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타임즈 / 김미경기자]
서울역사편찬원(원장 이상배)이 서울에서 살았던 개인이 남긴 기록을 통해 서울의 역사를 살펴보는 ‘서울역사강좌 제21권 《오직 잊지 않기 위해 남긴다》’를 발간했다. 시민들에게 서울의 역사를 쉽고 흥미롭게 알리는 ‘서울역사강좌’의 2026년 상반기 수업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해당 강좌의 교재로도 활용된다.
이번 도서는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살아간 이들이 남긴 일기·편지·문서 등 개인의 기록을 통해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역사적 순간과 맞닿아 있는지를 10개의 주제로 조명한다.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던 개인의 삶 속에 시대적 격변의 흐름이 스며들고, 그 변화와 마주한 순간들이 어떻게 기록으로 남았는지 생생하게 담고 있다.
도서에는 조선 제22대 국왕인 정조부터 16세기 사대부 관료 이문건, 개화기 선교사 언더우드 등 다양한 시대와 계층의 기록이 수록됐다.
○▴이문건의《묵재일기》▴엄경수의《부재일기》▴정조의《일성록》▴지규식의《하재일기》▴이윤선의《공사기고》▴김옥균의《갑신일록》▴선교사 언더우드의《언더우드 자료집》▴윤치호의《윤치호일기》▴장효근의《장효근일기》▴김성칠의《김성칠일기-역사 앞에서》
정조의 《일성록》은 그가 세손 시절부터 써 내려간 《존현각일기》를 즉위 이후 확장한 국왕의 공식 기록물이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를 반성한다”라는 뜻을 담아 국왕의 통치 행위를 개인의 시각에서 정리한 기록으로, 승정원의 정무 기록인 《승정원일기》나 국왕 사후에 사관들이 편찬한 조선왕조실록과는 구분된다. 정조 이후 《일성록》은 역대 국왕들에 의해 계승되어 작성되었다.
조선시대 기록인 이문건의《묵재일기》와 엄경수의《부재일기》에는 사대부의 일상의례와 놀이문화, 교육 등 생활상과 함께 관직 생활의 경험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또한 이윤선의《공사기고》와 지규식의 《하재일기》에는 19세기 외세의 침략 등으로 인해 혼란한 정국과 변화하는 서울의 생활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김옥균의《갑신일록》에는 1884년 우정국 연회장에서 시작되어 ‘3일 천하’로 막을 내린 갑신정변의 실기(實記)가 담겨 있다. 아울러 1885년 어수선한 서울에 도착한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남긴 편지와 문서를 통해 근대 초기 서울의 분위기와 교육기관 설립에 대한 의지도 엿볼 수 있다.
《윤치호일기》에는 일제강점기 지식인으로서 개화·자강운동을 펼쳤지만 결국 친일파로 전향하게 된 과정이 기록돼 있다. 역사학자인 김성칠의《김성칠일기》에는 1945년 광복 이후의 격동과 함께 6·25전쟁 당시 공포 속에서 생존을 이어가야 했던 일상이 담겨 있다.
서울역사강좌 제21권《오직 잊지 않기 위해 남긴다》는 3월부터 서울역사편찬원 누리집(history.seoul.go.kr)의 전자책 서비스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으며, 서울 시내 주요 공공도서관에도 배포된다. 구매를 원하는 시민은 서울책방 누리집(store.seoul.go.kr)에서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도 있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다양한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역사를 마주할 때, 우리는 거대한 사건 이면에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다층적인 삶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라며 “이 책이 역사적 격변기 속에 개인이 어떤 태도로 시대를 마주했는지를 돌아보고 지금 우리의 삶 또한 훗날 역사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도서 상세 내용
개인이 남긴 일기, 편지, 문서 등을 통해 우리는 과거를 살아간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조선시대 국왕에서부터 관료, 서리와 공인, 근현대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는 일상 속 자신과 주변에서 벌어진 사건뿐 아니라 시대적 변화의 흐름이 담겨 있다. 이러한 개인의 경험이 집단적 역사 속에서 갖는 의미를 살펴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삶 또한 역사의 한 순간으로 기록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서울에 거주한 사대부 이문건과 엄경수는 자신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문건의 《묵재일기》와 엄경수의 《부재일기》에는 사대부의 일상의례, 자녀 교육과 놀이문화, 의학정보 등 생활 전반에 관한 모습뿐만 아니라 문과에 급제한 이후 관직생활을 하며 겪은 정치적·사회적 경험을 담고 있다.
○ 제1장: 두건을 쓴 아들이 서울로 도망쳤다, 《묵재일기》
이문건은 1494년에 태어나 1528년 3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경상북도 성주에서 23년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1567년 74세로 생을 마감했다. 부인인 김돈이와 사이에서 3남 2녀를 두었으나 대부분 어려서 죽고 둘째 아들 기성과 막내딸 순정만 성년까지 성장하였다. 이문건의 일기인 《묵재일기》에는 가족의 생로병사와 갈등, 자식 교육, 주변 인물들과의 교류, 관직 생활 등 16세기 사대부 일상이 담겨 있다.
○ 제2장: 추위와 굶주임으로 서울을 떠났다, 《부재일기》
엄경수는 1672년 태어나 1705년 34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1718년 충주로 이사하여 빈곤한 생활을 이어가다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아버지 엄집은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그의 형제와 사촌 역시 과거 급제를 통해 관직 생활을 하였다. 엄경수의 《부재일기》에는 자신의 일상뿐 아니라 아버지, 형제, 친구들이 지은 시와 부, 주고받은 편지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당시 정세와 주변에서 전해 들은 기이한 사건 등도 함께 쓰여 있어, 개인의 삶 속에서 당시 서울에서 살아가는 문인들의 교류 모습과 관료로서 일상, 그리고 시대적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다.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자신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이 《존현각일기》이다. 이후 이를 국가의 공식 기록으로 승격시킨 것이 《일성록》이다. 《일성록》에는 국왕으로서 접한 보고와 재결 사항, 인사와 행정, 군사와 재정 문제, 학문 진흥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 18세기 후반 조선의 정치·사회적 흐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 제3장: 나는 날마다 세 가지를 반성한다, 《일성록》
정조는 1775년 세손으로서 대리청정을 시작하였고, 1777년 즉위하면서 조선의 제22대 국왕이 되었다. 정조는 서울을 사방의 근본으로 인식하고 능행과 원행 등 거둥을 통해 직접 주민을 만나 민원을 청취함으로써 국왕이 도성민을 살피는 모습을 구현하였다. 이처럼 《일성록》에는 18세기 후반 서울의 모습과 국왕 중심의 통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중인으로서 변화의 시기를 겪어 냈던 지규식과 이윤선의 일기이다. 지규식의 《하재일기》와 이윤선의 《공사기고》에는 19세기 외세의 침략 등으로 인해 혼란한 정국과 변화하는 서울에서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 제4장: 서울 소식은 믿을 것이 못 된다, 《하재일기》
지규식은 1851년 태어나 경기도 양근 분원에서 사옹원에 그릇을 납품하는 공인이었으며, 양근과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였다. 그의 사회적 신분은 상인이었으나 지역 사회에서는 지도층으로 대우받는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그는 전통적 질서 속에서 국가의 위기에 직면해 저항과 체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간다.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영위하였지만 평탄하지 않은 가정사를 겪은 그의 삶은, 근대 전환기 사회적·경제적 변화에 대한 개인의 대응을 보여준다.
○ 제5장: 헌 집은 3천 냥에 팔고, 새 집은 2천 냥에 샀네, 《공사기고》
이윤선은 1826년 태어나 1869년 사망하였으며, 15세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일기를 작성하였다. 그의 직업은 호조 소속 서리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상당한 재력을 축적하였다. 일기에는 자신의 일상과 자녀 교육, 과거 준비, 서리직 운영 등 일상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동시에 왕의 승하와 즉위, 궁궐의 중건, 외세 침입, 농민 항쟁 등 19세기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개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884년 10월 17일 우정국 연회장에서 정변이 발생하였다. 3일 천하로 끝난 그날의 실기(實記)인 김옥균의 《갑신일록》과 1885년 어수선한 서울에 도착한 선교사 언더우드가 남긴 편지와 문서를 통해 그가 목격한 서울의 분위기와 근대 교육기관 설립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 제6장: 까닭이 있어 그렇게 적었을 뿐이다, 《갑신일록》
김옥균은 1851년 태어나 1894년 상하이에서 암살되었다. 그는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에 망명하여 1885년 《갑신일록》을 집필하였다. 《갑신일록》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닌 제2의 거사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기록으로, 일부 사실의 선후를 바꾸거나 의도적으로 내용을 가공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갑신정변의 준비와 전개 과정, 개화당의 국제 전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19세기 조선에서 개화를 추진하던 인물들의 고민과 한계를 잘 보여준다.
○ 제7장: 누가 보지 않아도 붉게 피는 장미, 《언더우드 문서》
언더우드는 1859년 런던에서 태어나 1872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1884년 조선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로 선정되어 1885년 인천을 통해 조선에 도착하였다. 정동에 거처를 마련한 그는 선교와 교육 활동의 기반을 닦았으며, 선교사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갖추었다. 그가 남긴 편지, 문서, 저서 등은 19세기 후반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와 정동 일대의 풍경, 서울 일상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살아간 두 지식인 윤치호와 장효근은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조선의 지식인으로서 개화·자강운동을 펼쳤지만 결국 친일파로 전향한 윤치호의《윤치호 일기》, 그리고 일상에 대한 기록 속에서 3·1운동이 벌어진 그날 보성사에서 체포된 비일상의 순간까지도 기록으로 남긴 장효근의《장효근 일기》를 확인할 수 있다.
○ 제8장: 서울 명문가에서 평양 사위를 맞다니, 《윤치호일기》
윤치호는 1865년 태어나 1945년 사망하였다. 1881년 조선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되었고 이후 중국과 미국에서 수학한 근대 지식인이다. 그는 1883년부터 1943년까지 약 60년에 걸쳐 일기를 작성하였으며, 그 기록에는 개인의 일상과 활동은 물론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 함께 담겨 있다. 격변하는 시대 근대 지식인으로 그의 선택과 행보는 생존 전략과 그 한계를 동시에 성찰하게 한다.
○ 제9장: 3월 1일 맑음 보성사에서 체포되었다, 《장효근일기》
장효근은 1867년 종로구 삼청동에서 태어나 1946년 사망하였으며, 20대에 《제국신문》, 《대한협회회보》, 《대한민보》 등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동한 언론인이었다. 그는 1916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민력》에 매일의 일을 간략히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일상과 시대 상황을 전하였다. 1910년대 보성사 총무로 재직하면서, 1919년 3·1운동 당시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배포하는 데 관여하여 체포·투옥되었다. 그의 일기에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서울의 사회상과 민족운동의 경험이 담겨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역사학자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김성칠은 1950년 6월 25일 서울에서 전쟁을 맞닥뜨린다. 점령당한 서울과 수복한 서울에서 김성칠이 경험했던 공포와 생존을 위한 일상이 《김성칠일기》를 통해 드러난다.
○ 제10장: 북한군이 점령한 서울에 살다, 《김성칠일기-역사앞에서》
김성칠은 1913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1951년 사망하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고등학생 때 비밀결사를 결성해 민족운동에 뛰어들었고, 1년간 미결수로 옥고를 치렀다. 1934년 일본 유학 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며, 광복 이후 모교인 경성법학전문학교에서 국사와 국어를 가르쳤다. 그는 1945년 광복 이후부터 1951년까지 5년 4개월간 일기를 작성하였다. 그의 일기에는 광복 이후 정치적 혼란과 6·25전쟁 당시 서울의 일상이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