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들수록 행복은 줄어든다고들 한다. 젊을 때가 전성기였고, 중년을 넘어서면 몸도 마음도 내리막이라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정말 그럴까.
마흔을 넘긴 지금,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영상에서 연세 지긋한 노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장면을 봤다.
"젊은 시절 중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노인의 대답이 예상 밖이었다.
"아니, 난 지금이 가장 행복해. 돌아가고 싶지 않아."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사실 이런 노인은 한두 명이 아니다. 체력도 기력도 쇠했을 텐데, 여생이 길지 않아 불안하거나 두려울 텐데. 그들은 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걸까.
첫째, 살아오며 쌓은 경험이 농익어 자유롭게 써먹을 수 있는 수준이 됐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한 이순(耳順), 귀가 순해지는 나이처럼 하는 일마다 거리낌이 없어진다. 경험치라는 든든한 뒷배가 생긴 덕분이다.
둘째,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생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다. 이십 대보다 육십 대의 내가 나를 더 잘 알 가능성이 높다. 긴 시간 동안 나에 대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관찰하고 사유해왔기 때문이다. 나를 정확히 안다는 건, 내가 언제 행복한지도 안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를 행복한 순간에 더 자주 데려다 놓을 수 있다.
셋째, 세상에 나눌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건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아초월이다. 타인을 돕고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욕구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노년에는 나눠줄 것이 생긴다. 지혜와 통찰이다. 이 욕구가 채워질 때 인간은 행복하다.
결국, 행복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행복이 오는 곳이 달라지는 것이다. 젊을 때는 주로 인정과 성공, 경쟁에서의 승리 같은 외부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 기준이 조금씩 이동한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 오래 하고 싶었던 일에 몰두하는 오후, 따뜻한 커피 한 모금,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잠깐 같은 순간들. 이런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크고 묵직한 행복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일본 작가 시바타 도요는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다. 평생 글과는 거리가 멀게 지내왔지만, 99세에 낸 첫 시집 『약해지지 마』는 150만 부 이상 팔리며 전 세계 독자에게 깊은 위로를 건넸다. 그녀는 노년을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라 여겼다. 그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 건, 행복이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92세에 글을 시작했다면, 나는 마흔에 시작했다.
내 이야기다. 20년 가까이 수의사로 살았다. 그러다 마흔에 삶을 리셋했다. 작가의 삶을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살다 보니 알게 됐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란 걸. 작가의 삶을 병행하면서 행복감은 오히려 높아졌다. 그리고 작가가 되어 얻은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 노년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100세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한다. 나의 오십 대, 육십 대 그 이후가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확신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다. 지금보다 더 행복할 자신이 있다는 것.
100세 시대에 마흔은 인생의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 휘슬이 막 울린 시점이다. 새로운 도전이나 커리어 전환을 생각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여기지 말자. 제로에서 시작해도 앞으로 사오십 년이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다.
나이는 먹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다만 그냥 두면 익는 게 아니라 썩는다. 의식적으로 잘 익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익어간 삶은 나이와 함께 행복이 더 진해지고 깊어진다. 내일이 기다려지고 설레느냐, 결국 그게 관건이다.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독저팅, 필북, 필레터, 필라이프 코칭 운영
부산 시청 특강 외 다수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