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칼럼] 울타리 안에 갇힌 시선, 편견과 선입견

홍영수

우린, 자신만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비록 창살에 낀 얼룩과 먼지마저도 삶의 경험이라 단정 지어 정당화한다. 이러한 관점이 자기만의 색깔로 보는 편견과 미리 결론 지어버린 선입견이라는 넘어서기 힘든 울타리가 아닐까. 

 

평생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 사는 사람은 고향의 흙냄새만 알 수 있을 뿐, 다른 지역의 흙냄새를 모를 수 있다. 또한, 사방의 벽에 둘러싸인 방에 갇힌 사람은 밖의 풍경과 시간, 계절의 흐름을 알지 못한다. 자기만의 울타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편견에 차 있다. 그래서 사람은 체험과 여행 등을 통해서 그 편견을 벗어나고자 한다. 상상의 날갯짓을 통한 일상적인 세계와 나를 가둔 두꺼운 벽을 깨부수고 신선한 바람과 새로운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서이다. 

 

지난 토요일, 오후 2시쯤 방탄소년단의 공연 현장인 광화문에 갔다. 그토록 익숙했던 광장이, 광장이 아닌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익숙함에 젖은 시선이 낯섦의 시선으로 바뀌는 순간,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k-팝’ 열풍 속 전 세계의 젊은 세대들이 즐기고 함께하는 현장에 직접 발을 딛고 서 있다는 것에 대한 낯섦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넘어 대스타의 공연 현장을 찾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백발의 시니어도 젊은 세대 못지않게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실제로 백발의 시니어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

 

 활기 넘친 젊은 세대들의 세계에 뛰어든 것은, 그들 세계에 머물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시 나의 세계로 돌아와 예전과 다른 시각과 다른 차원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어서였고, 나의 기준이 옳다고 믿으면서 변화를 꺼리는 태도를 벗어나 변화의 가능성을 좇기 위해서였다.

 

 기존의 생각을 고수하고 새로운 정보나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래서 변화 없는 사고에 멈추지 않을까 싶어 찾았다. 물론, 몇 년 전 이태원에서 경험했듯이 공연장에 많은 인파의 두려움과 그에 따른 위험, 그리고 가족의 만류에도 기꺼이 찾는 이유가 바로 각국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상상력과 호기심을 해소하는 경이의 타우마젠을 경험하기 위함이었다.

 

그곳에서 타이베이에서 이른 아침에 한국에 왔다는 대여섯 명의 BTS의 소녀 펜들 만났다. 설익은 언어로 대화하던 중 갑자기 “BTS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었다. 순간 그녀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나의 하얀 백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는 모습에서 “내가 와야 할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짧은 언어이지만 소통은 가능했기에 나이를 밝히며 여기에 온 이유를 들려주었더니 긍정적인 눈빛으로 엄지 척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세대를 초월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네’ 또는 ‘꼰대’와 ‘MZ’ 등의 날 선 언어로 분류해 편견의 굴레를 씌우고 있다. 이러한 선입견과 편견은 각 세대의 이념이나 가치관을 판단하는데, 기성세대는 살아온 만큼의 경험을 바탕 삼아 MZ세대를 미숙하고 나약함으로, MZ세대는 기성세대를 구태의연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로 치부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요소들을 해결하는 열쇠는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세대 갈등은 일반적으로 나이 차이가 많은 세대에서 오는 경우이다. 서로가 그 시대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잣대로 다른 세대를 가늠하는 심리적이고 실제적인 차별의식이다. 그 이유는 서로를 향해 선입견과 편견의 울타리를 낮추지 않고 오히려 높여가며 갈등을 부추기는 현상 때문이다. 이처럼 세대라는 틀에 서로를 집단으로 묶어서 하나의 상표처럼 딱지를 붙이기에 그 상표로 정의될 수밖에 없다. 우린, 상표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붙여놓은 상표를 떼어낼 때 세대 갈등은 좁혀질 것이다. 그리고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시선의 틀을 벗어날 때 가능한 일이다.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울타리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세대를 초월해 아우를 수 있는 수많은 인연들과 기회를 가로막는 장벽이 될 뿐이다. 그 장벽을 무너뜨리는 자리에는 두려움과 낯섦의 세상이 아닌 더 넓은 세계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지평선이 보일 것이다. 

 

사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오히려 풍요로움이다. 그래서 나의 세대, 나의 세계관인 같음에 얽매이기보다는 또 다른 세대와 서로 다른 세계관과의 다름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이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지구의 유언장』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6.03.23 10:36 수정 2026.03.2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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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