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필 칼럼] 더 멀리, 더 오래 가려면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전략이다

쉬지 않고 달린다. 쉬지 않고 채운다. 쉬지 않고 벌여 놓는다. 그러다 문득 멈칫한다. '이렇게 계속 가도 되는 걸까. 혹시 나는 지금 서서히 닳아 없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얼마 전 내가 운영 중인 온라인 독서 모임 5기 마지막 모임을 마쳤다. 저녁 9시부터 11시가 넘도록 특강을 듣고, 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기부터 지금까지 보통 1주일 텀으로 다음 기수를 이어왔다. 이번에도 그렇게 6기를 바로 열려 했다. 

 

그런데 생각을 바꿨다. 벌여 놓은 일도 많고, 잠시 숨 고르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솔직히 찜찜했다. 잠시 멈추는 내 모습이 왠지 나태해 보였다. 쉬는 순간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도 있었다.

 

배터리가 방전되기 전에 충전하는 것이 현명하다. 방전된 후에 충전하려면 이미 늦다. 몸이 보내는 신호,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할수록 더 큰 대가를 치른다. 우리는 멈추는 순간을 실패의 신호로 오해하지만, 사실 멈춤은 다음 구간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전략에 가깝다.

 

사실 나도 큰 대가를 치른 적이 있다. 블로그를 시작한 초창기 때였다. 글쓰기의 맛을 본 후 열정과 의욕이 넘쳤다. 멈추지 않는 폭주 기관처럼 매일 글을 썼다. 나중엔 수면 시간까지 줄여가며 썼다. 그러다 결국 몸에 탈이 났다. 그때 깨달았다. 오래 지속하려면 적절한 속도와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음악에도 쉼표가 있다. 음표와 음표 사이에 쉼표가 없으면 멜로디가 되지 않는다. 마디와 마디 사이의 적절한 침묵이 있어야 음악이 완성된다. 삶도 다르지 않다.

 

수의사로 일하면서도 이 사실을 매번 확인한다. 수술이 끝난 환자는 회복실에서 쉰다. 충분히 쉬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쉬는 것 자체가 치료의 일부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지금 지쳐 있다면 그 지침 자체가 신호다. 억지로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다. 쉬어야 회복되고, 회복해야 다시 달릴 수 있다.

 

뇌과학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뇌는 오히려 활발하게 작동한다. 이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한다. 멍하니 있거나 산책을 하거나 그냥 쉬는 동안, 뇌는 정보를 정리하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문제의 해결책이 뜬금없이 떠오르는 것도, 샤워 중에 좋은 생각이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 또한 샤워할 때나 머리 감을 때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 무용해 보이는 시간이 사실은 가장 유용한 시간일 수 있다. 무용의 유용이다.

 

소크라테스는 한가로운 시간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라고 했다. 가시적인 성과를 만드는 것만 생산적인 일이 아니다. 유지하고 보수하는 시간도 생산적이다. 1주일에 하루나 이틀은 숨을 고르고, 사색하고, 못 챙긴 것들을 챙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쉬지 않아서 무너지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쉬어서 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멈출 때를 아는 것도 실력이다. 

더 멀리, 더 오래 가고 싶다면 지금 잠깐 멈춰도 괜찮다. 잠시 멈추는 그 용기가 끝까지 가는 힘이 된다.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독저팅, 필북, 필레터, 필라이프 코칭 운영

부산 시청 특강 외 다수 출강

이메일 : tothemoon_park@naver.com

 

작성 2026.03.24 11:33 수정 2026.03.2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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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