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이어진 류큐 왕국(琉球王國)의 대교역 시대(大交易時代)는 중계 무역(中継貿易)을 통해 부를 축적한 시기였다.
그러나 수입품은 단순한 재수출 물품이 아니라 류큐 사회 내부를 변화시키는 핵심 요소였다. 조선의 대장경과 면직물, 중국의 삼현(三絃)과 고구마, 동남아시아의 남만독(南蛮甕), 일본의 철기와 불교는 류큐의 종교, 예술, 문자, 식문화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류큐 왕국의 대교역 시대는 중계 무역을 통해 이익을 창출한 시기였다. 그러나 수입품은 단순히 무역항을 거쳐 가는 물품이 아니라, 류큐 내부 사회에 정착하여 구조적 변화를 일으켰다.
1389년 류큐는 왜구에게 납치된 조선인을 송환하며 교역을 시작하였다. 이후 면직물과 인삼을 수입하였다. 특히 불교 진흥을 위해 방책장경(方冊蔵経) 등 대장경과 불교 경전을 지속적으로 요청하였다.
조선 국왕으로부터 하사받거나 수입한 경전은 벤자이텐도(弁財天堂)에 소장되었다. 이는 류큐 불교 문화의 기반이 되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 남만독(南蛮甕)은 류큐 전통 증류주 아와모리(泡盛)를 숙성하는 핵심 용기로 사용되었다. 이 항아리는 실용적 수입품으로 정착하였다. 또한 남만주(南蛮酒)와 상아는 왕실과 귀족층의 소비품으로 유입되었다.
중국에서 수입된 삼현(三絃)은 류큐에서 산신(三線)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궁중 음악과 민중 음악의 중심 악기가 되었다.
유학과 풍수지리 관련 서적은 국가 통치 체제 정비에 활용되었다. 1605년에는 노구니 소칸(野国総管)이 중국 푸젠성에서 고구마를 도입하였다. 고구마는 식량난 해결에 기여하였다.
선사 시대부터 철기와 청동기 등 금속 제품을 수입하였다. 대교역 시대에는 일본도와 칠기 등이 교역되었다. 또한 일본 선승의 유입과 함께 불교가 전래되었다. 일본식 한자 가나 혼용문은 류큐의 기록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18세기 이후 일본 홋카이도산 다시마는 청나라로 재수출되었으며, 이후 류큐 내부에서도 소비가 확산되었다. 쿠부이리치(クーブイリチー)와 같은 요리가 형성되었다.
류큐 왕국의 수입품은 경제적 재수출 대상에 그치지 않았다. 조선의 대장경, 중국의 삼현과 고구마, 동남아의 남만독, 일본의 불교와 다시마는 류큐의 종교, 예술, 문자, 식문화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는 대교역 시대가 경제뿐 아니라 문화 형성의 전환기였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