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이그의 뜨거운 심장, 이준 열사를 기리며
민족 정서의 정신이 서린 4.19 국립묘지 와 이준 열사의 영혼이 잠들고있는 충혼 사당에서 안식을 하는 담담한 자부심이 생겨서 내친김에 다녀왔다.
역사를 기억하고 실천하는 내 마음이 깊어가는 4월의 봄날, 우리 현대사의 뿌리를 돌아보는 내 발걸음이 무척 뜻깊다고 느껴졌다.
오늘 나의 경건한 발자취에 동행한 참배객 들의 걸음걸음, 대한제국의 주권을 지키려 했던 ‘헤이그의 뜨거운 심장’ 이준 열사의 삶을 되짚어보는 소회를 적어 보았다.
[칼럼] 꺼지지 않는 불꽃, 이준이 남긴 것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세계 평화를 논하는 만국평화회의장에 한복을 입은 세 명의 한국인이 나타났다.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은 이상설, 이준, 이위종 열사였다. 그중에서도 이준 열사는 일제의 국권 침탈이 불법임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건 외교전을 펼쳤다.
당시 열강들은 약소국이었던 대한제국의 외침을 철저히 외면했다. 회의장 문턱조차 넘지 못한 그 굴욕과 절망감은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머나먼 타국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준 열사의 죽음은, 식민 지배의 어둠 속에서도 끝까지 ‘자주독립’이라는 불씨를 놓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저항 정신 그 자체였다.
우리가 오늘날 이준 열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며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실패가 예견된 상황에서도 정의를 위해 나아가는 자신의 길을 보여주었던 이준 열사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준 열사 기념탑 앞에서 애국지사의 숭고한 희생을 마주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기억하느냐에 따라 매 순간 살아 숨 쉰다.

헤이그에서 그가 품었던 뜨거운 조국애는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가슴 속에도 여전히 뜨겁다.
불의에 저항했던 4.19의 정신과 국권을 되찾으려 했던 이준 열사의 의지는 결국 하나의 줄기로 이어진다. 그것은 바로 ‘주권자로서 당당히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준 열사의 이름 뒤에 ‘열사(烈士)’라는 호칭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비록 타국 땅에서 눈을 감았지만, 그의 혼은 시대를 관통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오늘, 당신이 지켜야 할 정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를 진정으로 기리는 방법일 것이다. 4월의 바람 속에 서린 그의 결연한 의지를 기억하며, 우리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정의를 실천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