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꿈이 있으면 예술은 가난하지 않다. 그 꿈을 통해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꿈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마법이다. 평생 그 마법을 찾아, 온 세상을 헤매고 다녀도 우리는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지 모른다. 세월과 함께 그 꿈은 슬며시 사라지고 그저 사니까 사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악다구니 쓰며 살면서도 그 삶을 그냥 다 그렇게 사는 게 아니냐고 자조하면서 나이 먹어 간다. 내적인 갈등도 없이 하루하루 시간이라는 좀벌레에게 먹히면서 유튜브로 정신적 허기를 달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참담하다.
그렇다. 생각해 보면 가난하지 않은 예술을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일까. 금욕일까 나눔일까. 절제일까. 아니면 신의 은총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영화 ‘바베트의 만찬’ 제시하고 있다. 요리 예술가 바베트는 ‘마음이 담긴 요리의 힘’을 통해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 음식을 나눌 때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게 바로 예술의 힘이다. 예술이 가난하지 않은 이유다. ‘바베트의 만찬’은 1987년에 나온 덴마크의 영화다. 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노르웨이의 한 청빈한 루터교 공동체에는 두 자매가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목사였고, 그의 가르침 속에서 자매와 신도들은 평생 검소와 금욕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세월이 흐르며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공동체 역시 점점 쇠락해 간다. 신앙은 남아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사소한 불화와 오랜 앙금이 쌓여 있었다.
어느 폭풍우 치던 밤, 프랑스에서 온 한 여인이 마을에 도착한다. 그녀의 이름은 바베트였다. 정치적 격변 속에서 고향을 떠나 도망쳐 온 난민이었다. 자매는 그녀를 받아들이고, 바베트는 그들의 집에서 집안일을 도우며 조용히 살아간다. 세월은 그렇게 십여 년이 흐른다. 바베트는 묵묵히 마을 사람들과 삶을 나누지만, 그녀의 과거에 대해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바베트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진다. 프랑스에서 사둔 복권이 당첨되어 거액의 돈을 얻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곧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베트는 떠나는 대신, 마을 목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한 번의 만찬을 열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자매와 마을 사람들은 그저 소박한 식사쯤으로 여겼지만, 바베트는 프랑스에서 값비싼 재료와 포도주를 들여와 정성껏 요리를 준비한다.
마침내 만찬의 날이 찾아온다. 엄격한 신앙 공동체 사람들은 “음식의 사치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서로 약속한 채 식탁에 앉는다. 그러나 한 접시, 또 한 접시 요리가 이어질수록 그들의 마음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오래된 오해와 미움이 녹아내리고, 잊고 지냈던 기쁨과 사랑이 다시 살아난다. 말없이 시작된 식사는 결국 웃음과 화해로 가득 찬 잔치가 된다.
만찬이 끝난 뒤 사람들은 알게 된다. 바베트가 준비한 음식은 파리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는 위대한 요리였으며, 그 모든 비용이 그녀가 복권에 당첨된 돈으로 모두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군가 왜 그렇게까지 했느냐고 묻자, 바베트는 조용히 말한다. 자신은 원래 위대한 요리사였으며, 예술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작품을 완성하는 법이라고 한다.
그날 밤, 마을에는 오랜만에 따뜻한 평화가 내려앉는다. 절제 속에 얼어 있던 마음들이 하나의 식탁에서 풀려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번의 만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은총과 용서,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살찌우는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남는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평화롭던 공동체에 차츰 균열이 생기고 모두 메너리즘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복권에 당첨된 가정부가 그 돈을 모두 투자해서 요리를 준비해 균열이 생긴 사람들의 화해를 이루고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야기다. 그 저변에 깔린 건 ‘은총’이다. 사람들 마음속에 곪아있던 오래된 상처와 오해, 꺼내 놓지 못했던 갈등이 켜켜이 쌓여 있었지만, 겉으로는 ‘신앙’이라는 공동체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감정의 틈바구니를 요리 예술가 ‘바베트’는 음식을 통해 화해시키고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음식은 몸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음식이 곧 생명이고 생명이 음식인 셈이다. 음식 없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게 진리다. 곳간에서 인심 나고 사흘 굶으면 도둑질 하지 않을 사람 없다는 건 익히 아는 사실이다. 먹는 거로 사람 약 올리지 말라는 말도 결국 인간은 먹지 못하면 죽는다는 단순한 명제 앞에 누구도 예외가 없다. 음식이라는 주제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면 그건 분명 명작 중의 명작이다. 요즘처럼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먹방과는 차원이 다른 우리 저 마음 깊은 속까지 울려주는 영화가 ‘바베트의 만찬’이다.
인간은 인간일 때 가장 아름답다. 마을 사람들은 음식 맛에 절대로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면서 연회장에 가지만 한 접시의 수프, 한 잔의 와인, 따뜻한 빵의 향기 속에서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얼굴은 점차 부드러워지며 온화해진다. 결국 만찬은 미식의 순간을 넘어 영혼의 화해로 이어진다. 바베트는 음식을 만든 동시에 예술을 만든 것이다. 복권 당첨금을 만찬 위해 다 써버리면 이젠 계속 가난하게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바베트에게 자매가 말하자 베베트가 대답한다.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