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 칼럼] 70년대 생활 체험을 소환한 시 한 편

김관식

7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시골 인구의 도시 집중화 현상으로 수도권은 날로 팽창해 갔다. 서울을 중심으로 주변, 인천과 경기도에는 신도시가 생겨나고, 수많은 아파트와 빌딩, 도로, 교통 통신 시설 등이 다양하게 신설되었다. 수도권은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아파트 숲이 들어찼고, 일자리와 잠자리가 다른 직주분리로 직장인들의 출퇴근과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날로 전철 노선이 신설, 고속도로가 새로 생겨나는 등 수도권 지역을 서로 오갈 수 있도록 교통망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갔다. 

 

70년대 당시 농어촌의 일차 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주로 젊은 사람들은 모두 수도권으로 이주했고, 농어촌에는 여러 가지 개인 사정으로 떠나지 못한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대부분 노년층이 농어촌에 남았다. 따라서 이 무렵 명절이면, 기차역, 고속버스 터미널은 조상님들께 차례를 모시고 고향에 남아계시는 부모님을 찾아뵙기 위해 귀향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80년대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고 점차 시골에 남아계시던 부모들이 돌아가시고,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도시에 정착하고, 국민소득이 늘어나 집집이 자가용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화되자 명절날 귀향 인파로 붐비는 터미널과 기차역의 풍속도가 바뀌었다. 

 

이제는 명절 때가 되면 자가용 시대에 걸맞게 고속도로와 공항이 붐비는 풍속도로 바뀌었다. 명절 때 귀향하는 사람들의 수는 점차 줄어들고, 생활권의 주체가 수도권 거주지로 바뀐 집들이 점차 늘어 시골에서 수도권으로 역귀성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점차 핵가족의 수효가 늘어나 명절 이전에 조상님께 성묘를 마치고, 명절 휴가를 국내와 가족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명절 풍속도가 시대에 따라 변해갔다. 

 

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수도권으로 이주했던 많은 사람은 고향에 갈 명분과 필요가 없어졌다. 고향에 남아있기를 고집하는 부모나 일가친척들도 모두 대도시로 이주하였고, 고향을 지키다 돌아가신 부모들의 장례도 직계가족이 사는 대도시에서 치르는 등 장례 문화가 바뀌기 때문이다. 매장 문화는 화장문화로 바뀌어 갔고, 고향에 남아계시다 돌아가신 부모의 장례는 직계가족이 거주는 대도시의 장례식장에서 치르고, 전통적인 매장문화는 화장문화로 바뀌어 직계자손이 생활근거지인 수도권 인근의 봉안당에 모시는 등 사람들이 많아지는 장례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밀집해서 살게 됨에 따라 농어촌을 중심으로 전통 생활방식은 사라졌고, 이제 모든 생활문화가 서구적인 생활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70년대 고향을 떠나 수도권 등 대도시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그들은 껍데기를 탈피한 매미처럼 떠나온 고향의 공간을 늘 떠올리며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고향이 생각나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고향에 갈 이유가 사라짐에 따라 고향을 가지 못하고 늘 그리워하며 살아왔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늘 가슴 속에 품고 사는 고향을 텔레비전 방송의 “나는 자연인이다”보며 대리만족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는 까닭은 떠나온 고향 생각이 절실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고, 삭막한 도시 공간에서 벗어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 즉 헤테로토피아의 공간을 찾아 심리적인 안정을 도모하려는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망각한 고향을 떠올리고, 심리적인 안정을 도모하려는 심리적 공간으로 대리만족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장기간 인기 프로그램으로 방영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헤테로토피아라는 말은 미셸 푸코가『말과 사물』)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어원적으로 유토피아(utopie)는 없는 공간을 의미하는 이상향이지만, 헤테로토피아(heterotopie)는 실제로 존재하는 다른(이질) 공간을 의미한다.

 

70년대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정착 사람들의 풍속도를 시로 형상화해서 생활 체험을 소환한 김나영 시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뒷집 순자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쟁기질로 흙을 깨우던 총각들도 

 하나 둘, 황소를 버리고 떠났다

 타관살이 배곯을까 어머니들은

 달이 차오르는 밤이면

 당산나무 가지에 마음을 걸었다 

 설날이 되면 

 댓 병 소주 한 병

 쇠고기 한 근

 나팔바지를 입은 청년들로 

 고샅길은 들썩거렸다 

 구두코가 반짝이던 앞집 총각도

 갈래머리 곱게 땋아 내린 뒷집 순자도

 곱슬머리에 단풍을 들인 후

 어느 해부턴지 발걸음이 뜸했다. 

 서울 총각을 만나 아이를 낳았다고 

 입이 벙그러진 순자 엄마는 미역귀를 챙겨 떠났다

 부모들은 자식이 가난한 흙에 

 손을 담그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착근을 잘한 자식들은 낯선 땅의 주인이 되어

 식솔들을 데리고 떠났다

 안부를 묻고는 돌아갔다

 이방인으로 떠돌던 자식들은

 귀향하지 못하고 객지에서 흙이 되었다는 소문만

 당산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보름달이 차올라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당산나무

 증인처럼 빈 동네를 지키고 있다 

 

 -김나영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전문

 

이 시는 70년대 고향의 공간에서 명절 때의 생활 모습을 시로 진술한 시다. 화자가 있는 공간은 도시로 떠나오기 전의 고향이다. 고향을 떠나 수십 해를 수도권에 정착해 살아가는 사람의 정신세계다. 몸은 도시에 살고 있으나 마음은 늘 어린 시절 고향에 살고 있기 때문에 공간적 배경이 고향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 생활을 해오면서 생활이 안정되지 못한 사람들은 해마다 치솟는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도시의 변두리로 싼 전셋집을 찾아 이사를 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지 못한 가장들은 거리의 철학자가 되거나 유랑의 삶을 살아간다. 산업화의 그늘에서 재산을 탕진한 사람 중에는 정신질환자가 되거나 교활한 인간들의 탐욕의 희생물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거리를 떠돌며 노숙하는 신세가 되는가 하면, 무작정 산속으로 세상과 단절한 삶을 선택해 산으로 숨어들었다. 

 

그런 상처받는 사람이나 몸과 마음에 병들어 치유할 목적으로 산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주인공들이다.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라는 오늘날 사회현상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적인 복지 혜택이 절실해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인 복지 혜택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의 문제는 어느 나라나 해결하지 못한 골치 아픈 문제로 남아있는 것이다.

 

‘쟁기질’, ‘황소’, ‘당산나무’, ‘댓 병 소주’ 등은 모두 70년대의 농촌 생활 모습이다. 그 당시 명절이면 고향을 찾던 ‘나팔바지 청년’, ‘구두코가 반짝이던 청년’, ‘갈래머리 순자’는 이제 수도권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이들이 살아온 생활 체험을 생생하게 시로 소환해 가슴을 뭉클하게 감동을 주는 시가 바로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 ​kks41900@naver.com

 

작성 2026.04.20 10:38 수정 2026.04.2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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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