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강의가 끝날 무렵 수강생에게 물었다.”강의실에 들어올 때의 ‘나’와 지금 강의 끝나고 나가려고 하는 ‘나’는 같은가? 다른가? 물었다. 대답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어떤 분은 당연히 같다고, 또 다른 분은 다르다고 했다. 사람은 매 순간 세포가 죽어간다. 그렇다면 과연 조금 전 ‘나’와, 지금의 ‘나’는 엄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들뢰즈는 이러한 차이들이 만나고 부딪히면서 새로운 것은 만들어 내는 데 이걸 ‘생성’이라고 했다. Becoming, 되어가는 것, 즉 우리는 '존재'하는 게 아니라 '생성'하고 있다는 겁니다
질 들뢰즈가 쓴 『차이와 반복』 - 몇 번 읽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 에는 ‘세상에는 똑같은 게 없다.’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이 책은 그가 1968년 43세에 쓴 박사학위 논문이다. 같은 해 5월에 시작된 프랑스 68 혁명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던 학생들을 체포하고 대학을 폐쇄했다. 그래서 총파업으로 이어졌고, 그들의 대표적 슬로건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다. 사람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통째로 바꿔놓은 의식의 혁명이었다. 들뢰즈가 그토록 갈망했던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진『차이와 반복』이 이때 쓰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들뢰즈는 서양철학이 오랫동안 ‘동일성’이라는 틀 속에 ’차이‘를 가뒀다고 비판하면서 진짜 차이는 “이것과 저것이 다르다”는 부정이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하는 긍정의 힘”이라고 하면서, 세상에는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으며,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보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했다. 왜냐면, 이 순간의 물은 1초 후 물과 다르고 강물은 계속 흐르기 때문이다. 사실 두 번 담글 수 없는 게 아니라 한 번도 담글 수 없다. 왜냐면, 내 자신이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우린, 편의상 ‘한강’, ‘낙동강’ 등으로 부른다. 변화하는 차이들을 ‘동일성’이라는 개념으로 묶기 때문이다.
필자가 사는 곳에는 유명한 진달래 동산이 있다. 연례행사인 '진달래 축제' 에 갔었는데 야트막한 산은 온통 붉은 빛이었다. 고개 숙여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잎도, 색깔도, 크기도, 꽃술도 조금씩 다 다르다. 그런데 우린, 그 꽃들을 ‘진달래꽃’으로 부른다. 이처럼 보편적 관념인 ‘동일성’으로 조금씩 다른 개별적인 꽃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생성하는 고유한 생명력과 미세한 차이의 형상을 지워버린 것이다.
며칠 전 서울 도심에 자리한 미술관에 갔었다. 그곳에 전시된 그림을 자세히 보았다. 수백 번 붓으로 덧칠한 흔적이 역력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상을 그리는 것 같지만 붓질 하나하나가 더해질 때마다 이전의 붓질과 전혀 다른 형상이 탄생한 것이다. 이때의 반복은 ‘같음’의 반복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차이에서 오는 ‘다름’의 생성이다.
예를 들어, 필자의 「몽돌」의 시에 “살아간다는 것은 / 잘 마모되어 간다는 것” 시구에서 어제의 나를 잘 깎고 다듬어 오늘의 나로 새로운 생성을 하기 위한 것처럼, 우리가 이름 지어 부르는 바닷가 ‘몽돌’은 바람과 태풍과 파도 등에 씻기며 마모되면서 수없는 반복된 힘에 의해서 순간순간 변화하며 생성하는 역동적인 ‘몽돌’인 것이다. 이처럼 반복은 단독적인 것이 아니라 파도라는 거대한 반복의 힘 안에서 서로 다른 크기의 돌들이 부딪히는 사건이 생기는 것이다. 어제의 몽돌이 아닌 깎이고 핥기면서 마모되어 동일성의 몽돌이 아닌 새롭게 생성하는 존재이다.
생각해 보자. 우린 소년, 중년, 노년에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이 순간에도 변화하며 생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삶은 어제와 다른 삶이고 내일 삶 또한 오늘과 다르다. 이게 들뢰즈가 말한 ‘차이의 긍정’이다. 살아가면서 이러한 차이를 긍정해야만 삶의 본질에 다다를 수 있다. ”세상에는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차이다“ 그래서 우린 이 순간에도 새롭게 생성 중인 삶을 살고 있다. 차이를 긍정하고 반복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해야 할 이유이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지구의 유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