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된장 뚝배기의 미학

곽흥렬

일여덟 살이나 되었을까 말까, 안개 속처럼 아슴푸레한 기억이다. 부모님이 무슨 볼일로 해서인가 먼 데 나들이를 떠났다 귀가하는 길에 라면 두 봉지를 사 들고 오셨다. 이 땅에서 최초로 출시된 제품인 ‘아리랑’이라는 상표를 단 라면이었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아래로 동생들 넷, 이렇게 식구 수가 적잖았던 당시 우리 집 사정으로서는 그 두 봉지의 라면만으로는 어디 찍어 붙일 데도 없었다. 근근이 밥술이나 뜨고 사는 애옥살이 살림에 한 끼를 넉넉히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내기에는 손이 오그라들었을 것이리라. 무슨 물건이건 처음 세상에 선을 보이는 제품은 그 금새가 만만치 않고 보면. 지난날 부엌에서 겪었을 어머니의 고충을 미루어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는 밀국수를 절반 이상 섞어서 끓여내셨다. 일테면 ‘국수라면’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라면국수’라고 해야 할지……. 그랬는데도 난생처음 대하는 그 별미가 완전히 입맛을 사로잡았다. 혀끝에 착착 감겨오는 감촉, 입 안에 머물 새도 없이 술술 잘도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세상 그 어떤 값비싼 음식이 이 맛에 비길까. 반세기가 훌쩍 지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특별했던 풍미를 잊지 못한다. 

 

그 기막힌 미감에 매료된 것이, 그러나 한편으론 인공 감미료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기 시작한 단초가 된 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이후로 이날 이때까지 종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즉석식품에 알게 모르게 길들어져 왔다. 요즘은 미원이니 다시다니 하는 인공 감미료를 치지 않은 음식엔 혀가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바깥에서 사 먹는 먹을거리들은 아예 인공 감미료 범벅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게다. 손님들의 입맛에 맞추려다 보니 음식점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일 것도 같다.

 

인스턴트 식품이 우리 식탁을 완전히 점령한 세상이다. 햄이나 소시지 같은 각종 반찬 종류며 찌갯거리 재료는 말할 나위도 없고, 심지어 ‘햇반’이라고 하여 주식主食인 밥까지 즉석에서 해결되는 참으로 편리한 시대가 되었다. 인스턴트 식품은 간편하기야 그저 그만이지만, 그 대신 깊은 맛이 없다. 당의정처럼 당장 혀만 속이려 들 뿐이다. 이 달콤한 맛에 빠져 우리의 건강은 시나브로 좀먹혀 간다. 즉석식품은 방부제로 칠갑이 되어 있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이려나. 이것이 오랜 기간 인체에 축적이 되다 보면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온다. 인스턴트 식품은 현대인의 목숨을 소리 없이 앗아가는 나나니벌인지 모른다.

 

우리의 고유한 식습관은 이제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집에서나 바깥에서나 시나브로 채식 위주에서 육식 위주로 바뀌어 왔다. 육식에 길들어진 결과, 거기서 초래되는 부작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육식은 이 땅의 대장암 발병률을 급격히 높이는 주범이다. 동양인의 장은 서양인의 장에 비해 약 삼십 센티 가까이 더 길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같은 육식을 하더라도 동양인의 경우는 음식물이 장에 머무는 시간이 서양인에 비해 그만큼 길어질 수밖에 없다. 자연 큰창자에서 부패되는 변이 내뿜는 독소가 대장암 발병의 직접적 인자로 작용하는 것이다. 

 

육식은 여차하면 비만으로 이어지기가 십상이다. 성인에게도 물론 그렇긴 하지만, 특히 소아비만은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만으로 인한 당뇨며 고혈압이며 심장병 같은 만성질환은, 육신은커녕 정신까지 황폐화시키는 심각한 결과를 불러온다. 의학의 발달로 인해 절대 수명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지만, 건강 수명은 오히려 줄어듦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육식 문화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심성마저 공격적으로 만든다. 초식동물은 성질이 느긋하고 온순한 데 반해 육식동물은 급하고 사납다. 사람도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의 식생활 문화가 육식 중심의 서양식으로 바뀌다 보니, 자연 예전에 비해 심성이 포악해지고 거칠어졌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비단 건강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나친 육식은 윤리적으로도 비난의 대상이 된다. 쇠고기 1㎏을 얻는 데 자그마치 스무 사람 이상 분의 곡물이 필요하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이로 미루어 살피면, 육식은 굶주림에 허덕이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돌아갈 몫을 빼앗는 행위가 되는 셈이 아닌가. 이것은 인과론적으로 따질 때 자신도 모르게 짓는 악업으로 쌓인다. “광우병은 신神이 쇠고기를 먹는 사람들에게 내린 무언의 경고이다.”라고 한 어느 힌두교도의 외침을 한 번쯤 새겨들어 볼 일이다. 육식 위주의 식단을 채식 위주로 바꾸어야 할 이유는 이로써 분명해진다. 

 

지난날 우리의 소박하던 밥상이 새삼 주목받는 시대가 되었다. 숙성시킨 김치는 훌륭한 천연 요구르트이며, 발효과정을 거친 청국장은 탁월한 항암제이다. 이 점이 조상들의 삶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다. “우리 몸엔 우리 것이 최고여!”라고 외치던 한 광고 문구가 결코 빈말이 아님을 알겠다. 그야말로 신토불이身土不二다.

 

술만 해도 그렇다. 화학주인 소주나 양주보다 알곡으로 빚은 막걸리가 건강에는 훨씬 더 좋다고 알려져 있다. 고된 들일 중간중간에 새참으로 들이켜는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은 출출한 배의 시장기를 면해 주고 노동의 능률을 올리는 데 톡톡히 한몫을 거든다. 거기다 논머리에 빙 둘러앉아서 주고받는 막걸릿잔을 통하여 공동체의 화합을 일궈내는 것은 가외의 소득이 아닌가.

 

우리의 음식 문화에는 은근한 기다림의 미학이 있었다.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정성과 사랑의 다른 이름인지 모른다. 행동이 앞서면 자연 마음도 따라가게 되는 법. 언제부턴가 불기 시작한 ‘빨리빨리’ 식습관이 우리를 조급증으로 내몰고 참을성 부족을 낳아 걸핏하면 잦은 다툼을 불러오도록 만들었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서구식 입맛에 길들어져 김치나 된장찌개 같은 전통음식 먹기를 꺼리게 되면서, 우리가 조상 대대로 고이 간직해 왔던 아름답고 구순한 정서마저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괜히 염려의 마음이 앞선다. 

 

세상 이치란 무슨 일이든 그 가운데 항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게 마련이다. ‘세계화’라고 하는 화려한 이름 뒤에 도사린 광포성狂暴性은 각국의 음식 문화마저 고유성을 잃은 채 국적 불명이 되어 가게 만들고 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일본의 기무치가 우리의 김치를 대신하여 세계시장을 주름잡는가 하면, 중국 된장이 우리 토종 된장을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하려 드는 형국이다. 원조가 사이비에 굴복당한 격이라고나 할까. 옛말에 제 절의 부처는 제가 위하라고 했다. 그저 겉멋만 들어 우리가 우리 것을 헌신짝처럼 팽개칠 때, 남들이 우리 문화를 얕잡아보고 업신여길 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웰빙’이라는 신조어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시대이다. 모든 사람이 ‘웰빙, 웰빙’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정작 얼마만큼 그 참 의미를 깨닫고 실천을 하는지……. 행동으로 받쳐주진 못하면서 그저 말만 앞세우는 듯한 인상을 도무지 지울 수가 없다.

 

지난날 어머니는 늦은 가을부터 이듬해 이른 봄까지 늘상 화로에다 숯불을 담아 구수한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내셨다. 이것이 우리 가족의 건강지킴이 노릇을 톡톡히 하였음은 그 후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된장찌개에는 가족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고 해도 좋으리라. 어머니의 된장 뚝배기야말로 거창하게 떠벌리지 아니하고 몸소 실천에 옮긴 조용한 웰빙 아니었을까. 

 

요즈음 우유 한 컵에다 샌드위치 몇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는 가정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간편해서 참 좋긴 하겠다. 하지만 어쩐지 살가운 정과는 거리가 먼 삶은 아닌가 싶어 씁쓰레한 마음이 든다. 

 

‘살과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쓴대도 지나치지 않을 이 시대에 건강을 지켜낸 선견지명의 지혜가 된장 뚝배기에 담겨 있다. 우리 조상들이 지난날의 그 혹독했던 궁핍 속에서도 밝고 건강한 심신을 잃지 않고 살아온 것은, 느림의 미학에 바탕을 둔 된장 뚝배기의 힘 덕분 아니었을까. 따로 보약이 필요 없으리라. 된장 뚝배기 한 그릇이면 건강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세끼 밥에다 된장 뚝배기 한 그릇, 우리들 건강의 충직한 파수꾼이다. 

 

오늘 아침 상머리에서 아내가 끓여주는 청국장을 대하니, 불현듯 지난날 어머니의 된장 뚝배기 냄새가 와락 코끝에 안겨든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 수상

유혜자수필문학상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6.03.02 10:46 수정 2026.03.0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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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