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끊임없이 채우는 법을 배워왔다. 더 높은 성적을, 더 많은 스펙을, 더 단단한 경력을, 더 분명한 목표를.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은 경계해야 할 상태였고, ‘넘침’은 곧 성공의 징표처럼 여겨졌다. 손에 쥔 것이 많을수록 안전하다고 믿었고,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있어야만 안심할 수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문득, 그렇게 쉼 없이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삶이 과연 우리를 온전한 행복으로 이끌고 있는지 묻게 된다. 더 많이 갖는 것이 과연 더 깊이 사는 것과 같은 의미일까.
어릴 적 나는 욕심이 많았다. 지는 것을 싫어했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목표는 늘 구체적이었고, 성취는 곧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도장이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조용히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단다. 결국 끝에 남는 건, 얼마나 비울 줄 아느냐야.”
어린 마음에는 다소 추상적으로 들렸던 그 문장이,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제 무게로 다가왔다.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처음 접한 ‘여백의 미(美)’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화면 한가운데를 가득 채우는 화려한 색채보다, 오히려 남겨진 빈 공간이 작품을 숨 쉬게 한다는 설명은 당시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왜 굳이 비워두는가. 왜 더 채우지 않는가.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여백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감상자의 상상과 사유가 머무는 자리라는 사실을. 비어 있음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이며,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깊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청년이 되어 삶이라는 방향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 시점에 섰을 때, 나는 오랫동안 바라보며 달려온 하나의 ‘깃발’을 떠올렸다. 분명 십수 년 동안 저 멀리 보이는 그것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왔다고 믿었다. 막상 가까이 왔다고 생각해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을 때, 그 깃발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목표는 흐릿해졌고,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낯설었다. 그때의 막막함과 초조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마치 물에서 건져 올려진 물고기처럼 허공에서 몸을 퍼덕이며 안간힘을 썼다.
방향을 잃은 채 이리저리 부딪히며 상처를 만들었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또 다른 목표를 급히 세우려 했다. 비어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불안을 다른 욕심으로 덮으려 했던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채워 넣어도 공허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어졌다. 그때 문득, 오래전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학창 시절의 ‘여백’이 겹쳐졌다. 혹시 나는 삶이라는 작품을 쉼 없이 색으로 덧칠하며, 숨 쉴 공간조차 남겨두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모든 칸을 빽빽하게 채워야만 완성이라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 역시 하나의 작품이라면, 그 안에는 반드시 여백이 필요하다. 계획되지 않은 시간, 목적 없는 산책,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대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듯 보이는 하루. 겉으로는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공간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마주한다. 멈춰 서서 자신의 숨결을 듣고, 타인의 속도를 존중하며,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서의 나를 받아들인다. 비움은 포기가 아니다. 도망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선택의 행위다. 끝없이 욕망의 목록을 늘려가는 대신, 지금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려내는 태도다. 모든 것을 손에 쥐려는 대신, 몇 가지를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가벼워지는 용기다.
우리는 종종 행복을 ‘획득’의 문제로 생각한다. 더 많은 것을 얻으면, 더 높은 곳에 오르면, 더 확실한 결과를 손에 넣으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충만한 순간은 대개 소유의 절정이 아니라, 욕심이 잠시 멈춘 자리에서 찾아온다.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스스로의 고요함에서, 성취의 환호가 아니라 마음의 평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안도한다. 삶의 여백은 우리를 나태하게 만드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방향을 다시 묻는 자리이며, 속도를 조율하는 쉼표다. 쉼표가 없는 문장이 숨 가쁘게 읽히듯, 여백 없는 삶은 스스로를 소진시킨다. 멈춤이 있어야 다음 걸음이 또렷해지고, 비어 있음이 있어야 채움의 의미도 선명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무욕의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우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일은 여전히 소중하다. 다만 그것이 나를 잠식하는 욕심이 되지 않도록, 때때로 내려놓고 비워낼 수 있어야 한다. 손에 쥔 것을 잠시 풀어놓고, 나 자신을 과도한 기대에서 해방시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성숙의 또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삶의 완성은 모든 것을 채웠을 때가 아니라, 비워야 할 것을 알아차렸을 때에 가까워진다. 작품 속 여백이 화면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듯, 비움은 우리 인생의 윤곽을 또렷하게 만든다.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이 부족한지를 계산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내 안에 있는 것들의 숨결을 느낀다. 행복은 어쩌면 멀리 있는 깃발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선 자리에서 발견되는 고요한 빛인지도 모른다. 욕심의 끝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길, 비워냄으로써 더 깊어지는 삶.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는 더 많이 쥐는 법이 아니라, 더 잘 내려놓는 법일 것이다.
여백을 두는 용기, 비움을 선택하는 태도. 그 작은 결단이 우리 삶을 한층 단단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의 저자인 우리는, 비로소 조용하지만 흔들림 없는 행복의 형상에 닿게 될 것이다.
[홍수민]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재학.
'제7회 코스미안' 인문칼럼 대상
'행복울주를 담다' 수필 부문 우수상
'2025 동대문구 문예공모전' 시 부문 우수상
2021년 서울시 동대문구청장 지역사회공헌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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