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부쩍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져, 과거 일을 반추하는 일을 자주 한다. 아니 원체도 나는 반추하는 게 습관인 인간이지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불안함이 잦아든 것 같다. 사실 이렇게 된 계기가 명확한 편이다. 학업을 이어가다 보니, 책상에 머리 박고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지독히 머리를 쓸 일이 많았다.
괜히 인간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평소 말투와 태도에 신경을 참 많이 써야 하고, 적재적소에 말하지 않으면 나를 방어할 수단이 사라져 버리기 십상이라. 체스 두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연구의 길은 체스를 두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것저것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내 연구와 공부를 해야 했다. 사실 이 모든 게 내 성격에서 기인하겠다마는. 사는 데 신중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으로.
그래서 한창 연구에 몰두할 때는,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매번 GPT 멱살을 잡아가며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반추하며, 행여 어리석지 않았는지를 되뇌고 되뇌었다.
근데 지나고 보니, 이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나는 항상 두세 개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게 일상인만큼 정신력과 체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지칠 일이 많이 없고, 지쳐도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질 만큼 타고난 회복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도 너무 힘들었다. 끔찍이도!
왜 그런가.
봄이 스멀스멀 찾아오는 햇빛이 스미는 창가의 뿌연 부분을 바라보며 또 반추했다.
내가 너무 나를 몰아세운 탓이다. 아무도 내게 요구한 적 없는데도, 나를 한낱 체스놀이 수단으로 만들어버리다니. 그 어리석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무도 그러라고 말한 적 없는데 좁디좁은 체스라는 격자무늬에 스스로 갇혀버린 탓이다. 그렇게 하면 똑똑해질 줄 알고.
한번 깨닫고 나니, 정말 모든 게 부질없다. 지친다. 그래서 이제 그만 똑똑한 척하기로 했다. 그러면 불안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언제나 불안했으므로.
계속해서 문제를 찾다 보니, 결국 스스로를 가장 문제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나 보다. 참으로 쓸데없는 짓을 오랫동안 했다. 세상은 별로 문제가 없다. 아니, 문제투성이인 게 당연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괜히 나를 몰아세우며 격자무늬에 갇힌 듯 살아갈 일이 단연코 아니다. 어쩐지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는 사실만이 나를 평온하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계산하고, 대비하느라 너무 오랫동안 나를 체스판의 말로 다룬 것 같다. 그렇게 만든 내 비좁은 세상은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위험에 대해서 늘 곤두서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나를 체스판 비좁은 구석으로 내몰고 있었다. 이제는 이 격자무늬 밖으로 나가는 게 내가 살 길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진 내 생존 본능은 정말 대단하다. 이게 다 살아남으려 했던 일들이었는데. 이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살만하다는 점에서, 안도한다.
사실 이제야 나를,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너무도 오래 걸렸다.
[임이로]
시인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시집 <오늘도 꽃은 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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