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물로 쓴 책 1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각성교재)

당신의 눈물로 쓴 책 1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각성교재)

 

 

 

 

 

성경은 단순한 종교 책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도덕책처럼 생각합니다

착하게 살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사랑하며 살아라

물론 그런 교훈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의 중심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성공의 매뉴얼처럼 생각합니다

잘되는 방법 축복받는 방법

형통하는 비결을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성경의 본질은 아닙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분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는 예수님을 향해 흐릅니다

구약은 예수님을 기다리고

복음서는 예수님을 보여주며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하고

서신서는 예수님의 구원을 설명하며

요한계시록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목적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예수님을 놓칩니다

율법만 보고

종교만 보고

행위만 보고

교회만 보고

사람만 봅니다

하지만 성경은 계속 묻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결국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가

그 길의 중심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첫 시작은 창세기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예수님의 이야기는 신약이 아니라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장 창세기 타락 속에서 주어진 첫 번째 복음

창세기는 시작의 책입니다

세상의 시작

사람의 시작

죄의 시작 그리고 구원의 시작

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빛과 어둠 낮과 밤

하늘과 땅 바다와 생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아담과 하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처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함께 걷고

하나님과 사랑 안에서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에덴동산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의 완전한 관계를 상징합니다

그곳에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수치도 없었습니다

숨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창세기 3장 뱀이 등장합니다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흔듭니다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느냐?

이 질문이 죄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판단을 믿었습니다

아담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그 순간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내가 하나님처럼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그 결과는 즉시 나타났습니다

두려움!  수치! 숨음!  단절!

  

창세기 3장 10절 내가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것이 죄입니다

죄는 사람을 숨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피하게 하고 사람을 피하게 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피하게 만듭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숨고 있습니다

괜찮은 척하지만 사실은 무너져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데 계속 꼬입니다

왜일까요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죄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예외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입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상황이 아닙니다

죄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무너진 그 자리에서 즉시 심판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이 말씀은 신학적으로 원시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 주어진 복음입니다

여자의 후손 이것은 단순한 자녀 이야기가 아닙니다

메시아의 약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합니다

십자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뱀의 머리를 깨뜨리십니다

완전한 승리입니다

사람이 완전히 망한 순간 하나님은 이미 구원을 준비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실패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약속으로 시작된 인생입니다

창세기는 말합니다

망했지만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시작부터 우리에게 오고 계셨습니다

 

2장 출애굽기 어린양의 피로 시작되는 구원

창세기에서 약속된 구원은 출애굽기에서 그림처럼 보여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400년 너무 길었습니다

세대가 바뀌고 기억이 사라질 만큼 길었습니다

노예는 단순히 힘든 삶이 아닙니다

자유가 없는 삶입니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습은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과 같습니다

사람은 죄의 노예입니다

하고 싶지 않은데 합니다

벗어나고 싶은데 못 벗어납니다

알면서도 반복합니다

이것이 죄의 권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십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출애굽은 단순한 역사 사건이 아닙니다

구원의 모형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재앙이 옵니다

죽음의 심판입니다

그 밤에 모든 장자가 죽게 됩니다

누가 살아남습니까

착한 사람입니까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어린양의 피가 있는 집입니다

출애굽기 12장 문설주에 피를 바르라

그 피를 보면 죽음이 넘어가리라

이것이 유월절입니다

구원의 기준은 행위가 아닙니다

피입니다 어린양의 피입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십자가는 우연한 죽음이 아닙니다

유월절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심판에서 건져냅니다

우리는 종종 생각합니다

내가 잘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출애굽기는 말합니다

아닙니다 피 없이는 안 됩니다

누군가 대신 죽어야 합니다

복음은 내가 하나님께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피를 가지고 나에게 오신 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는 외칩니다

피 흘림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3장 레위기 완전한 제물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레위기를 가장 어려운 책이라고 말합니다

읽다가 포기합니다

제사 이야기 피 이야기 규례 이야기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레위기를 이해하면 십자가가 보입니다

레위기의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죄는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합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수많은 제사가 등장합니다

왜 이렇게 많을까요

하나님이 복잡하셔서가 아닙니다

죄가 그만큼 무겁기 때문입니다

죄는 미안합니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피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대신 죽어야 합니다

짐승이 대신 죽습니다

양이 염소가 소가 피를 흘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 제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계속 반복해야 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다시 왜냐하면 짐승의 피는 완전한 해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진짜를 기다리는 그림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그분은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더 이상 반복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제물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제사를 드리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제물이 되셨습니다

십자가는 레위기의 완성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자기 의로 하나님께 가려고 합니다

유대교는 율법으로 이슬람교는 행함으로 기독교는 믿음으로

다 혼합이 되어버린 종교

교회, 예배, 찬양, 봉사, 헌신, 열심, 기도, 금식, 전도,,헌금, 나눔, 착함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완전한 제물은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신앙은 내가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제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레위기는 말합니다 완전한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4장 민수기 바라보는 믿음이 살립니다

광야는 훈련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불평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원망했습니다

왜일까요 기적이 있어도 마음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는 환경 문제가 아니라 본성의 문제입니다

 

민수기 21장 백성들은 또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십니다

많은 사람이 물리고 죽어갑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깨닫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살리라

이상합니다

약도 아닙니다 전투도 아닙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놋뱀은 십자가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이 들리셨습니다

십자가 위에 그리고 그분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습니다

우리는 자꾸 뭔가 더 하려고 합니다

더 잘해야 하고 더 깨끗해야 하고 더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말합니다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를 보십시오 그분을 믿으십시오

민수기는 외칩니다 바라보는 믿음이 살립니다

 

 

1주차 왜 이렇게 무너지는가  타락과 사람의 문제

창세기 3:6–10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는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숨게 만들고 두려움 속에 살게 만듭니다.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죄입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죠?

“왜 나는 이렇게 자꾸 무너지지?”

분명히 잘 살아보려고 합니다.

열심히 노력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씁니다.

신앙도 잘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꼬입니다.

관계는 생각처럼 풀리지 않고

마음은 자꾸 불안해지고

기도는 멀어지고 예배는 형식이 되고 삶은 점점 무거워집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죄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문제를 환경에서 찾습니다.

“돈이 없어서”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해서”

“운이 없어서” “상황이 안 좋아서”

물론 그것들도 힘듭니다.

 

하지만 성경은 더 깊은 곳을 봅니다.

진짜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 시작이 창세기 3장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완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아무 부족함 없이 평안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을 넣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느냐?”

이 질문 하나가 모든 것을 무너뜨렸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판단을 더 믿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 몇 가지가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 없이 내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밀어내고 내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두려움입니다.

창세기 3:10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전에는 숨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자 사람은 하나님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숨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특징입니다.

죄는 사람을 숨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피하게 하고 사람도 피하게 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숨기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겉으로는 괜찮은 척합니다.

웃는 척하고 강한 척하고 믿음 좋은 척합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들키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어떡하지”

“버림받으면 어떡하지”

이 두려움 속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닙니다.

죄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특별한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목사도 학생도 부모도 성실한 사람도 착한 사람도

모두 죄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를 비교합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는 괜찮아”

하지만 구원의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내가 조금 부족한 정도가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입니다.

핸드폰이 아무리 좋아도 전원이 끊어지면 작동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지면 겉은 살아 있어 보여도 속은 무너집니다.

그래서 사람은 성공해도 공허하고

사람이 많아도 외롭고 웃고 있어도 불안합니다.

근본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겉을 고치려고만 합니다.

행동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환경을 바꾸려고 합니다.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뿌리가 해결되지 않으면 열매는 계속 흔들립니다.

복음은 겉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질문은 “내가 얼마나 잘 사느냐”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가 입니다.

이 질문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아니면 종교는 있지만 관계는 없는가?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은 멀리 계신가?

예배는 드리지만 마음은 숨고 있는가?

이 질문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회복은 문제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죄를 인정해야 은혜가 들어옵니다.

아픈 것을 인정해야 치료가 시작됩니다.

 

숨는 사람은 회복되지 못합니다.

나오는 사람이 살아납니다.

아담은 숨었지만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오늘도 하나님은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지금 너는 어디 있느냐”

그 질문 앞에 우리는 대답해야 합니다.

문제는 내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끊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숨은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무너진 사람을 부르십니다.

포기한 사람을 다시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회복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왜 필요한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2주차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

약속된 메시아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사람이 무너진 순간 하나님은 이미 구원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사람은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 끝난 것 같습니다

실수했을 때

죄를 지었을 때

관계가 무너졌을 때

신앙이 식어버렸을 때

특히 하나님 앞에서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제 나를 포기하셨겠지요

나는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늦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끝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심판보다 먼저 약속을 주셨습니다

정죄보다 먼저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 중 하나입니다

이 장면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 직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욕심을 선택했고

그 결과 죄가 들어왔고 죽음이 들어왔고 두려움이 들어왔습니다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사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신학에서는 원시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처음 주어진 복음 가장 처음 주어진 메시아의 약속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누구입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보통 성경에서는 남자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하게

여자의 후손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메시아가 특별한 방식으로 오실 것을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사야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이사야 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 탄생

이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예수님은 우연히 오신 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된 구원자이십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분

뱀은 사탄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사람을 속였고 죄를 가져왔고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발꿈치를 상하는 것은 상처입니다

하지만 머리를 상하는 것은 결정적인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셨고 못 박히셨고 죽으셨습니다

겉으로 보면 패배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사탄의 권세가 깨졌습니다

죄의 권세가 무너졌습니다

죽음의 힘이 끝났습니다

예수님의 상처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습니다

  

베들레헴의 약속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놀랍게도 예수님의 출생 장소까지 이미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베들레헴 작고 작은 마을입니다

사람들은 큰 곳을 기대합니다

예루살렘 로마 권력의 중심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작은 곳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시작하십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의 방식은 세상의 방식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만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라

약한 자를 통해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작은 베들레헴에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끝난 사람입니까

혹시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나는 이미 늦었습니다

나는 너무 많이 망가졌습니다

하나님도 나를 포기하셨을 것입니다

그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닙니다

 

창세기 3장을 보십시오

인류가 가장 크게 실패한 날 하나님은 구원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실패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끝내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시작하십니다

사람이 끝이라고 말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약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늦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주 조급해집니다

왜 이렇게 늦습니까

왜 아직도 응답이 없습니까

왜 내 삶은 이렇게 오래 걸립니까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늦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것입니다

 

창세기 3:15의 약속 이후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도 약속을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부재가 아닙니다

준비입니다 지연이 아니라 섭리입니다

나는 혹시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셨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지금 실패를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약속을 보고 있습니까

나는 내 상처만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있습니까

당신의 인생은 실패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시작된 인생입니다

사람은 넘어졌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죄는 들어왔지만 구원은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사탄은 공격했지만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오늘이 무너져 보여도 끝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아직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바로 지금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끝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3주차 다 이루었다  십자가와 구원의 완성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나를 도와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나 대신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십자가는 슬픈 사건이 아니라 구원이 완성된 승리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좀 더 잘하면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더 착하게 살면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시겠지”

“내가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많이 봉사하면

괜찮아질 거야”

이 생각은 겉으로는 믿음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복음을 잘 모를 때 나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네가 더 해야 한다”가 아니라 

“이미 다 이루어졌다” 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 한마디 안에 복음의 핵심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십자가 위 마지막 선언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절망의 말이 아닙니다

포기의 말이 아닙니다

패배의 외침이 아닙니다

이것은 완성의 선언입니다

승리의 선포입니다

 

헬라어 원문으로는 “테텔레스타이” 라는 단어입니다

뜻은 “완전히 지불되었다” “끝났다” “완성되었다” 입니다

마치 빚을 다 갚고 도장을 찍는 것처럼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값 지불 완료!  구원 완성! 사탄 권세 종료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습니다

 

왜 예수님은 죽으셔야 했는가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좋은 선생님

도와주는 분 기적을 행하는 분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훨씬 더 깊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로하시기 위해서만 오신 것이 아닙니다

나 대신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여기서 중요한 말은 “우리” 입니다

그분의 죄가 아닙니다

우리의 죄입니다

그분의 허물이 아닙니다

우리의 허물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이것이 대속입니다

내 자리에 예수님이 서신 것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심판을 그분이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여기서 놀라운 것은 “우리가 착해졌을 때” 가 아닙니다

“우리가 열심히 했을 때” 도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기도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가 회복되기도 전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랑해서 도와준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다

십자가를 보면 많은 사람들은 패배처럼 생각합니다

조롱당하고 버림받고 못 박히고 죽으셨습니다

겉으로 보면 완전한 실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다릅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권세가 무너졌습니다

죽음은 예수님을 붙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부활 앞에서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절망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나는 아직도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자꾸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더 잘해야 하고 더 거룩해야 하고 더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구원의 시작은 내 노력이 아닙니다 십자가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위해 내려오신 것입니다

구원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붙잡는 것입니다

 

죄책감에 묶여 있는가

어떤 사람은 계속 과거에 묶여 있습니다

“나는 너무 큰 죄를 지었어”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실 리 없어”

“나는 자격이 없어” 

맞습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다면

내가 계속 “아직 안 끝났습니다”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보다 내 죄가 더 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 실패보다 큽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내 노력입니까?

내 종교생활입니까?

내 착함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까?

나는 아직도 죄책감에 묶여 있습니까?

아니면 “다 이루었다”는 복음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나를 도와주시기 위해서만 오신 분이 아닙니다

나 대신 죽으러 오신 분입니다

십자가에서 죄값은 끝났습니다

구원은 완성되었습니다

사탄의 권세는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더 열심히 해서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오늘 우리의 시작이 됩니다

“다 이루었다” 이 한마디가 당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 더 이상 증명하려고 살지 마십시오

? 이미 구원은 완성되었습니다

믿으십시오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자유하게 사십시오

 

4주차 어떻게 구원받는가  믿음과 은혜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쟁취가 아니라 선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뭘 해야 구원받을 수 있나요?”

“교회 다니면 되나요?”

“착하게 살면 되나요?”

“봉사 많이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나요?”

“기도 열심히 하면 천국 갈 수 있나요?”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의 답을 잘못 알면

평생 열심히 살았는데도 복음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성경의 대답은 아주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숨겨두지 않으셨습니다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공식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 말씀 안에 구원의 핵심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구원의 공식은 단 하나입니다

? 은혜 + 믿음 = 구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입니다

구원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쌓아 올린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선물입니다

 

아닌 것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노력 ❌ 종교생활 ❌ 착함 ❌ 봉사 ❌ 헌금 ❌ 교회 출석 ❌

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거래처럼 생각합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하나님도 나를 받아주시겠지”

하지만 복음은 거래가 아닙니다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점수를 보고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하나님이 계시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님께 내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의자를 믿는다는 것은 의자에 앉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믿는다는 것은 실제로 탑승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 내 영혼을 맡기는 것입니다

내 노력에서 손을 떼고 십자가를 붙잡는 것입니다

“주님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나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3:16의 초대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핵심은 “믿는 자마다” 입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완벽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실수 없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믿는 자마다 누구든지입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오래 교회 다닌 사람도

처음 예수를 듣는 사람도

과거가 무거운 사람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은 문을 열어두셨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정직하게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내 자존심입니까

내 선함입니까

내 종교생활입니까

내 기준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더 믿습니다

복음은 손을 비우는 것입니다

내 의를 내려놓고 예수를 붙잡는 것입니다

 

선물을 받지 못하는 이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받을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존심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해보겠습니다”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입니다

선물은 겸손한 사람이 받습니다

믿음은 항복입니다

 

나는 정말 예수를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나를 믿고 있습니까?

나는 구원을 선물로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쟁취하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구원은 열심히 살아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완성되었습니다

문은 열려 있습니다

초청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 아니라믿음입니다

? 은혜 + 믿음 = 구원

이것이 복음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예수님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입니다”

그 순간 구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이 됩니다

구원은 쟁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5주차 나는 누구인가 새로운 정체성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에요.”

“나는 쉽게 안 변해요.”

“내 과거를 보면 희망이 없어요.”

특히 실패를 많이 경험한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을 그렇게 정의합니다.

한 번 넘어진 사람은 자기를 실패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은 자기를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죄를 반복한 사람은 자기를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이름보다 자기 상처를 더 크게 붙잡고 살아갑니다.

“나는 부족한 사람”

“나는 버려진 사람”

“나는 안 되는 사람”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복음은 완전히 다르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과거로 당신을 정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십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행동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바뀝니다.

 

1. 새로운 피조물로 존재 자체가 바뀝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은 “조금 더 착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조금 더 종교적인 사람이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선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과거 기준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과거를 봅니다.

“쟤는 원래 저래”

“저 사람은 절대 안 바뀌어”

하지만 하나님은 십자가를 보십니다.

사람은 실패를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은혜를 선언하십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죄의 이름도

정죄의 이름도

실패의 이름도

끝났습니다.

보라 새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미래형이 아닙니다.

“될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되었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꾸 이렇게 말합니다.

“언젠가 좋아지면…”

“언젠가 거룩해지면…”

“언젠가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시겠지…”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은 내일부터가 아니라

지금부터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로 존재 자체가 바뀝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은 복음의 가장 놀라운 선언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죄 용서만 받은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자녀입니다.

손님이 아닙니다.

종도 아닙니다.

자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으로 생각합니다.

무섭고 심판하시고

가까이 가기 어려운 분.

그래서 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부족해”

“하나님은 나를 실망하셨을 거야”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집 밖에 세워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하십니다.

자녀는 쫓겨날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녀는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넘어져도 돌아가고

실수해도 돌아가고 울면서도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집이니까요.

신앙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돌아갈 곳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인만이 아니라 당신의 아버지이십니다.

 

3. 하나님은 아바 아버지입니다.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아바”는 아주 친밀한 표현입니다.

아버지 아빠 가장 가까운 관계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종에서 자녀로 바꿉니다.

종은 늘 두려워합니다.

“혼날까?”

“버림받을까?”

“실수하면 끝날까?”

하지만 자녀는 사랑 안에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겁주는 분이 아니라

품어주시는 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늘 두려움 속에 삽니다.

“내가 충분히 잘하고 있나?”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시나?”

십자가가 이미 그 대답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만큼

당신은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두려움이 아니라

담대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숨는 신앙이 아니라

아버지께 달려가는 신앙입니다.

 

4. 아직도 과거로 사는가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직도 옛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실패한 나

상처받은 나

버림받은 나

부족한 나

계속 그 이름을 붙잡습니다.

하나님은 “내 자녀”라고 부르시는데

우리는 계속 “나는 안 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사탄은 당신의 과거를 계속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미래를 보여주십니다.

사탄은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너는 새 사람이 되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믿을 것입니까?

우리는 과거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까?

실패한 사람입니까?

상처받은 사람입니까?

포기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나는 아직도 과거 기준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복음의 기준으로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당신은 변화 중인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새로운 존재입니다.

당신은 실패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버려진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사람입니다.

오늘부터 과거의 이름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이름으로 살아가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6주차 끝까지 남는 사람 재림과 믿음의 결단

 

마태복음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즘 신앙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입니다.

시작은 많은데 끝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뜨겁습니다.

열심히 예배드리고 눈물로 기도하고

“이번엔 정말 달라질 거야” 결심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점점 식어갑니다.

기도가 줄어들고 말씀이 멀어지고

예배가 습관이 되고 신앙이 형식만 남습니다.

한때는 뜨거웠는데 지금은 차가워졌습니다.

한때는 가까웠는데 지금은 멀어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시작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끝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진짜 신앙은 시작이 아니라 끝입니다.

1. 끝까지 견디는 자

마태복음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뜨겁게 시작한 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한때 열심이 있었던 자”도 아닙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순간의 감정이 아닙니다.

오래 걷는 것입니다.

넘어지지 않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흔들려도 다시 돌아오는 것이 믿음입니다.

완벽한 사람이 믿음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끝까지 남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실패를 보고 포기합니다.

“나는 안 되나 보다” “나는 진짜 신앙이 없는 것 같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넘어졌느냐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느냐입니다.

베드로는 넘어졌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왔습니다.

유다는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차이는 완벽함이 아니라 돌아옴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남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2. 다시 오실 예수님

요한복음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오겠다

재림은 상징이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초림이 실제였듯 재림도 실제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이것은 두려움의 메시지가 아니라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버리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데리러 오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흔들립니다.

관계도 흔들리고

경제도 흔들리고

마음도 흔들립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마지막이 두려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끝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재림 신앙은 오늘을 다르게 살게 합니다.

“언젠가 오시겠지”가 아니라 오늘 오셔도 부끄럽지 않게사는 것입니다.

신앙은 내일 할 일이 아니라 오늘의 결단입니다.

 

 

3. 지금도 문 밖에 서 계신 주님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두드리십니다. 기다리십니다. 부르십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혹시 신앙이 식어 있습니까?

기도가 멈췄습니까?

예배는 드리지만 마음은 멀어졌습니까?

예수님은 여전히 문 밖에 서 계십니다.

“다시 돌아오라” 정죄가 아니라 초청입니다.

심판보다 먼저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자꾸 생각합니다.

“이 정도로 멀어졌으면 하나님도 나를 포기하셨겠지”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기다리십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떠나신 것이 아니라 내가 문을 닫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다시 열 수 있습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가능합니다.

 

4.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뜨거웠다가 식은 상태입니까?

형식만 남은 상태입니까?

교회는 다니지만 마음은 멀어진 상태입니까?

포기 직전입니까?

아니면 다시 돌아오려는 자리입니까?

신앙은 남과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현재를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겉을 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당신에게 묻고 계십니다.

“지금 네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그 질문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회복은 정직함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결정해야 합니다

계속 멀어질 것인가 아니면 돌아올 것인가

계속 미룰 것인가 아니면 오늘 결단할 것인가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날은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중요합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입니다.

완벽해진 다음이 아니라 지금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남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넘어져도 돌아오는 사람

흔들려도 붙잡는 사람

식어도 다시 불붙는 사람

그 사람이 끝까지 남는 사람입니다.

오늘 그 사람이 되십시오.

 

사람은 타락했고 하나님은 약속하셨고 예수님은 이루셨고

우리는 믿음으로 받고 새로운 존재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끝까지 남아야 합니다

 

당신은 이 예수님을 정말 만났습니까?

그리고 지금 끝까지 그분과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타락한 사람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 –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당신의 눈물로 쓴 책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이 책은 단순한 성경 요약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도덕책처럼 생각합니다.

착하게 살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사랑하며 살아라.

물론 그런 교훈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의 중심은 아닙니다.

성경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한 분을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책의 핵심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닙니다.

“타락 → 약속 → 십자가 → 믿음 → 정체성 → 재림”

이 흐름 속에서 타락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책은 대화식이며, 부흥회식이며, 영적 각성을 일으키는 설교 구조로 쓰였습니다.

흔한 주석서도 아니고 단순한 성경공부 교재도 아닙니다.

복음 중심의 구조와 현장 설교의 언어, 그리고 눈물로 쌓인 저자의 고백이 담긴

하나의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메시지 시스템”입니다.

많은 사람이 책을 씁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기 메시지를 가진 책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단순한 출판물이 아닙니다.

복음의 고백이며 삶의 정리이며 사람을 살리는 도구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이 책을 썼다”가 아닙니다.

이 책을 통해 누가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인가입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한 교회를 깨우고

한 세대를 흔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전 세계에 하나뿐인 책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눈물로 쓴 책은 당신밖에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26. 5

 

 당신의 눈물로 쓴 책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저자 : 백 종 찬

 

 

 

작성 2026.04.30 11:32 수정 2026.04.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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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