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라도 한 것일까. 사월의 초입인데도 벌써 말끔하게 이발을 하고서 손님맞이 준비가 끝나 있었다. 동기간이 화목했던 듯 봉분들이 가지런하다. 마치 한자리에 모여앉아 가족회의를 열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정겹다.
언젠가는 한번 가보리라. 오래 벼르고 벼른 상화 시인의 묘소를 마침내 찾아온 길이다. 선생은 달성군 화원읍의 한 야트막한 산자락 남향받이에 살아생전 그토록 염원했던 광복 된 조국, 그 자유의 땅에 가족들과 함께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선생의 묘소 앞에 서서 길게 묵념을 올린다. 순간, 선생이 뜨겁게 노래 불렀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다시금 전류처럼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내 가슴속까지 덩달아 뜨거워져 오는 것 같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선생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면서 몽실몽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들판으로 나간다. 시절은 바야흐로 봄기운이 무르익어 온 천지에 흐드러지게 펼쳐져 있다. 그 싱그러운 초록빛 들판이 오히려 선생으로 하여금 조국이 처한 식민치하라는 현실을 더욱 갑갑하게 만들었으리라. 그런 암담한 심경이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라는 시구에서 절절히 묻어난다.
하지만 선생은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하는 마지막 구절의 역설적인 표현에서 조국의 광복을 반드시 되찾고 말겠다는 결의에 찬 다짐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은 어쩌면 염원을 넘어 하나의 예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예언은 마침내 현실이 된다. 마흔넷 너무도 아까운 나이에 광복을 두 눈으로 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떠난 선생, 지금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정겨운 이 아름다운 화원 이장가李庄家의 동산에 누워 평화와 안식을 누리며 조국의 발전상을 흐뭇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일제로부터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은 지 어언간 칠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하였던가. 한때 빼앗겼던 들에 선생이 꿈속에서까지 갈구했던 봄은 와서 우리는 마음 놓고 자유로운 세상을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나라의 봄은 도래한 지 오래이건만, 세상살이의 봄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다 싶다.
한쪽에서는 가진 것을 주체하지 못해 흥청망청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다른 한쪽에서는 한 끼 먹을거리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육신의 자유는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찾았지만, 먹을거리의 자유는 언제 찾아지려는지 하세월이다. 선생은 무덤에서 깨어나 자신이 간절히 꿈꾸었던 그 봄이 도래한 뒤의 오늘날 상황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어쩌면 일제 치하의 모진 억압과 굴레로부터 얻은 자유를 차라리 반납하고 싶은 심정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지금 부자와 빈자로 극명하게 양분되었다. 그리고 그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 사람살이가 점점 각박해지고 살벌해져 간다. 그로 인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온갖 부정부패와 극악무도한 범죄다. 부정부패며 범죄는 이런저런 원인으로 생겨나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아닌가 한다.
모르긴 몰라도, 선생은 아마 조국이 광복을 되찾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을 게다. 하지만 육신의 자유를 되찾은 이 땅에는 일제에 억압당해 있었을 때보다 더 절박한 고통으로 헤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그들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 채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들에게는 광복된 나라에서 고달프게 사는 것보다, 오히려 비록 압제는 받더라도 먹을거리 걱정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이 고래 아니면 굴뚝같을는지도 알 수 없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는가. ‘잘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허리띠를 졸라매었던 지난날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꾸벅꾸벅 일만 했어도 그다지 신세가 처량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언젠가는 나도 잘될 것이라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다들 예전에 비해서는 몰라보게 살기가 좋아졌고, 그리하여 절대빈곤에서는 벗어났다. 그런데도 왜 소금물을 들이켠 것처럼 자꾸만 갈증이 나는 것일까. 상대적 박탈감이 끊임없이 우리를 찰거머리처럼 물어뜯는다.
지금 나는 ‘꽃다운 정원’인 이곳 화원花園의 고즈넉한 산자락에 고이 잠들어 계신 상화 선생을 한번 깨워 보련다. 그런 다음, 선생한테 오늘날 이 땅에서 힘겹게 생을 영위해 가고 있는 못 가진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메꾸어 줄 먹을거리의 봄을 다시 한번 노래 불러 주기를 정중히 주문하고 싶다.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생의 즐거움을 누리는 완전한 봄이 하루속히 도래하였으면 하고 기도한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 수상
유혜자수필문학상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