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사람들은 밥을 하늘이라 불렀다. 요즘 우리는 밥을 화면이라 부른다. 젓가락 대신 스크롤로 배를 채우는 시대다. 먹방은 허기를 달래는 종교가 되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많이 먹어?”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거다.
“우리는 왜 남이 먹는 걸 보며 위로를 받을까?”
배고픔은 몸의 질문이고, 만족은 마음의 대답이다. 먹방은 마음이 배고픈 시대의 자화상이다. 혼밥의 시대에, 배달앱의 별점보다 외로운 건 함께 씹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절제라는 단어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감정이라는 의미로 진화했다. 꾹 참고, 또 눌러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하루 끝에 우리는 대신 누군가의 바삭한 소리를 삼킨다. 치킨의 껍질이 부서질 때, 우리의 마음도 잠시 풀어진다.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은 중독이다. 티비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먹방의 진짜 포만감은 칼로리가 아니라 결핍에 대한 안도감이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 ‘그래도 살아볼 만하다’는 작은 낙관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넋 놓고 먹방을 본다.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마음이 비어 있어서 그 결핍을 채우는 것이다.
티비 속 먹방이 넘쳐나는 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시대의 자화상 같은 것이다. 모두가 바쁘다고 말하지만 정작 아무도 천천히 밥을 먹지 못하는 세상이다. 가정마다 빙 둘러앉았던 밥상 대신 티비 속 스튜디오가 안방의 밥상으로 들어왔다. 가족 대신 출연자들이 둘러앉고, 대화 대신 리액션 자막이 씹힌다. 남의 밥상이라도 구경해야 하루의 안심을 얻는다. 언제부터 우리는 함께 먹는 일을 이렇게까지 대신하게 되었느냐고 텔레비전은 지금 묻고 있다. 먹방 프로그램이 우리의 오락을 지배하는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잘 먹고 싶다는 욕망보다 잘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 커져만 가고 있다.
먹방이 지나치면, 배는 불러도 마음은 더 허기진다. 끊임없이 자극적인 화면에 노출된 정신은 점점 둔해지고, 씹지 않아도 되는 만족에 길들어진다. 스스로의 리듬으로 슬픔을 견디는 법 대신, 즉각적인 대리 포만에 기대게 된다. 남이 대신 살아주는 감정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자기 삶의 맛을 잃는다. 과식한 건 위장이 아니라 정신이다. 감정은 소화되지 못한 채 쌓이고, 공허는 더 정교해진다.
먹방은 허기를 달래고
맘방은 정신을 채운다.
이제는 먹방보다 맘방이 필요하다. 잘 먹는 입보다 잘 사유하는 마음이 오늘을 버텨낸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보약이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