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숙 칼럼] 나를 입는 카멜레온

민은숙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윤리와 도덕 시간엔 그렇게 배웠으나, 사실 그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멋쟁이라 눈에 자주 들어왔다. 한때 무대 위 배우처럼 다른 인물을 입는 선생님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과도기적인 시대를 산 나는 중학교 때 한시적으로 교복을 입었다. 희미한 어린 시절 명절만큼은 엄마가 꼭 새 옷을 사 주셨다. 그러나 예견된 공시로, 한 해를 위한 새 교복이 어려운 살림에 부담이었나 보다. 당신이 몸담은 회사의 직원을 수소문하여 졸업생의 교복을 얻어오셨다. 깨끗하게 세탁하고 다려 옷걸이에 걸었다. 

 

아무리 깔끔하고 바지런한 엄마일지라도 3년생 교복을 갓 나온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딱히 바라는 것이 없는, 아니 감히 바랄 수 없던 나는 군말 없이 입고서 등교했다. 그마저도 감지덕지했다. 햇살을 머금은 친구들의 교복 깃은 마치 한겨울 눈처럼 눈이 부시다. 내 것은 빛나진 않아도 신들린 엄마 솜씨로 3년 입은 것 같지 않다. 1년 만에 그 교복을 벗어 던졌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내내 사복을 입었다. 

 

번화가 한가운데 위치한 직장은 주위가 돈이란 돈을 죄다 흡입하려고 혈안이 된 곳이다. 출입문만 나서면 레스토랑, 맞은편엔 유명 브랜드 상가들이 즐비한 곳이다. 기특하게도 직장은 몸에 딱 맞는 유니폼을 때맞춰 공급해 주었다. 퇴근 후에는 그다지 내키지 않아도 동료들의 쇼핑을 따라다닌다. 그녀들은 이쁜 옷을 자주 샀다. 곁에서 어울리는지 봐주기만 하는 내게도 입어보라며 구매를 부추겼다. 지갑은 접착제라도 바른 듯 입을 벌리지 않았다. 그녀들이 열 번을 사면 나는 한 번을 살까 말까였다. 사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통장 관리를 전적으로 엄마가 했다. 용돈만 받아 생활했다. 유니폼이 있어 딱히 구매 욕구가 일지 않았다. 하의 몇 벌에 상의를 번갈아 입을 뿐이다. 가끔은 새 옷으로 기분 전환하기도 했다.

 

결혼 후 지금의 아파트에 입주했다. 후문 쪽으로 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학원가와 학교 등 하교 시에 통과할 수밖에 없는 길목에 옷 가게와 먹거리 가게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이곳 점주인 언니와 친분을 맺고 강산이 변했다. 언니는 사연 있는 옷을 주기 시작했다. 눈길 한 번 받은 적 없고, 마음에 안 든다고 거부당하고, 변심으로 외면당한 것들이다. 체중 변화가 거의 없는 내게 맞을 거라면서 가끔은 새것을 주기도 한다. 내 취향은 거의 묻지 않은 옷이 옷장에 하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더불어 따라오는 부록이 있다. 언니의 친구는 쇼핑이 취미이다. 그녀에게서 기껍게 내게로 온 것이 나만을 바라본다. 언제 햇빛을 보려나 눈에 핏발이 서도록 깜박임이 없다. 족두리도 풀지 못하거나, 하룻밤 겪었다고 외면당하거나, 싫증 났다고 주인에게 상처받은 것들이다. 

 

명품에는 눈이 돌아가지 않았다. 소유하고 있는 명품 가방은 남편, 동생, 올케가 사 준 것이다. 구두는 또 어떤가. 발이 명품을 거부한다. 새 구두만 신으면 어김없이 뒤꿈치가 까져야 한다. 신기 전에 양초로 문지르고, 밴드를 붙이고 신어 봐도 별수 없다. 하이힐은 인생에서 손을 꼽을 정도로만 신어 보았다. 그런 나도 눈 돌아가는 게 있다. 액세서리다. 비싼 게 아닌 색다른 목걸이가 좋다. 옷의 색에 맞춰 착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언니들이 준 옷에 액세서리가 협업하면 효과는 대만족이다. 취향과는 무관했던 옷들이 취향으로 거듭난다. 언니들은 옷에 날개가 달렸다며 기뻐한다. 나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주는 자신들이 좋은 걸 못 줘서 미안하다고 한다. 참 별말씀을 다 한다. 쇼핑에 허송세월 보내지 않고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어디 그뿐이랴. 백화점 마네킹처럼 사람들은 내게서 다양한 캐릭터를 만난다. 이런 스타일도 입느냐며 의외라는 관심까지 덤으로 받는다. 어떤 이는 시선을 받고자 기를 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데 용하다. 동료들은 나의 옷장에 관심 폭발이다. 수납 규모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하다. 천만의 말씀이다. 2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는 옷들은 수거함으로 보낸다. 시간의 발자국이 꽤 길어졌어도 언니들은 여전히 나의 옷을 책임지고 있다. 한 분은 타지로 이동했음에도 택배로 변치 않는 마음을 배달한다. 사람들은 내게 ‘패셔니스타’란 태그를 걸어준다. 겨울 겉옷은 특별히 빛을 발한다. 무스탕부터 가죽, 밍크 상의까지 입고 출근하면 동료들은 경탄한다. 참신하다며 가격을 묻곤 하지만 모른다. 가격표는 붙지 않은 채로 와서 본 적이 없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교복마저 입던 것을 물려받은 소녀가 성장해 변신하는 옷장을 가지고 있다. 분장을 마친 찰리 채플린이 대본 안의 완전한 인물로 태어나듯 이웃의 옷으로 나는 재탄생한다. 패션은 복장에만 있는 기록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이자 새롭게 일어나는 창작이다. 이제는 엄마와 동생도, 수필가도 멀쩡한 옷을 준다. 나는 기껍게 받는다. 예상을 뒤엎는 요소를 갖추었을 때 패션은 성공한 거다. 옷의 진정한 목적은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본질을 드러내는 데 있다. 

 

내 옷장에는 쇼핑 시간과 의복비와 맞먹는 몰입이 가득 걸려 있다. 인연의 묘미는, 쇼핑이 아닌 관심 분야에 오롯이 집중하라 부추긴다. 

 

 

[민은숙]

시인, 칼럼니스트

제4회 코스미안상

제3회 문학뉴스 &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2024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 강사

꿈다락학교 시 창작 강사

문화재단 & 예술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이메일 : sylvie70@naver.com

 

작성 2026.03.25 10:02 수정 2026.03.25 10:0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