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막한 우주 속에서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 그 위에 깃든 우리는 찰나를 스쳐 지나가는 티끌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우주 전체와 맞먹는 무게의 고뇌가 소용돌이치기도 한다.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유전자의 설계도를 해독하며 물질과 생명의 비밀을 집요하게 파헤쳐 온 우리임에도 왜 타로 카드를 섞고 점집의 문을 두드리는 걸까. 이성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왜 여전히 운명이라는 비과학적 서사에 기대고 싶은 유혹에 빠져들고 마는 걸까. 이를 그저 미신의 잔존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 물음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을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결핍을 통해 형성되는 존재이다. 불우한 환경이 인간을 파괴한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삶의 진실은 단선적이지 않다. 심리학의 대가 프로이트, 아들러, 융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통찰했듯, 동일한 상처는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낳기도 한다.
어떤 이는 유년의 결핍에 사로잡혀 과거의 그늘 속에 머물고 또 다른 이는 그 결핍을 동력으로 삼아 자신을 밀어 올린다. 방탕한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가 극단적인 성실함을 삶의 원칙으로 삼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아들러의 말처럼, 인간은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존재이며 그 의지가 삶을 재구성한다. 완벽한 조건은 때로 의지를 마비시키고 결핍은 때로 생존을 향한 날카로운 감각을 깨운다. 삶을 결정짓는 것은 주어진 조건보다 그것을 해석하고 사용하는 주체의 태도라 할 것이다.
인간은 불확실성에 흔들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신점을 보고 운세에 몸을 기울이는 이유는 과학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과학이 제공하는 세계는 때로 냉정해서 설명은 가능하나 위로는 제공하지 않는다. 한 개인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과학은 소거해 줄 수 없다. 현대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개인의 통제 바깥에 있는 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때 인간은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갈망한다. 타로 카드 한 장은 그 불안정한 세계 위에 하나의 서사를 덧입힌다. "곧 해결될 것이다", "올해는 힘들다"라는 말은 사실의 진위와 무관하게 삶을 견디게 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운명은 불확실성을 완충하는 심리적 장치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인간은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것에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다. '별의 먼지'에 불과한 우리는 우주에서 보면 고통도 노력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바로 그 무의미 속에서 역설적으로 숭고함을 찾는 존재이기도 하다. 삶을 각박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더 나은 삶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세계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반복되는 불행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몸부림은 인간만이 보여주는 독특한 무형의 존엄이다. 삶이 고단하다는 감각 자체가 이미 삶에 대한 의지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운명은 앞서가는 자를 이끌고 거부하는 자를 끌고 간다."
우리는 때로 운명이라는 언어를 빌려 삶을 재해석한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 아니다. 그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삶을 선택하는 우리의 태도이다. 티끌 같은 존재가 자신의 궤도를 스스로 그리려 애쓰는 일, 그 고독한 실천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조용하고도 강인한 힘이다. 삶의 해독제는 보이지 않는 별자리에 자신을 맡기는 데 있지 않다. 아무도 보증해주지 않는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방향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데 있다.
[민은숙]
시인, 칼럼니스트
제4회 코스미안상
제3회 문학뉴스 &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2024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 강사
꿈다락학교 시 창작 강사
문화재단 & 예술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이메일 : sylvie7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