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미술에서 재료와 물성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는 가운데, 남인우 화가가 고밀도 목재 패널을 지지체로 활용한 회화 작품 <중용-삭사이와만>을 발표했다. 페루 쿠스코에 위치한 잉카 시대의 석조 유적 삭사이와만(Sacsayhuamán) 성벽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동양 철학의 '중용(中庸)'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삭사이와만 성벽은 수십 톤 규모의 거대한 석재들이 접착제 없이 정교하게 맞물린 구조로, 수백 년간 지진과 풍화를 견뎌온 고대 석조 건축물이다. 남인우 화가는 이 성벽의 견고한 결합 구조에서 공자의 중용 사상, 즉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과 절제의 원리를 발견하고 이를 회화로 옮겼다고 밝혔다.
제작 기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일반적인 캔버스 대신 고밀도 목재 패널을 지지체로 채택한 것이다. 목재 패널 고유의 결과 옹이를 인위적으로 제거하지 않고 작품의 일부로 활용해 성벽의 거친 질감을 표현했다. 안료를 한 번에 도포하지 않고 수십 차례에 걸쳐 겹겹이 쌓아 올리는 적층 방식을 적용했으며, 천연 광물 가루와 하이브리드 안료를 직접 배합해 사용했다. 이렇게 형성된 두터운 마티에르(Matière)는 빛의 각도에 따라 표면의 명암이 달라지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화면 구성에서는 색채의 배분과 면의 분할을 통해 중용의 균형감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굵은 선과 면의 분할이 삭사이와만 성벽의 기하학적 구조를 연상시키면서도, 전체적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안정된 구도를 유지한다.
남인우 화가는 자신의 작업 방향을 '신물질주의(Neo-Materialism)'로 규정하고 있다. 시각적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재료 자체의 물성이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고밀도 목재 패널은 캔버스에 비해 습도와 온도 변화에 따른 변형이 적고, 두터운 안료 적층을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물리적 강도를 갖추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재료적 특성이 삭사이와만 성벽이 수백 년간 원형을 유지해 온 견고함과 맞닿아 있다고 보고, 작품의 주제와 재료가 동일한 맥락 위에 놓이도록 설계했다. 관람자가 화면 앞에 섰을 때 시각뿐 아니라 표면의 요철과 질감에서 촉각적 경험까지 느낄 수 있도록 의도한 것도 이러한 접근의 연장선이다.
남인우 화가는 "캔버스의 평면성에서 벗어나 목재 패널이라는 물성을 통해 작품에 실재감을 부여하고자 했다"며 "삭사이와만 성벽이 서로 다른 형태의 돌들로 균형을 이루듯, 회화에서도 다양한 질감과 색채 사이에서 조화의 중심을 찾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중용-삭사이와만>은 2019년 6월 제작되었으며, 남인우 화가는 목재 패널 기반의 마티에르 회화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