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초여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테니스 대회인 윔블던 선수권 대회가 열리면 전 세계의 시선이 잔디 코트로 쏠린다. 선수들은 흰색 유니폼을 입고 센터코트에 서고, 관중은 숨을 죽인 채 한 포인트 한 포인트에 환호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반복돼 온 한 가지 상징적 장면이 있다. 대회를 개최하는 나라는 영국이지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선수는 외국인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 아이러니한 상

황에서 파생된 경제학 용어가 바로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다. 이는 한 나라가 훌륭한 제도와 인프라, 시장을 구축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무대에서 거둬지는 성과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외국 기업이나 외국 인재가 가져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경기장은 우리가 만들었지만, 우승은 다른 이들의 몫이 되는 구조다.
이 개념은 단지 스포츠의 비유에 그치지 않는다. 영국 런던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지만, 그 시장을 주도하는 자본과 금융기관은 다국적 기업이 대부분이다. 교육·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영국은 글로벌 플랫폼을 제공하지만, 실제 스타와 수익의 주체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인재들이다. 영국은 무대를 제공하고, 세계는 그 위에서 경쟁한다.
한국 사회 역시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와 빠른 인터넷 환경을 갖추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률은 상위권이고, 온라인 소비 시장은 급성장했다. K-콘텐츠는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운영체제, 글로벌 플랫폼, 핵심 소프트웨어, 반도체 설계 기술 등 주요 분야에서는 여전히 해외 기업 의존도가 높다. 우리는 열성적인 사용자이자 소비자이지만, 플랫폼의 설계자이자 규칙을 정하는 주체는 아닐 때가 많다.
문제는 단순한 자존심이 아니다. 주도권의 문제다. 누가 기술의 표준을 정하고,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며, 누가 수익 구조를 설계하는가에 따라 국가의 경쟁력은 장기적으로 크게 달라진다. 무대의 소유자와 무대의 주인공이 다를 때, 이익의 방향도 달라진다. 이것이 윔블던 효과가 던지는 구조적 메시지다.
이 현상은 개인의 삶에서도 반복된다. 직장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지만, 정작 개인의 이름은 조직의 브랜드 뒤에 가려지는 경우가 있다. SNS와 플랫폼에서 열심히 활동하지만, 실질적 수익과 영향력은 플랫폼 기업에 집중되는 구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부지런히 뛰고 있지만, 경기의 규칙을 설계하지는 못하는 상황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첫째, 핵심 기술과 원천 역량에 대한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 단기 성과에 급급하기보다 설계 능력과 표준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개인 역시 자신의 전문성과 브랜드를 축적해야 한다. 조직 안의 역할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이름을 가진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셋째,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한 전략적 사고가 요구된다. 국내 시장의 안정성에 안주할 때, 세계 무대는 이미 다른 이들의 것이 될 수 있다.
윔블던 효과는 패배를 의미하는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구조를 직시하라는 경고다. 우리는 관중인가, 선수인가. 아니면 경기장을 설계하는 주체인가. 이미 무대는 세계와 연결돼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무대 위에 서는 용기와, 규칙을 만드는 역량이다.
잔디 코트 위의 함성은 매년 반복되지만,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만든 무대에서, 다음 우승자는 과연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