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멩이를 옮기는 사람 5
5. 들어올래?
문이 닫히자 바깥의 바람 소리가 멀어졌다.
조금 전까지 귓가를 때리던 겨울 공기는 문 너머로 물러났고, 영수의 앞에는 낯선 온기가 남았다. 그 온기는 방 안을 가득 채운 뜨거움이 아니었다. 연탄불처럼 확 끓어오르는 따뜻함도 아니었다. 다만 사람의 숨결이 오래 머문 곳에서만 생기는 낮은 온도였다.
영수는 문 안쪽에 선 채 움직이지 못했다.
발끝은 문턱을 넘었지만 마음은 아직 밖에 남아 있었다. 골목의 찬바람, 민호에게 빌린 동전, 엄마의 기침 소리, 돈이 없으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이 그의 등 뒤에 줄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소독약 냄새가 났다. 낯선 냄새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냄새가 불쾌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깨끗하게 하려는 냄새였다. 이 공간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 주는 냄새였다.
그는 주머니를 다시 쥐었다.
동전들이 작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영수는 움찔했다. 마치 이 병원 안의 모든 사람이 그 소리를 들었을 것만 같았다. 주머니 속에 든 것이 얼마나 적은지, 자신이 얼마나 가진 것이 없는지, 다 들켜 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영수를 바라보지 않았다.
복도 저쪽에서는 누군가 조용히 물을 따르고 있었다. 병실 안에서는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한 간호사는 하얀 수건을 접고 있었고, 다른 환자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아픔 안에 머물러 있었다.
영수는 그 모습을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병원은 생각했던 것처럼 번쩍거리지 않았다. 벽은 오래되었고, 복도는 넓지 않았다. 바닥에는 오래 닦인 흔적이 남아 있었고, 창틀에는 겨울 먼지가 조금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지저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곳은 낡았지만 버려진 곳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계속 닦고, 누군가가 계속 돌보고, 누군가가 계속 지켜 온 공간 같았다.
그리고 영수가 보기에 가장 낯선 것이 있었다.
아픈 사람들이 있었고, 가난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옷이 낡은 사람, 신발이 젖은 사람, 얼굴에 피곤이 깊게 앉은 사람. 그런데 그들은 쫓겨난 사람이 아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누워 있었다. 치료받고 있었다.
영수의 마음 안에서 오래된 문장 하나가 삐걱거렸다.
병원은 돈 있는 사람만 가는 곳이라는 말.
그 문장이 조금씩 힘을 잃는 것 같았다.
"춥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수는 고개를 들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아직 곁에 서 있었다. 그는 영수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조금 전처럼 몸을 낮춘 채, 영수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영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작게 저었다.
사실 추웠다. 하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버릇은 엄마에게서 배운 것 같았다. 아플 때도 괜찮다, 배고플 때도 괜찮다, 무서울 때도 괜찮다. 영수는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을 몸에 익히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반사적으로 고개가 저어졌다. 추운데 춥지 않다고.
남자는 잠시 영수를 바라보다가, 벽에 걸린 낡은 외투 하나를 가져왔다.
"잠깐 걸치고 있어."
영수는 손을 내밀지 못했다.
"괜찮아요."
이번에는 말로 나왔다.
남자는 웃지 않았다. 혼내지도 않았다. 다만 조용히 외투를 영수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괜찮아도 걸쳐."
그 말은 이상했다. 괜찮다는 말을 해도, 누군가는 계속 돌봐 줄 수 있다는 뜻처럼 들렸다. 영수는 그 뜻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외투의 무게가 어깨에 닿는 순간, 무언가가 조금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긴장이었다. 어깨에 올라가 있던 긴장이 조금 내려간 것이었다.
영수는 외투 자락을 손으로 붙잡았다. 오래된 천 냄새가 났다. 약 냄새와 비누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낯선 냄새였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남자는 복도 안쪽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와."
영수는 한 걸음씩 따라갔다. 복도를 걷는 동안 그의 눈은 계속 움직였다. 병실 문틈으로 보이는 사람들, 침대 옆에 놓인 물그릇, 벽에 기대어 잠든 보호자, 천천히 지나가는 간호사의 발걸음.
그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런데 어딘가 낯설지 않기도 했다. 아픔이라는 것은, 골목에서도 방 안에서도 보아 온 것이었다. 형태만 다를 뿐이었다.
"이름이 뭐니?"
남자가 물었다.
"영수요."
목소리가 작았다.
"몇 살?"
"열 살이요."
"혼자 왔어?"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잠시 멈췄다. 그 멈춤이 영수에게는 크게 느껴졌다. 혹시 혼자 온 것이 잘못이었을까. 보호자를 데려오지 않았다고 혼날까.
영수는 서둘러 말했다.
"엄마가, 못 일어나요."
남자의 표정이 달라졌다.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어졌다. 눈빛이 영수의 말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담고 있는 무게를 함께 받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사흘째요."
"열은?"
"많이 나요. 기침도… 밤마다 심하고요."
"숨쉬기는?"
영수는 잠시 생각했다. 엄마의 숨소리가 떠올랐다. 가슴 안쪽에서 뭔가 걸리는 듯한 소리.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던 소리.
"이상해요. 숨쉴 때… 소리가 나요. 밤에 끊길 것 같다가 다시 이어지는 소리요."
남자는 더 묻지 않았다. 곧장 옆에 있던 작은 책상으로 가서 가방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가방은 오래되어 손잡이 부분이 닳아 있었다. 그는 그 안에 청진기와 몇 가지 물건을 확인하듯 넣었다.
영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어디 사니?"
"저 아래 골목… 우물 있는 데서 오른쪽으로…."
말하다가 영수는 멈췄다. 설명이 엉망인 것 같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제가 데려갈게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이 가자."
영수는 눈을 크게 떴다.
"지금요?"
"지금."
그 대답은 너무 당연했다.
영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병원에 오면 먼저 돈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이름을 적고, 얼마가 있는지 묻고, 안 되면 돌아가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엄마가 어디 있느냐고만 물었다. 그리고 지금 가자고 했다.
영수는 주머니 속 동전을 떠올렸다. 갑자기 더 무거워졌다.
"저…."
남자가 돌아보았다.
"왜?"
영수는 입술을 적셨다.
"돈이, 많이 없어요."
그 말은 아주 작게 나왔다. 하지만 복도 안에서는 충분히 들렸다.
영수는 말하고 나서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외투를 걸쳤는데도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 말을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다면, 더 준비를 했을 텐데. 하지만 준비를 한다고 해서 이 말이 쉬워질 리는 없었다. 이 말은 쉬워질 수 있는 종류의 말이 아니었다.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는 일.
그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작아지는 일이었다.
남자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수는 그 침묵이 무서웠다. 이제야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이 사람이 표정을 바꿀 것 같았다. 친절했던 얼굴이 현실적인 얼굴로 변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딱딱해질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남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영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영수야."
이름을 불렀다. 영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픈 사람을 보러 가는 데 돈이 먼저니?"
영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너무 낯설었다. 그동안 영수가 배운 세상에서는 돈이 먼저였다. 쌀을 사려면 돈이 먼저였고, 연탄을 사려면 돈이 먼저였고, 약을 사려면 돈이 먼저였다. 돈이 없으면 기다려야 했고, 참아야 했고,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 돈이 먼저냐고 묻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순서가 틀렸다는 듯이.
남자는 조용히 말했다.
"먼저 가서 보자."
그 말이 끝이었다. 긴 설명도 없었다. 훈계도 없었다. 영수의 가난을 들여다보며 불쌍하다는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그저 먼저 가자고 했다.
영수는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인지 알 수 없었다. 고마워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아니면 이 말을 듣기까지 너무 오래 두려워했던 것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인지. 영수는 그 감정을 정확히 부를 수 없었다. 그저 가슴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풀리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울면 시간이 늦어질 것 같았다.
남자는 간호사에게 짧게 말을 전했다.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급한 환자입니다."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마치 이런 일이 이 병원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라는 듯했다.
영수는 다시 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조금 전 그를 삼킬 듯 크게 느껴졌던 문이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들어올 때의 문과 나갈 때의 문이 같았지만, 영수의 마음은 달라져 있었다.
남자가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다시 밀려왔다. 영수는 몸을 움츠렸다. 남자는 가방을 고쳐 들었다.
"길 안내해 줄 수 있지?"
"네."
목소리가 조금 더 분명해졌다.
두 사람은 골목으로 나섰다. 눈은 아직 녹지 않았고, 바람은 여전히 매서웠다. 하지만 영수는 조금 전처럼 혼자라고 느끼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걷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이었다. 영수의 보폭에 맞춘 걸음.
영수는 문득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람은 자신보다 앞서가지 않았다. 뒤에서 재촉하지도 않았다. 나란히 걸었다.
그 작은 차이가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어른이 아이의 보폭에 맞춘다는 것. 그것이 당연한 일인지, 아닌지, 영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걸어 준 어른은 없었다.
엄마는 늘 영수의 손을 잡고 걸었다. 하지만 엄마의 걸음은 항상 빨랐다. 시장을 가야 했고, 일을 해야 했고, 서둘러야 할 이유가 늘 있었다. 영수는 그 걸음을 따라가느라 종종 뛰어야 했다.
이 사람의 걸음은 달랐다.
집이 가까워졌다. 영수의 걸음이 빨라졌다. 남자도 말없이 따라왔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영수는 숨을 고르지도 않고 문을 열었다.
"엄마!"
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탁하고 뜨거웠다. 엄마는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기침을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영수는 급히 옆으로 비켜섰다.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신발을 벗고, 무릎을 낮추고, 엄마 곁에 앉았다. 그 모든 동작이 조심스러웠다. 가난한 방이라고 해서 함부로 들어오지 않았다. 낡은 이불이라고 해서 대충 들추지 않았다.
엄마의 손목을 잡을 때도, 그는 먼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찰 좀 하겠습니다."
엄마는 힘겹게 눈을 떴다. 낯선 사람을 보고 놀란 듯했지만, 곧 영수를 보았다.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엄마가 하던 '괜찮다'와 달랐다. 진짜 괜찮아질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남자는 청진기를 꺼냈다. 차가운 금속이 엄마의 가슴에 닿기 전, 그는 손바닥으로 잠시 감쌌다.
그 작은 행동을 영수는 놓치지 않았다.
아픈 사람에게 차가운 것을 바로 대지 않는 사람. 금속이 피부에 닿기 전, 먼저 자신의 온기로 데우는 사람. 그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영수는 처음 보았다.
방 안에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청진기를 통해 숨소리를 듣는 남자의 얼굴은 진지했다. 영수는 그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 표정 안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얼마나 나쁜지. 살 수 있는지. 늦지 않았는지.
잠시 후, 남자는 청진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엄마의 이마를 짚었다.
"열이 높습니다."
영수의 가슴이 다시 조여 왔다. 남자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치료하면 됩니다."
그 말이 방 안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지금이라도. 치료하면. 됩니다.
영수는 그 세 조각의 말을 마음속에 하나씩 붙잡았다. 늦지 않았다는 말. 할 수 있다는 말. 그리고 된다는 말.
남자는 영수를 바라보았다.
"병원으로 모셔야겠다."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엄마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희가…."
그 말 뒤에 무엇이 올지 영수는 알았다. 돈. 하지만 남자는 엄마의 말을 부드럽게 막았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그리고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지금은 숨 쉬는 일이 먼저입니다."
그 순간 영수는 확실히 느꼈다. 이 사람은 순서를 다르게 알고 있었다. 돈보다 사람. 체면보다 생명. 망설임보다 손길.
영수는 그 순서가 너무 낯설어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낯설다는 것이 모두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낯섦은, 처음 만나는 희망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그날 아침, 영수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문을 열어 주었고, 영수의 걸음에 맞춰 걸었고, 엄마의 차가운 가슴에 청진기를 대기 전 자신의 손으로 먼저 덥혔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은 숨 쉬는 일이 먼저입니다."
영수는 그 말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마 아주 오래. 어른이 되어 흰 가운을 입게 되는 날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