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기획연재] 14화 ‘지워진 얼굴들을 사랑한 아티스트’ 디렉터 해파리, KACF부터 글로벌 영화제까지 AI 영화로 소외된 서사를 복원하다

"LA·영국 거쳐 대한민국 인공지능 영화제(KACF) 2관왕 수상까지"… 글로벌이 주목한 IMDb 등재 영화감독의 탄생

다크팝과 글리치미학으로 빚어낸 단편영화 <1, 2, 3>… 그록·수노·캡컷을 아우르는 해파리만의 효율적 워크플로우

중경삼림과 우리들의 블루스가 남긴 예술적 사유… 뮈에르 서클과 함께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를 꿈꾸다


길가의 비둘기, 장애인, 미혼모, 고립 청년. 방 안의 가구나 배경처럼 늘 존재하지만 누구도 깊게 말하려 하지 않는 이들을 예술의 중심 프레임으로 가져오는 창작자가 있다. The Imaginary Pocus가 [창간특별기획연재] 아티스트 아카이브 시리즈로 만난 열네 번째 주인공은, 스스로를 ‘지워진 얼굴들을 사랑한 아티스트’로 정의하며 인공지능(AI)이라는 렌즈를 통해 소외된 서사를 복원해 내는 디렉터 해파리이다.

 

디렉터 해파리의 한국적 호러 판타지 대표작 <1, 2, 3> 영화 포스터 = 작가 제공

 

단절된 은둔의 굴레를 허물고 세상과 연결된 치유의 언어, AI 
지금은 첨단 기술로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영화감독이지만, 한때 그는 기본적인 문서 작성 도구조차 다루지 못했던 소위 ‘컴맹’이자 세상과 단절된 은둔 고립 청년이었다. 우연히 지원센터의 IT 기획 교육을 통해 AI를 처음 접한 그는 복잡한 기술적 숙련도 없이도 내면의 감정을 시각화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얻게 되었다.

 

생애 처음 생성형 AI를 접한 날, 그는 SNS를 통해 익명의 인연들이 보내온 소중한 추억과 상상을 모니터 위에 생생한 이미지로 구현해 냈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깊은 감동은 그를 세상 밖으로 이끌었다. 작가에게 AI는 소수 전문가만의 전유물이던 예술의 진입장벽을 허물고, 숙련된 기술이 없어 침묵해야 했던 이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예술의 민주화’ 도구이자 완벽한 치유의 언어다.

 

디렉터 해파리는 지난 2025년 12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서울콘(SEOULCON) AI 전람회에서 이 사실을 대중 앞에 섰다. 단독 출품한 5점의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 상영되는 무대에서, 그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은둔 청년이었던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했다. 동료와 관객들이 보내준 깊은 공감과 격려는 작가의 결핍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효한 언어임을 입증한 진실한 수용의 경험이었다.

 

디렉터 해파리의 이러한 자전적 고백과 은둔의 서사는 작품 <영원한 소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칼 융의 '영원한 소년' 모티프를 빌려온 이 작품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도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고립을 택한 청년의 심리를 묘사한다.

은메달을 따고도 마주해야 했던 아버지의 실망,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듯 스스로 회색 넥타이를 거는 서늘한 결단의 순간, 그리고 아들을 응원하던 어머니의 따뜻한 과일이 점차 차가운 침묵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먹먹하게 펼쳐진다.

 

특히 닿을 듯 닿지 않는 레트로 픽셀 게임 연출을 통해 뜻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 앞에서의 조급함을 시각화했다. 결말부에서 덥수룩한 머리를 자르는 주인공의 모습은 극적인 치유나 해피엔딩이 아닌, "더 이상 나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덤덤한 다짐을 보여주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디렉터 해파리의 자전적 고백과 은둔의 서사는 작품 <영원한 소년> 영화 포스터 = 작가 제공

 

차가운 기술적 오류를 창의적 연출로 승화한 색채와 글리치 미학 
디렉터 해파리의 영상 문법은 감정을 대변하는 정교한 색감과 기술적 한계의 영리한 역이용으로 요약된다. 휠체어를 탄 여성이 주인공인 뮤직비디오 <아무도>에서는 파란색과 흰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했다. 지하철 플랫폼과 경비원의 낡은 제복이 띠는 무거운 푸른색, 그리고 밝음을 상징하지만 휠체어의 이동을 막는 날카로운 장애물인 하얀 눈길의 대비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이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아이러니를 시각화했다.

 

나아가 AI 영상의 고질적인 오류인 얼굴 일관성 붕괴나 립싱크 어긋남을 감추지 않고 연출적 장치로 승화시킨다. 사이비 종교에서 아동 학대를 당한 아이가 무당이 되어 복수하는 한국적 호러 판타지 대표작 <1, 2, 3>에서는 인물 얼굴의 변형을 가리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손, 믹스커피를 젓는 손, 음악 리듬에 맞춰 까딱거리는 손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집중했고, 이는 오히려 폭력의 대물림 속에 갇힌 주인공의 광기를 극대화하는 글리치 미학이 되었다.

 

'한국판 조커'를 표방하는 이 작품은 뱀술과 같은 한국적 오브제를 영리하게 배치하고, 학대받던 아이의 모습에서 폭포수를 거슬러 오르는 무당의 뒷모습으로 이어지는 파격적인 점프컷을 선보인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권력의 순리지만, 이를 거스르는 무당의 에너지를 시각화한 것이다.

 

또한 평온한 시골의 푸른 밤과 주인공의 타오르는 붉은 머리칼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색채의 대비는 다크팝 사운드와 맞물려 잊히지 않는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또한 창업 피칭을 다룬 광고 영상에서는 립싱크 오류를 피하지 않고 음성과 영상을 의도적으로 1초가량 엇갈리게 배치하여, 현장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시간차 연출을 선보이기도 했다.


작가의 예술적 뼈대를 완성한 결정적 인생작 세 편 
디렉터 해파리가 지워진 얼굴들을 따뜻하게 응시하는 뚜렷한 세계관을 갖추기까지, 그의 예술적 사유에 깊은 영감을 준 세 편의 인생 작품이 있다.

 

첫 번째 인생작은 왕가위 감독영화 <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이다. 동서양이 혼재된 홍콩 특유의 이국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영상미, 특히 독보적인 색감과 미학은 작가가 프롬프트 작업 시 ‘조명 설정’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이끈 미학적 바탕이 되었다.

 

두 번째는 알레프(ALEPH)뮤직비디오 <아무도 그대를 바라지 않는>이다. 영상 속 남성 간의 사랑을 성별의 틀에 가두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눈빛'으로 읽어낸 작가는, 청소년기의 혼란과 미숙한 애틋함을 담아낸 이 작품을 통해 누군가를 향한 깊은 시선을 영상 언어로 구현하겠다는 서정적 목표를 품게 되었다.

 

마지막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이다.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가치 있게 조명하고 각자의 아픔을 지탱하는 이웃들을 다정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작가가 인공지능을 통해 일상의 소외된 얼굴들을 프레임의 가장 밝은 곳으로 데려오고자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이자 창작 철학 그 자체다.

 

상상을 현실로: 음악에서 시작되는 ㅎ디렉터 해파리만의 AI 워크플로우

 

[음악에서 시작되는 즉흥적 창작: 챗GPT와의 협업] 
대다수의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작가의 창작 프로세스는 여느 AI 영상 아티스트들과 달리 철저히 '음악'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전체 콘티를 미리 완벽히 짜두기보다, 한 컷을 완성한 뒤 다음 컷을 즉흥적으로 구상하는 작업 스타일을 가졌다. 작업이 흔들리지 않게 기준점이 되어줄 음악이라는 단단한 뼈대가 있어야만, 그 리듬에 올라타 다음 장면을 수월하게 상상하고 이어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 생성 과정에서도 작곡 툴을 바로 열기 전, 챗GPT(GPT)와 사전 협업하여 원하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박자(BPM)와 비트를 먼저 설정하는 치밀함을 보인다. 이후 가사의 운율이 비트와 어긋나지 않고 착 달라붙도록 세밀하게 다듬는데, 이 과정이 영상 전체의 몰입감을 결정짓는다.

 

[빛의 설계와 디렉팅 훈련: 그록(Grok)이 만든 정교한 감정선] 
시각화 도구로는 초기에 미학적 이미지가 뛰어난 미드저니(Midjourney)를 거쳐, 현재는 사실적인 인물 묘사와 질감 표현에 강점이 있는 그록(Grok)을 이미지와 영상 변환의 메인 툴로 사용 중이다. 이미지 프롬프트 작성 시 가장 공을 들이는 마법의 키워드는 '조명 설정(Lighting Setup)'이다.

 

차가운 실내광인지 따스한 자연광인지 등 빛의 각도와 종류에 따라 서사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동화된 고가의 툴들에 비해 직접 움직임과 디테일을 잡아야 하는 그록(Grok)의 수고로움을, 오히려 영상의 호흡을 직접 매만지고 사운드의 높낮이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치열한 디렉팅 훈련으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툴이 다 해결해 주지 않는 환경이 디렉터로서 영상을 완벽히 장악하는 힘을 길러주었다.

 

[효율성과 서사에의 집중: 캡컷(CapCut)으로 완성하는 편집] 
최종 컷 편집 단계에서는 프리미어 프로 같은 무거운 전문 툴 대신 캡컷(CapCut)을 주력으로 선택했다.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AI 툴들을 따라잡고 복잡한 기능을 익히는 데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고, 오직 '작품 만들기'라는 본질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이는 툴의 화려함보다는 자신의 상상을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현실에 구현해 내겠다는 작가의 단단한 고집이기도 하다. 작가는 현재의 워크플로우에 머물지 않고, 향후 클링(Kling)이나 씨드림(Seedream) 같은 새로운 영상 생성 기술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작가적 스펙트럼을 넓혀갈 계획이다.

 

디렉터 해파리의 대한민국 인공지능 영화제(KACF)에서 뮤직비디오 부문 은상 수상 작품 <구겨진 표정으로 서 있다>영화 포스터 = 작가 제공

 

글로벌 무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연대와 무한한 확장 
치열한 작업의 결과로 작가는 이미 글로벌 무대에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 첫 습작이자 이번 대한민국 인공지능 영화제(KACF)에서 뮤직비디오 부문 은상을 거머쥔 <구겨진 표정으로 서 있다>는 작가의 예리한 시선이 빛나는 작품이다. 레트로한 교복과 녹푸른 색감을 배경으로 사춘기 시절의 미묘한 질투와 소외감을 그리면서도, 화장실 칸에 홀로 숨어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관계적 고립감을 꿰뚫는다.

 

"차라리 다른 얼굴이었으면 조금은 덜 아팠을까"라는 직설적인 노랫말은 타인과 얽히며 느끼는 위태로운 정서를 대변하며 세대를 넘나드는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 작품을 비롯해 <1, 2, 3>과 <영원한 소년> 등은 시드니 옴니 인공지능 영화제 세미파이널리스트, 영국 퍼스트타임 필름메이커 세션 공식 선정, 크로아티아 인디 유러피안 시네마 최우수 뮤직비디오 부문 노미네이트에 잇달아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LA 라이프아트 페스티벌 공식 선정으로 글로벌 데이터베이스인 IMDb에 영화감독으로 당당히 등재되었다.

무엇보다 최근 대한민국 인공지능 영화제(KACF) 2관왕 수상은 한국 사회의 공기처럼 존재하던 소외된 서사가 국내 관객들에게 온전히 가닿았음을 증명하며 각별한 울림을 주었다. 눈부신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연대의 챕터를 열고 있다.

 

50명의 창작자가 모인 '뮈에르 서클'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7-anime projects'에서 한 팀의 감독을 맡은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애니메이션 장르를 소화하기 위해 꼼꼼한 연출 노트를 작성하고, 뜻을 함께한 전문 사운드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소통의 가치를 배우는 중이다. 홀로 우뚝 서는 천재 아티스트가 아니라, 수많은 목소리가 기술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는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그가 꿈꾸는 최종 비전이다.

 

고립과 결핍이 독보적인 예술적 자산으로… 
디렉터 해파리는 누구나 화려한 이미지를 쉽게 만들어내는 시대, 상상의 본질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응시하는 '관찰'에 있다고 굳게 믿는다. 지하철 장애인 플랫폼의 푸른 바닥이나 휠체어 바퀴에 걸리는 눈길처럼 투박한 파편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그 이면의 사회적 맥락을 한 줄의 문장으로 정제해 내는 포착의 순간이 그에게는 가장 숭고한 창작의 노동이다.

 

자신만의 예술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에게 작가는 단단한 조언을 남겼다. 
"가장 깊은 고립과 결핍의 순간이 사실은 당신만의 독보적인 예술적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한 기술을 갖춰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당신 안에 있는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포착해 내세요."

 

디렉터 해파리가 마지막으로 전한 "예술의 자격은 숙련된 기술이 아니라 꺼내놓을 용기에 있다"는 굳건한 메시지는, 세상과 단절된 막막한 현실 앞에서도 누군가의 결핍이 이미 그 자체로 위대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일깨워준다.

 

디렉터 해파리 = 작가 제공


[아티스트 소개: 디렉터 해파리] 
한때 기본적인 문서 도구조차 다루지 못했던 은둔 고립형 내향인이었으나, 우연히 접한 생성형 AI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영상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거듭났다. 스스로를 ‘지워진 얼굴들을 사랑한 아티스트’로 정의하며, 장애인, 미혼모, 고립 청년 등 배경으로 밀려났던 소외된 존재들을 예술의 중심 프레임으로 끌어오는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5년 서울콘(SEOULCON) 단독 전시를 시작으로, 대표작 <1, 2, 3>과 <영원한 소년> 등으로 미국 LA 라이프아트 페스티벌, 대한민국 인공지능 영화제(KACF) 등에 잇달아 선정되며 글로벌 데이터베이스 IMDb에 정식 영화감독으로 등재되었다. "예술의 자격은 숙련된 기술이 아니라 꺼내놓을 용기에 있다"는 철학 아래, 현재 50명의 AI 크리에이터가 모인 '뮈에르 서클'에서 팀 감독을 맡아 소외된 이들의 연대와 예술의 민주화를 실천해 나가고 있다.


[The Pocus Archive: 아티스트 아카이브 – OO을 사랑한 아티스트]
AI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결국 인간의 마음과 상상의 힘에 있다. 본지 The Imaginary Pocus는 창간을 맞이하여 기술만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감성과 상상 세계를 지켜가는 예술가들을 조명하는 연재 시리즈 [OO을 사랑한 아티스트]를 선보인다. The Pocus Archive는 앞으로도 자신만의 가치를 사랑하며 자신의 원하는 미래를 실현하는 아티스트들을 엄선하여 기록할 예정이다.
 

 

 

 


 

작성 2026.03.03 00:56 수정 2026.03.03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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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