 출처 확인 없이 결과물을 도용하는 행태, 편향된 정보를 비판 없이 수용하며 궁극적으로 스스로 사고하고 글을 쓰는 주체적 역량이 쇠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교육부는 ‘K-교육 AI 개발’ 및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학생들이 AI를 비판적이고 주도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질문 중심 수업과 서술·논술형 평가를 확대하고 교사들의 AI 활용 역량 강화 연수를 늘리는 것 역시 이러한 안전망 구축의 일환이다.

입학과 졸업의 시대는 끝났다… AI 생태계가 낳은 ‘새로운 격차’
전방위적인 AI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교육 생태계의 근본적 재편을 요구한다. 입학과 졸업이라는 전통적 구획은 허물어졌고, 정부는 K-MOOC와 같은 온라인 공개강좌 플랫폼을 활성화해 대학을 생애 전반에 걸쳐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평생학습의 거점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기업들 또한 직원의 연간 학습 경로 내에 사내 교육, 대학 단기 캠프, 민간 에듀테크 플랫폼을 연속적으로 배치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거대한 ‘AI 리스킬링(Reskilling)’ 생태계 구축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동적인 흐름 이면에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격차’라는 숙제가 숨어있다. 퇴근 후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기민하게 AI 업무 자동화를 배우는 이가 있는 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여전히 검색창 앞을 서성이는 이들도 존재한다. 정보 접근성과 실행력에 따른 간극이 30·40대 동세대 내에서도 극명하게 벌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교육의 본질을 다시 묻다
AI를 날 때부터 접하며 자라온 자녀 세대와, 사회에 진출한 뒤 뒤늦게 야간 캠프를 통해 ‘AI 리터러시’를 채워가야 하는 부모 세대. 이 기묘한 세대적 교차 속에서, 우리 사회는 교육을 둘러싼 기존의 역할을 재구성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교사는 조력자로, 부모는 아이의 진로를 대신 그려주는 사람에서 함께 학습의 길을 찾아가는 동반자로 스스로를 재정립해야 한다. 동시에 직장인 개인에게는 스스로 배움의 방향을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시대적 무게가 주어졌다.
숫자와 정책, 그리고 현장의 풍경이 말해주는 진실은 명확하다. 인공지능은 단순히 하나의 과목이나 특정 직종에 국한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학습하고 노동하며 성장하는 방식 자체를 뒤바꾸는 문명적 전환이다. 다가오는 AI 시대, 우리의 논의는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넘어 ‘나는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배움을 이어갈 것인가’라는 실존적 물음과 마주해야 한다. 2026년 대한민국 교육의 지형도는 바로 이 두 질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