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을 어루만지는 온기, ‘그느르심’의 신비
이월은 계절의 틈새에 낀 시기이다. 겨울이라고 하기엔 햇살의 결이 사뭇 다정해졌고, 봄이라 부르기엔 여전히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매섭다. 우리는 이 애매한 계절의 문턱에서 종종 길을 잃는다. 손에 잡히지 않는 삼월의 희망을 기다리다 지쳐, 발치에 굴러다니는 이월의 마른 잎사귀처럼 마음이 서석거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조용히 곁을 내어주는 ‘그느르심’의 손길이다.
‘그느르다’라는 우리말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곁에서 보살펴주고 허물을 덮어주며 보호한다는 이 단어 속에는, 대상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인내심이 녹아 있다. 시인은 이월의 햇살이 마른 잎 위에 옅은 물감을 푸는 찰나에서 그분의 그느르심을 읽어낸다. 시린 바람이 불어올수록 우리를 더 깊은 품으로 당기시는 그 손길은, 우리가 인생의 겨울 끝자락에서 홀로 떨고 있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영혼의 온기다.
언 땅 아래서 몸을 웅크린 씨앗을 상상해 본다. 어둠과 추위 속에서 씨앗이 견디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아니라 ‘떨림’이다. “과연 봄이 올까? 내가 꽃을 피울 수 있을까?”라는 존재론적인 두려움이다. 그때 그분은 씨앗의 등을 어루만지신다. 아직 차가운 흙을 뚫고 나오기도 전에, 그분은 먼저 햇살의 온기로 두려움의 그림자를 지워내신다. 우리가 삼월이라는 설렘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역량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우리 뒤에서 묵묵히 등을 밀어주시는 그분의 ‘그느르시는 사랑’ 덕분이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겉으로는 꽁꽁 얼어붙어 생명이 멈춘 것 같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는 이미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기다림은 헛되지 않다”라는 그분의 음성이다. 이 음성을 듣는 자에게 이월의 밤은 더 이상 고독한 유배지가 아니다. 오히려 새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는 포근한 ‘요람’이 된다. 우리가 겪는 모든 기다림의 시간은 사실 그분의 요람 안에서 우리가 빚어지고 다듬어지는 축복의 시간인 셈이다.
인생의 그늘진 곳에 서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남들은 다 봄볕 아래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여전히 시린 바람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서글퍼질 때가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그분은 그늘진 곳을 찾아 볕을 들이시는 분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조차 돌보지 못할 때, 그분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셔서 우리를 그느르신다.
이제 우리는 그 찬란한 사랑 안에서 삼월의 문을 연다. 이월의 시린 바람은 우리를 무너뜨리러 온 것이 아니라, 그분의 품이 얼마나 따스한지를 가르쳐주러 온 손님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그느르시는 그분과 함께라면, 어떤 겨울도 영원할 수 없으며 어떤 기다림도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