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냥간은 대장간의 방언으로 강원도와 경남, 전라도 지역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낫이나 호미 괭이 등은 오래 쓰면 날이 무디어진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은 성냥을 해야 한다. 성냥간은 동네 어귀의 큰 동구나무 아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뜨거운 불 앞에서 성냥질을 하려면 나무 그늘이 있어야 했다.
흙으로 지은 성냥간의 화덕은 에스키모의 이글루처럼 생겼고, 그 옆에는 공기를 불어 넣는 풀무가 있었다. 화덕 앞쪽에 모루를 설치해 놓고 벌건 쇳덩이를 구부리고 자르고 두들겨서 농기구를 만들었다. 모루 옆에는 담금질을 위해 물을 담아 놓은 통이 있었다. 마무리 작업을 한 후 뜨거운 쇠를 순간적으로 물에 담가 강도를 조절했다. 담금질은 오랜 경험을 가진 성냥쟁이만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성냥쟁이가 섬세한 손재주로 달아오른 쇳덩이를 망치로 두드리면 장정들은 망치가 살짝살짝 건드린 곳을 큰 해머로 내리쳐서 괭이나 도끼의 모양새를 잡는다. 이때 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끝마무리와 담금질은 역시 성냥쟁이의 몫이다.
낫 칼 호미 작두 등은 자루가 있다. 나무 자루에 꽂는 부분을 슴베라고 하는데, 달아오른 슴베가 생나무 자루를 뚫고 들어갈 때는 치직 소리를 내면서 검은 연기가 난다. 그냥 꽂아두면 나무 자루가 타버리기 때문에 얼른 뽑아서 분리해 두었다가 쇠가 식으면 다시 자루를 박는다.
성냥쟁이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장인이므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면 단위로 한 명 정도 있었던 성냥쟁이는 동네마다 돌아다니면서 일을 해주었다. 봄에 성냥을 해주고 가을에 수확을 하고 나면 품삯은 나락으로 받아 갔다. 성냥쟁이는 농부들의 친구였고 삶의 동반자였다.
개천에 은어가 올라올 때쯤이면 성냥간에서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망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은 성냥간 옆에 쪼그리고 앉아 성냥쟁이가 펼치는 불과 쇠의 예술을 구경한다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통영 서호시장 뒷골목에 가면 아직도 성냥쟁이가 조선낫과 조선칼을 만들어 판다. 그러나 전통적인 우리네 성냥간의 모습은 아니다. 이제 농촌으로 가도 옛 성냥간은 볼 수가 없다. 낫과 같은 농기구는 중국산이 들어와 철물점을 점거해 버렸다. 농촌 인구가 급감하고 농사일은 기계를 모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신하는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먼 산 풀꾹새가 봄을 알리는 계절이 오면 내 귀에는 아직도 성냥쟁이의 망치질 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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