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칼럼] 지금 이란이 우리에게 들려주려는 이야기

테헤란이 뉴욕타임스를 이용했다? - 이란 새 지도부 보도의 충격적 이면

45년 거짓말의 해부: '성직자 온건 vs 군부 강경' 이분법이 무너진다

테헤란의 언론 전쟁: 서방 미디어는 이란 프로파간다의 무의식적 대리인인가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어느 도시의 골목길, 오토바이 한 대가 조용히 달린다. 손으로 쓴 쪽지 한 장을 싣고,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의 실핏줄을 타고 달리는 그 전령의 목적지는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에게로 향한다. 적어도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스(NYT)가 전 세계 독자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2026년 4월, NYT는 이란 관리, 전직 관리, 혁명수비대(IRGC) 관계자 등 20명 이상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란의 새 권력 구조를 상세히 보도했다.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발언조차 어려운 몸으로, 카메라 앞에 서기를 의도적으로 피하면서도 손으로 쓴 메모를 오토바이 전령 체계를 통해 전달하며 국정을 지휘한다는 것이다. 그림처럼 생생한 묘사이다. 그러나 그 생생함 뒤에는 사진도, 의료 기록도, 독립적으로 검증된 단 한 줄의 증거도 없다.

 

여기서 독자들이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권위주의 국가, 더구나 전쟁 중인 나라에서 서방 언론에 입을 여는 '이란 관리들'이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을 세계에 유통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선발된 목소리들이다. 정보를 제공하는 자가 바로 그 정보로 직접적인 이익을 누리는 자라면, 그 정보는 뉴스가 아니라 선전이다.

 

NYT는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그 출처들의 이야기를 사실처럼 제시하면서도, 독자들에게 그들의 동기를 따져볼 기회를 단 한 번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저널리즘의 결핍이기 이전에, 무책임한 직무 유기이다.

 

이 보도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권력이 성직자 계층에서 강경파 군부로 이동했으며, 성직자들의 광범위한 영향력이 이제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구도가 세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인상은 명백하다. 이란이 과거보다 더욱 급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45년의 역사를 통째로 다시 써버리는 대담한 왜곡이다.

 

우리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35년간 이란을 통치한 그 성직자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그는 핵 프로그램을 무기화 직전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탄도미사일 체계를 구축했고, 무인기 전력을 길러냈다.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로 이어지는 대리 전력 네트워크를 직접 설계하고 운용했다. 2009년 녹색 운동을 폭압으로 짓밟았고, 2022년 봉기 이후의 탄압에서 수많은 시위대를 처형했다. 가셈 솔레이마니 휘하의 쿠드스군을 지휘하여 수년간 미군을 살상한 작전들을 직접 승인했다. 이란혁명수비대는 이란 성직자들이 외부에서 견제하던 별개 기관이 아니다. 그것은 성직자들의 혁명 비전을 현실에서 실행하는 도구 그 자체였다. 모든 핵 시설, 모든 미사일, 모든 대리 네트워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직자들의 지시와 승인 아래 건설되었다.

 

이란 성직자 체제의 온건함 대 군부의 강경함이라는 이분법은 처음부터 실재하지 않는 허구이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대립한 적이 없다. 출발점부터 동반자였다. 소위 개혁파 대통령도, 강경 대통령도, 실용적 외교부 장관도, 혁명수비대 사령관도 — 얼굴만 달랐을 뿐, 목표는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45년 동안, 이 사실에 눈을 감아온 이들이 지금 와서 '이란이 더 강경해졌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분석이 아니다. 그것은 정확히 테헤란이 세계에 읽히고 싶은 이야기이다.

 

트럼프가 새 이란 지도부가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발언했을 때, 많은 이가 이를 순진한 낙관론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그 발언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이란 지도부의 성품이나 이념이 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전례 없는 군사적 압박을 받은 끝에, 지금 테헤란의 결정권자들에게는 협상 테이블 이외의 현실적 선택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는 냉정한 현실 판단이다. 이것은 이란의 선의에 대한 신뢰가 아니다. 선택지의 소멸에 근거한 전략적 계산이다.

 

만약 서방의 정책 입안자들과 여론 형성자들이 "우리가 전쟁으로 온건파 대신 강경파를 키웠다"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정확히 이란이 원하는 결론이다. 이란이 협상을 거부하고 저항을 지속하기 위한 정당성의 근거를 서방 스스로 제공해 주는 꼴이 된다. 이란은 수십 년간 대리전쟁, 미군 공격, 핵 프로그램이라는 수단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을 향해 꾸준히 전쟁을 걸어왔다. 2026년 2월의 군사 행동은 갑작스러운 침략이 아니라, 45년간 쌓여온 위협에 대한 지각된 응전이다. 이를 침략으로만 부르는 건, 철저히 이란 시각에서만, 이란이 읽히길 원하는 대로 바라보는 것일 수 있다.

 

이 세계에는 매 순간 너무 많은 이야기가 동시에 쏟아진다. 어떤 이야기는 진실의 뼈대를 품고 있고, 어떤 이야기는 누군가의 생존을 위해 정교하게 가공된 허구이다. 전쟁터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더욱 그렇다. 오토바이를 달리는 전령이 실어 나르는 작은 쪽지 하나가, 어느 순간 세계 최대 신문의 기사가 되고, 정책 입안자들의 판단에 스며들고, 결국 수백만 명의 현실을 바꾸어 놓는다. 

 

우리가 그동안 이란을 바라보며 배운 하나는 누가 무엇을 말하는가만큼 중요한 것은, 그 말을 누가 우리에게 전달하는가, 그리고 그 전달자가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이란이 우리에게 애써 읽히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활자가 되어 세상을 돌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이야기를 읽되, 읽으면서 그 뒤에 숨은 또 다른 이야기를 보려는 눈을 잃지 않는 것이다.

작성 2026.05.03 09:48 수정 2026.05.0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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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