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유권은 5,60년대 농촌하층민의 생태를 그린 소설을 주로 쓴 향토작가다. 자신의 체험을 통해 농촌 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을 현장감 있게 당시의 그 지역 사람의 방언으로 구성한 소설들이다. 따라서 상실한 토속적인 정감을 유발해 독자들을 빨려 들어가게 한다.
그의 소설에 대해 이봉범 교수는 「오유권 문학의 특징과 위상」이라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유권 문학은 체험, 민중, 토속성의 상관성 속에 존재한다. 체험의 총화를 미적으로 승화시킨다는 창작 전략에 의해 그것이 모순적으로 발현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농밀한 농촌 체험에 입각한 아래로부터 혹은 안으로부터의 접근은 전후 농촌사회의 역사적 변화와 농민적 삶의 리얼리티를 탁월하게 재현하는 성과를 거두는 다른 한편으로는 그 체험이 한국사회의 근대적 변화와 연관성을 상실한 경우에는 소박한 경험주의문학으로 전락하는 약점을 노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의 문학은 전통적인 토속 세계가 역사와 조우하면서 충돌하는 양상을 다면적으로 포착하여 전후 한국농촌의 변화상을 리얼하게 그려내는 문학적 성취를 거둔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빈궁소설과 전쟁소설이다. 전자는 전쟁과 전후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야기된 농촌하층민의 생태와 그들의 현실모순에 대한 저항 그리고 인습에 굴복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촌부들의 생명력을 핍진하게 형상화하는 전후 빈궁 소설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후자는 냉전적 반공주의에 침윤된 작품도 더러 있으나 대체로 한국전쟁의 문제를 전통적인 농촌공동체를 훼손ㆍ파괴하는 역사적 기제로 파악하는 가운데 전쟁 비극의 참상과 원인 그리고 그 치유의 방법적 대안 모색에 이르기까지 넓은 시야를 확보한 가운데 민중적 시각에서 전쟁의 비극을 조명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요컨대 토속 세계가 한국전쟁,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역사와 충돌하면서 겪게 되는 혼란과 동요를 삶의 절실한 현장으로 그려낸 것은 오유권 문학이 성취한 소중한 미덕이다.
소설가 오유권은 1955년 『현대문학』으로 황순원의 추천으로 단편 「두 나그네」와 「참외」로 등단하여 1997년까지 43년 동안 장편 9편, 중편 10편 단편 230여 편 등 250여 편의 소설을 남긴 다작의 소설가였다.
그는 1928년 전남 나주 영산포의 가난한 농가의 오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서당에서 공부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 급사로 일하다가 체신부 체신리 양성소 6개월 과정을 마치고 영산포 우체국의 전보 관련 업무를 맡아 일하다가 20세 책방에서 노자영의 『인생 안내』라는 책을 보고 소설가가 되기로 하고 이태준의 『문장 강화』를 독파하면서 소설 습작을 했다.
그러다가 『문예』지에 응모한 「역풍」에 대해 김동리의 추천 후기에 언급된 것에 자신감을 얻었고, 6.25 전쟁이 일어나자 1951년 해병대에 입대하여 부산 해병대 사령부에서 복무하던 중 종군기자 신분으로 부산에 머무는 김동리를 만나 2여 년간 소설지도를 받으며 국어사전을 여러 차례 외우고 베끼는 등 문학에 열정을 쏟았고, 김동리와의 인연으로 김동리의 셋째 처제와 결혼해 김동리와 동서지간이 되었다.
1956년 오 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가난과 이혼, 재혼하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거치면서도 소설 창작에 전념했다. 따라서 누구보다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한 그는 고향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을 소재로 「쌀장수」,「소문, 황 노인네 일가」,「젊은 홀어미들,「황량한 촌락」,「석실 구네」,「가난한 형제」,「기계방아 도는 마을」,「떠나는 사람들」,「이삭 줍는 사람들」,「텃골댁네 잔치」,「사랑방 이야기」,「과수원집 딸들」 등의 소설 250여 편을 남겼다.
시골 사랑방의 이야기처럼 5,60년대 전후 농민의 생활 모습과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인구의 도시로 이주로 피폐해지는 영산강 유역의 농촌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토속적인 농촌소설들이다.
소설가 한승원은 『우리 시대의 한국문학』(계몽사)에 실린 오유권의 작가 스케치 「오유권, 그 입지전적인 궤적」이라는 글을 통해 오유권과의 교류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내가 오유권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정확하게 스물여덟 해 전이었다.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이 좌절되어 방황하던 때, 그분의 ‘문학 수업기’를 『현대문학』지에서 읽고 그분을 찾아갔다.
“내 고향은 전남 장흥군 대덕면 신상리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연륙이 되지 않은 덕도라는 섬이었다.” “소설가나 시인이나 극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씹으면 살았다. 몇 차례 여기저기에 투고도 해 보았다.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길을 잡아 주어야 할 것 같았다. 누구를 찾아갈까. 이때 소설가 오유권 선생이 다른 곳도 아닌 전라남도 나주군 영산포읍 엄동 9번지(현재: 이창동)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던 것이다.”
두 소설가는 이렇게 만났고, 모두 서울로 올라와서도 교류하면서 창작에 몰두하고 살다가 오유권은 신도림동 재개발 지역의 허름한 집에서 “가난 속에서 끈질긴 집념과 강인한 의지로 스스로의 게으름을 매질하면서 문학 수업을 하던 그때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신 선생은 그때부터 새로이 거듭날 몸부림을 하고 있었다. 선생은 아직도 불을 뿜는 활화산이었다.”라고 소설가 한승원은 술회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이며, 고향 장흥 수문포로 낙향해 살고 있다.
물질적인 풍요보다 문학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도전하는 문학인들은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몸부림이 문학작품 속에 용해되어 독자들에게 감동을 자아낸다. 삶과 문학이 일체한 문인은 문학작품으로 자서전을 쓰는 것이다. 한 작가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생활공간은 그 공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오유권은 고향인 영산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담은 향토 인문지리서이며, 동시대 향토 사회의 생활 모습을 그려낸 농촌 풍물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제의 정착은 중앙집권적인 문화 습성에서 벗어나 향토 사회에서 살다 가신 조상들의 생활 모습을 통해 면면히 흐르는 공통된 정신과 문화를 계승해 나가는 것이 애향심이고, 독자적인 향토의 문화를 존속해 나가는 길일 것이다. 도시화의 물결로 옛 조상들의 숨결이 사라지고 있다. 지역의 개성적인 문화를 계승하고 보전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함에도 물질적인 풍요만 추구하는 속물적인 문화로 오염되어 가면, 지역의 특색적인 문화는 소멸하고 말 것이다.
오유권의 소설은 5,60년대 영산강 유역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소환했다. 그리하여 존경받는 문인 상은 물질적인 풍요를 구가하는 속물적인 삶보다는 자신의 바로 언행일치의 생활자 세로 “가난 속에서 끈질긴 집념과 강인한 의지”로 오직 작품 창작에만 온 힘을 기울이며 살아가다가 아름답게 생을 마감한 문인임을 깨우치게 한다.
노력은 하지 않고 자신의 엉터리 문학작품을 알리려고 발버둥 치는 일은 사후에도 자신의 추태를 후손들에게까지 기억하도록 하는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오늘날 혼란한 문단 세태에서 오유권 선생의 자서전 같은 소설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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