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우린 같은 숨을 쉰다

이태상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92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두 권의 책이 각기 크게 화제가 되었었다. 그 하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목소리라는 뜻의 ‘복스’란 제목을 단 니콜슨 베이커(1957 -)의 에로틱한 소설이다. 이 책 내용은 서로 전혀 모르는 남녀가 공동 가입된 전화선을 통해 우연히 나누게 되는 한 통의 전화가 전부이다.

 

두 사람은 전화로 각자 자기의 내밀한 성적 환상을 나눈다. 여자는 세 남자 페인트공과 성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남자는 그의 아파트에서 동료 직원과 함께 담요를 덮고 앉아 포르노를 보면서 조용히 각자 자위한 얘기를 한다. 재래식 갈음할 간(姦) 자(字)를 계집녀 셋 대신 아들 자 셋 간(子子子) 자(字)로 바꿨어야 했을 일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 나오는 남자 짐은 플라토닉한 정신적인 관음자로 여자의 침실을 엿본다든가 하지 않고, 여자 개비는 자기가 다른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자신의 자극성만으로도 스스로 자극되어 흥분한다. 그는 독서 또한 전화통화처럼 아주 사적 비밀에 속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혼자 책을 읽을 때는 무슨 옷을 어떻게 입고(아니면 벗고) 있든 상관없는 일이라고. 

 

옛날에는 편지로 연애하고 사랑했지만, 오늘날엔 전화나 인터넷 카톡 등으로 한다. 전에는 전화로는 얼굴 체면을 지켜주었지만, 최근에 개발된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전화기와 스카이프 장치가 보급되면서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그 당시 신문을 보면 한국에서는 전화로 만나 데이트하는 ‘폰팅’이 유행하고 전화로 맺어주는 ‘폰팔’ 맞선도 등장했다고 했다. 

 

또 언젠가 76세의 섹스광 프랑스 노인이 평생의 숙원이었던 ‘여성 속옷 투시용 X-레이 특수안경’을 발명, 소원을 이루었으나 이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는 신세가 되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어떻든 이 ‘복스’란 책은 예부터 ‘사랑박사’들이 늘 강조해 온 바와 같이 사람 신체 가운데 두뇌가 가장 섹시한 기관임을 재강조 해 준다.

 

한편 또 한 권의 책은 미국에서 ‘사랑의 예언자’로 불리고 있는 그 당시 39세의 마리앤 윌리암슨(1952- )이 쓴 ‘사랑으로의 회귀’이다. 마약중독과 많은 실연의 시련을 겪고 여러 번의 이혼녀인 미국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의 결혼식 주례를 선 윌리엄스 양은 이 책에서 “사랑이란 우리들 가슴이 직각, 직관, 직감하는 것으로 우리 모두가 다 마음속으로 동경하는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란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엔 수많은 사랑의 구도자, 순례자들이 백 개가 넘는 윌리엄스 양의 녹음된 사랑강좌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아니면 미국 전 지역으로 순회하며 갖는 ‘사랑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사랑 메시지’에 귀 기울여 왔다. 이 같은 현상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사랑에 굶주려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리라. 

 

이것이 다 서구 물질문명의 발달과 이에 따른 금전만능, 자본주의, 배금사상이 팽배, 만연함으로 인간의 두뇌계발과 회전만 촉진되어 온 반면, 인간의 심장 기능이 쇠퇴, 마비되어 뇌사가 있기 전에 심장사를 일으킬 지경과 사태에 이른 탓 아닐까. 우리가 흔히 ‘골 아프다’ 할 때는 남을 해치면서라도 제 잇(利)속만 차리려는 이해타산 까닭이고, ‘가슴 아프다’ 할 때는 나와 남 가리지 않고 우리 모두 서로를 걱정하고 보살피며 위하는 사랑 때문이 아니던가. 아무리 사랑해도 너무너무 부족하고 더 할 수 없어.

 

그렇다면 우리 모두 우리 머리 돌아가는 대로 살기보다 우리 가슴 뛰는 대로 살 일이어라. 옛말에 “인심(人心)은 유위하고 도심(道心)은 유미 하다.” 했는데, 이를 고쳐 “인정인신(人精人神 )은 유위무정(有危 無情)하나 인정인심(人情人心)은 유미유위(唯美有爲)하다” 해야 하리라. 가치란 양보다 질에 있다고 한다. 

 

백 년을 하루 같이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를 백 년 같이 사는 사람이 또한 있으며 돈 백 양을 한 푼처럼 쓰는 이 있는가 하면 한 푼을 백 냥처럼 쓰는 이도 있지 않던가. 할 일이 너무 많아 시간이 없는 사람 있나 하면 할 일이 없어 시간이 너무 많은 사람도 있고, 벌기 너무 바빠 돈 쓸 틈 없거나 모으기 너무 바빠 돈 못 쓰는 ‘돈 많은 거지’가 있나 하면 벌기 무섭게 쓰기 너무 바빠 돈 한 푼 손에 남아 있지 않은 ‘돈 없는 부자’도 있지 않은가.

 

아, 그래서 천재는 단명하고 미인은 박명하다고 하는가 보다. 그러고 보면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동시에 또 얻는 것도 있기에 세상만사 너무 좋아만 할 일도 아닐뿐더러 너무 나쁘게만 여길 일만도 결코 아니리라. 하지만 보는 사람 눈에 따라 모든 것이 좋게만 보일 수도 나쁘게만 보일 수도 있으리. 아, 또 그래서 영국의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1819- 1900)도 이렇게 말했으리라. 

 

“나쁜 날씨란 없고 여러 가지 다른 좋은 날씨만 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남겼다.

 

“삶 이외에 다른 재산은 없다. 사랑과 기쁨과 동경의 삶 말이다. 어느 나라고 그 나라 국민을 행복하고 품격 높게 잘 보살피는 나라가 가장 부유한 나라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자아실현과 자아완성을 통해 그리고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동원, 다른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나 일반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이 점을 강조하고 밝혀주는 것이 다음과 같은 성인들을 위한 동화들인 것 같다.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의 장편 서사시 ‘이녹 아든(1864), 영국 작가 존 바년(1628-1688)의 ‘천로역정(1678), 영국작가 다니엘 디포(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1719), 앵글로 아이리쉬 풍자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의 ‘걸리버 여행기(1726),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1967)’와 ‘잠자는 공주(1528),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의 ‘돈키호테(1605),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1807-1882)의 장편 서사시 ‘에반젤린(1847) 등 말이다. 

 

특히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1812-1870)의 ‘크리스마스 캐롤(1843)은 사람은 누구라도 스스로 제 마음을 고쳐먹기에 따라 아주 판이하게 딴사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심술 사나운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를 죽은 그의 옛날 동업자였든 말리의 유령이 찾아온다. 스크루지는 자기가 살아온 과거와 그가 살고 있는 현재 그리고 그가 어떻게 죽을 미래의 모습까지 환영으로 보게 된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이와 같은 악몽에서 깨어난 그는 딴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동안 몹시 박대하고 천대한 그의 점원 봅 크라취트에게 칠면조도 한 마리 보내고 자선 행사에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인심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 밖에도 프랑스의 비행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의 ‘어린 왕자(1943)는 우리 모든 어른들 각자 속에 가사 상태에 있거나 깊이 잠들어 있는 우리 자신들 본연 본래의 모습인 ‘어린 왕자, 어린 공주’ 어린아이, 곧 우주 나그네 우주인 코스미안으로서 우리 모두의 진정한 정체성을 되찾게 해준다. 1855년 미국의 제14대(1853-1857)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 (1804-1869)에게 쓴 편지에서 아메리칸 원주민 인디언 추장 시아틀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생물은 다 같은 숨을 쉰다.

짐승, 나무, 그리고 사람 자신도.

그런데 백인들은 자신들이 들이쉬는

자연의 공기를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여러 날을 두고 자리에 

누워 앓다 죽는 사람처럼

그는 자신의 고약한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하는 것 같다. 

 

백인들 또한 멸종하리라. 

어쩜 다른 인종들보다 먼저.

계속해서 네 잠자리를 

오염시키고 더럽혀 보라.

 

그러면 어느 날 밤 너는 

네가 싼 오물에 숨 막혀

죽을 수밖에 없으리라.

 

대륙의 모든 들소 버팔로가

모두 너희들 손에 도살되고 

들판 야생마가 너희들 손에

하나같이 다 길들여지는 날 

숲과 들판 온 대륙 곳곳이 

너희들이 지나간 냄새와

흔적으로 가득 차 버리고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가

수다 떠는 너희 부인들로 

가리어 그 빛을 잃는 날

무성하고 울창하던 산림

자취도 없이 사라졌어라. 

독수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림자 없이 사라졌어라.

 

이것이 삶다운 삶의 종말을 고하고

다 죽은 목숨 조금 더 살아남기 위한 

단말마적 몸부림의 시작일 뿐이리라.

 

이를 단 한마디로 줄이자면 우주만물이 다 하나이고 우리 모두 같은 숨을 쉰다는 만고의 진리 곧 코스미안 사상을 밝힌 것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6.03.07 10:46 수정 2026.03.0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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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