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3.1절을 지내며 묻는다, 임시정부의 '국통'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임시정부 선언문이 증명하는 5,000년 국가 주권의 실체: 환국에서 대한민국까지

독립군 양성 기지 신흥무관학교 핵심 텍스트이자 역사 교재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역사주권은 어디로 갔는가: 독립운동가의 '대한사관'과 일제의 '반도사관'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法統을 계승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같은 해 4월 11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후 1942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제23주년 3.1절을 맞아 발표한 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다.

 

"우리 민족은 처음 환국桓國이 창립된 이래 단군檀君, 부여夫餘, 삼한三韓, 고려高麗, 조선朝鮮 및 대한민국을 거쳐 5,000년의 국가 주권은 한민족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큰 난리를 겪어도 우뚝하게 독립하였고, 민족의 광채를 보전하며 백 번 전쟁에 분발하여 시종일관始終一貫하였고 전 국가의 인격人格을 보전하였다."

 

이 준엄한 선언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뿌리가 환국으로부터 시작된 찬란한 국통맥에 닿아 있음을 국가적으로 공인한 것이다. 하지만 2026년 오늘, 우리가 마주한 역사 교육의 현실은 이 헌법적 가치와 임시정부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가.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환인의 환국, 환웅의 배달국, 단군의 조선으로 이어지는 확고한 역사관을 공유하고 있었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점된 이후 수많은 지사들은 우리 고유의 역사를 통해 민족의 자존을 지키려 헌신하였다. 이들이 공유한 역사 인식의 집약체가 바로 1911년 운초 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桓檀古記』와 여러 민족 사서다.

 

1942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제23주년 3.1절을 맞아 발표한 선언문에서 우리 민족은 처음 환국桓國이 창립된 이래 단군, 부여, 삼한, 고려, 조선 및 대한민국을 거쳐 5,000년의 국가 주권은 한민족에 의해 계승되었다고 하였다.      이미지=AI생성

 

『환단고기』는 단순한 옛 문헌의 모음집이 아니었다. 나라의 쇠약함을 통탄하며 자결한 해학(海鶴) 이기(李沂)가 감수하고,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이들이 목숨을 걸고 전승한 산물이다. 특히 1911년 편찬된 『환단고기』는 당시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양성 기지와 만주 독립운동 진영에서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핵심 텍스트이자 역사 교재로 활용되었다. 이는 기록과 증언을 통해 확인되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1942년 임시정부의 3.1절 선언문에 등장하는 '환국-단군-부여-삼국-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국통맥은 『환단고기』가 제시하는 '삼성기'와 '단군세기'의 역사 체계와 완벽히 일치한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인 신채호, 박은식, 등은 『환단고기』의 기반이 된 고유 사서들의 내용을 이미 깊이 공유하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뿌리를 설정한 것이다. 즉, 임시정부가 지키려 했던 국가 주권의 근거가 바로 『환단고기』의 내용과 기반을 같이하고 있다.

 

한국 역사의 전통은 전대(前代)의 역사를 후대가 정리하며 정통성을 잇는 방식이었다. 고려가 삼국사기를, 조선이 고려사를 썼듯, 조선 이후의 역사는 당연히 그 법통을 이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그 정신을 계승한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정리되어야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환단고기』와 같은 민족 사서들이다.

 

그러나 역사주권은 식민사관에 넘어가 버렸다. 1925년 조선사 편수회를 조직한 일제는 한민족의 뿌리를 부정하고 상고사를 신화로 조작한 『조선사』 37권을 펴냈다. 반도사관을 내세워 우리 민족을 타율적이고 정체된 민족으로 낙인찍은 사서를 쓴 것이다. 비극은, 해방 후에도 이병도(李丙燾), 신석호(申奭鎬) 등 조선사 편수회에 가담했던 친일 사학자들이 서울대와 고려대 등 학계의 주류를 형성하며 후학을 양성했다는 데 있다. 그 학풍은 정통 학설이라는 탈을 쓰고 대한민국 교과서에 그대로 이식돼 있다.

 

현재 주류 사학계가 『환단고기』를 '유사사학' 혹은 '위서'라고 몰아세우며 읽지 말아야 할 책으로 치부하는 행태는 사실상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 근간과 임시정부가 선언한 ‘환국桓國이 창립된 이래 배달국, 단군, 부여, 삼한, 고려, 조선 및 대한민국을 거치는 국통 의식’을 부정하는 일이다. 그들은 여러 핑계를 삼지만, 본질은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학 반도사관'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함으로 보인다.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단순히 3.1기념식을 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제가 왜곡하여 심어놓은 역사의 틀을 깨고, 독립운동가들이 공유했던 '대한사관'을 국가의 정통 역사로 복원하는 일이다. 조선 왕조의 기록과 환단의 상고사를 통합하여 환국의 국통맥을 잇는 '종합 정사(正史)'를 편찬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독립 국가로서 완수해야 할 마지막 과업이다.

 

3.1절을 지내며 우리는 다시 묻는다. 대한민국은 누구의 역사를 배우고 있는가. 일제 총독부가 만든 『조선사』인가, 아니면 독립군이 읽었던 『환단고기』인가. 안타깝게도 지금의 학풍은 여전히 식민의 그늘 아래 있다. 헌법과 3.1절 선언문에 명시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역사 주권(主權)을 회복해야 한다. 『환단고기』에 담긴 국통의 혼을 되살려 대한민국의 기상을 세우는 것, 그것이 바로 1919년 만세 소리에 응답하는 진정한 후손의 도리다.

3.1절을 지내며 우리는 다시 묻는다. 대한민국은 누구의 역사를 배우고 있는가. 일제 총독부가 만든 『조선사』인가, 아니면 독립군이 읽었던 『환단고기』인가.     이미지=AI생성

 

작성 2026.03.03 00:48 수정 2026.03.03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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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