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플레이션의 구조적 변화
하버드대학교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 교수가 2026년 4월 29일 Project Syndicate에 기고한 칼럼 'Why Inflation Isn't Going Away: Structural Shifts vs. Cyclical Pressures'는 현재의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심층적인 구조적 변화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로고프 교수는 탈세계화(Deglobalization) 추세, 에너지 전환 비용 증가, 노동 시장의 구조적 변화라는 세 가지 요인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지속시키는 핵심 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단기 통화정책만으로는 제어하기 어려우며,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재검토하거나 과거와 다른 정책 수단을 고려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로고프 교수의 분석은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은행은 2023년 이후 기준금리를 3.5% 수준으로 유지하며 물가 안정을 도모했으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에너지 가격 변동성은 국내 물가에 지속적인 상승 압력을 가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2%를 기록했으며, 2025년에도 2.8%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는 한국은행의 목표 범위(2% ±0.5%p)를 상회하는 수치다.
로고프 교수가 지적한 구조적 요인들이 한국 경제에서도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탈세계화 추세는 한국의 제조업 중심 경제 구조에 특히 큰 영향을 미친다.
미중 갈등 격화와 각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 강화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생산기지 다변화와 현지화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증설을 추진 중이며, 현대자동차그룹은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전기차 생산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공급망 재편은 초기 투자비용 증가로 이어지며, 이는 결국 제품 가격 상승 압력으로 전가된다.
로고프 교수는 칼럼에서 "과거 30년간 지속된 글로벌화가 가져온 디스인플레이션(물가 하락 압력) 효과가 역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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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이 역풍은 더 강하게 체감된다. 에너지 전환 비용 증가 역시 한국 경제의 구조적 인플레이션 요인이다.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 태양광·풍력 발전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 전력망 고도화 등에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액은 전년 대비 18% 증가한 12조 원에 달했다.
이러한 전환 비용은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작용하며, 제조업 생산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로고프 교수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정책은 필수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가격 상승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노동 시장의 구조적 변화도 인플레이션 지속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은 급격한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인해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통계청 전망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20년 3,738만 명에서 2030년 3,381만 명으로 약 1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전반에서 인력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임금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명목임금 상승률은 4.1%를 기록했으며, 이는 2010년대 평균(2.8%)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로고프 교수는 "선진국의 인구 고령화와 이민 제한 정책이 노동 공급을 제약하면서 임금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역시 이민 정책 개방에 소극적인 가운데, 노동력 부족 문제는 장기적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들로 인해 과거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만으로는 인플레이션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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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프 교수는 칼럼에서 "수요 측면 관리 중심의 통화정책은 구조적 공급 제약 앞에서 한계를 드러낸다"며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거나, 재정정책·산업정책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급 확대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로 유럽중앙은행(ECB)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최근 통화정책 운영 프레임워크 재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한국은행 역시 2026년 중 중기 통화정책 방향을 재점검할 계획이며, 이 과정에서 로고프 교수가 제시한 구조적 변화 인식이 중요한 참고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학계에서도 로고프 교수의 진단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6년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가 직면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순환적 요인보다 구조적 요인의 비중이 크다"며 "공급망 안정화, 에너지 전환 속도 조절,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중앙은행이 전통적인 물가 안정 목표를 넘어 산업정책이나 기후정책 영역으로 개입할 경우, 정치적 압력에 노출되어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년 10월 보고서에서 "중앙은행의 정책 목표 확대는 신중해야 하며, 재정당국과의 명확한 역할 분담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해외 주요 매체들도 구조적 인플레이션 문제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는 2026년 4월 중순 사설에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재부상은 중앙은행들에게 새로운 딜레마를 안긴다"며 "금리 인상만으로는 공급 측면 제약을 해소할 수 없으며, 정부의 투자 확대와 규제 개혁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같은 시기 커버스토리에서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처음으로 공급 측 쇼크가 인플레이션의 주된 동력이 되고 있다"며 "각국 정부는 에너지 안보 강화와 공급망 다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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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로고프 교수의 문제의식은 글로벌 경제학계와 언론의 공통된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앙은행의 새로운 과제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조율을 강화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2026년 2월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 "공급망 리스크 관리, 에너지 전환 로드맵 재점검, 노동시장 개혁을 3대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2026년 4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구조적 인플레이션 요인을 감안할 때, 통화정책만으로는 물가 안정 달성이 쉽지 않다"며 "정부의 공급 확대 정책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로고프 교수가 제안한 정책 믹스 접근과 맥을 같이하는 발언이다. 기업 부문에서도 구조적 변화에 대한 대응이 가속화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6년 3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7%가 "향후 3년간 공급망 재편과 에너지 전환이 가장 큰 경영 리스크"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 재생에너지 조달 계약 확대, 자동화 투자를 통한 노동력 부족 대응 등을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는 2025년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1조 원을 투자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와 유럽에 배터리 공장 신설을 결정했다.
이러한 민간 부문의 투자 확대는 단기적으로는 비용 증가 요인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공급 능력 확충을 통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역사적 경험도 현재 상황 이해에 참고가 된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위기는 주로 수요 측면 충격이었으며, 통화·재정 정책의 적극적 대응으로 비교적 빠른 회복이 가능했다. 반면 현재의 구조적 인플레이션은 공급 측면 제약에서 비롯되었기에, 과거와 같은 정책 대응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로고프 교수는 칼럼에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처음으로 선진국들이 공급 제약형 인플레이션에 직면했다"며 "당시 폴 볼커 Fed 의장의 고금리 정책이 성공했던 것은 공급 측면 문제가 아니라 수요 과열이 원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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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한국도 과거 정책 경험에만 의존하지 말고,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에너지 안보 강화도 한국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는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커지면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확보가 경제 안보의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6년 1월 '에너지 안보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호주·미국 등으로 공급원을 다변화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또한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과 해상풍력 확대를 통해 국산 에너지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인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노력은 에너지 전환 비용을 관리하면서도 장기적인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다.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과제지만, 구조적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개혁 영역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이중구조가 뚜렷하며, 경직된 고용보호 제도로 인해 기업들이 인력 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5년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노동시장 유연성 지표가 회원국 중 하위권"이라며 "해고 규제 완화와 임금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고용노동부는 2026년 상반기 중 직무급 확대, 근로시간 유연화 등을 골자로 한 노동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러한 개혁이 성공하려면 사회적 합의 도출이 관건이며, 정부는 노사정 대화를 통해 점진적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로고프 교수의 칼럼은 한국이 직면한 경제적 도전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의 산물이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 재정정책, 산업정책을 아우르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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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물가 안정 목표를 재검토하고, 정부는 공급 확대를 위한 투자와 개혁을 가속화해야 한다. 기업들은 공급망 재편과 에너지 전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인력 부족 문제를 완화해야 한다.
이러한 다층적 노력이 결합될 때, 한국 경제는 구조적 인플레이션 압력을 관리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 경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한국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공급 능력 확충이어야 한다. 수요를 억제하는 긴축 정책만으로는 구조적 인플레이션을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정부는 인프라 투자, 기술 혁신 지원, 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들이 생산 능력을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과 성장 지원 간 균형을 맞추는 섬세한 정책 운용이 요구된다.
로고프 교수가 제시한 정책 방향은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분명히 보여준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Q. 로고프 교수가 지적한 구조적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 A.
로고프 교수는 탈세계화 추세, 에너지 전환 비용 증가, 노동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세 가지 핵심 원인으로 제시했다. 이들 요인은 단기 통화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공급 측면 제약을 초래한다.
Q. 한국은행은 구조적 인플레이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A. 로고프 교수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재검토하고, 재정정책·산업정책과 긴밀히 협력하여 공급 확대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은행 역시 통화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정부와의 정책 조율을 강화하고 있다. Q.
한국 기업들이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 중인 전략은 무엇인가? A. 주요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 재생에너지 조달 확대, 자동화 투자를 통한 노동력 부족 대응 등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증설을, 현대차그룹은 인도·인도네시아 전기차 생산 거점 확대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