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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나를 사랑하는 시여
먼 훗날에도 늙은 나를 사랑해다오
먼 훗날에도 오늘처럼
바람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숲으로 갈 것이다
숲으로 가서 늘 하던 대로
바람이 불러주는 말씀을 받아 쓸 것이다
써야 할 때 쓰지 않으면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수리부엉이처럼 늘 깨어
열심히 받아 쓸 수밖에 없느니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이기 때문이요
나에겐 아직도 대표작이 없기 때문이다
먼 훗날 너무 늙은 탓으로
만약에 바람의 속삭임을 듣지 못 한다면
숲속의 햇살과 공기와
경이로움이 참으로 무슨 소용일까
그러니 나를 사랑하는 시여
먼 훗날에도 늙은 나를 사랑해다오

[허형만]
1973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영혼의 눈』 『황홀』 『바람칼』 『만났다』 등 20권.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편운문학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
현재 국립목포대학교 명예교수. 국제펜한국본부 심의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