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사람들은 낙천적이며 지난 일 중에서 좋은 것만 기억하는 등 긍정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는 말은 ‘폴리애너’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에서 딴 명랑하고 유쾌한 낙천주의자’를 지칭한다. 이처럼 낙천주의자에게는 문제란 없고 해답만 있을 뿐, 해답 중에서도 긍정적인 해답만 있을 뿐이다. 매사가 난관이나 곤경이 아니고 새로운 또 다른 기회이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지만 어린아이 눈에는 별똥 떨어지는 것이 보이듯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모든 것이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축복이다. 진정한 낙천주의자는 어떤 처지와 상황에서도 더할 수 없이 행복하다.
미국 작가 헨리 밀러(1891-1980)의 ‘북회귀선’에서 “나는 재산도 희망도 없지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말했다. 우리말에 ‘광에서 인심 난다’고 나 자신부터 행복해야 하고 나 자신의 행복감은 다른 사람 아닌 나 자신 속에서 찾아야 한다. 밖이 아닌 내 안에서 자가발전 시켜야 한다. 내 마음속에 천국을 보지 못하면 내 몸 바깥세상에서도 찾을 수 없으리라.
그리고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칼 융(1875-1961)이 지적한 대로 내 기분이 내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우리 자신도 즐겁지 않은가. 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맨발의 육상 선수 졸라 버드 피에터스가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그 누구의 비위나 기분을 맞출 필요 없고 나 자신을 만족시키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세상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언제나 나 자신을 기준 삼아 나 자신부터 기쁘게 할 일이다. 우리 각자 타고난 천재(天才)를 갖고 인재(人才)가 되어보자는 뜻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하나같이 천재라 할 수 있고, 천재의 특징으로 대담무쌍, 자기만족, 일편단심을 들 수 있는 것 같다. 자고로 미인은 용감한 자의 차지가 아니더냐. 그래서 예부터 일심불란 일심전력이면 일심만능이라 하는 것이리라. 말하자면 햇볕을 돋보기 렌즈의 확대경을 통해 한 점으로 모아야 불이 붙지 않는가. 어떤 일을 하던 정신과 마음이, 목적과 노력이 분산되지 않고 집중적으로 집약돼야 하리라.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천재란 99%의 땀과 1%의 행운으로 빚어진 것이라 했다지만 충분히 대비한 준비만 되어있으면 기회란 조만간 오게 마련이고 기회가 나타나는 순간 즉시 놓치지 않고 잡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제 먹는 마음만큼의 인물이 되고, 제 꾸는 꿈만큼의 삶을 살게 되며, 제 하는 모험만큼의 기적을 일으킨다. 쓰는 방법과 수단이 비상하고 파격적일수록 그가 감행하는 만큼 그만큼 비상하고 파격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니 내용만 갖추면 형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떠한 모양과 꼴도 다 괜찮고 좋을 뿐이지. 어떤 생김새의 그릇이든 그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하지 않은가. 악기로 치면 그 악기로 어떤 소리를 내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결코 낙담 낙심하거나 낙담상혼하지 말고 한번 숨을 크게 몰아 내쉬고는 새로운 더 좋은 기회, 더 큰 가능성을 찾아볼 일이다. 실로 뜻만 있으면 반드시 길은 있는 법이고, 없는 길도 새로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그뿐더러 예상 또는 기대 못 했던 상상 밖의 길도 나타날 것이다. 길이 나타난다기보다 보이지 않던 길이 찾는 사람 눈에는 꼭 띄고 말 테니까.
그것도 엉뚱한 곳에서 말이다. 과학자가 A라는 걸 찾다가 A대신 그 몇 배로 가치 있는 B를 발견 또는 발명하게 되는 경우가 있듯이 말이다. 결과는 어떻든 언제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는 과정 자체가 너무도 보람 있고 신나는 순간순간이 아니랴. 이 노력하는 즐거움, 예측을 불허하는 미지수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스릴과 흥분, 그 쾌감이야말로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기쁨이리.
한국인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 생각 좀 해보자. 미국 작가 짐 해리슨의 소설집 ‘The River Swimmer’에 수록된 중편 소설 ‘다른 나라’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은 7가지 삶의 지침을 제시한다.
1. 밖으로 나가 많이 걸어라.
2. 음식을 가려 먹으라.
3. 몸으로 못하면 눈으로라도 즐겨라.
4. 자신에 대한 유머감각을 갖고 매사를 웃어넘겨라.
5.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생각만 하라.
6. 욕심 많고 떫은 인간들을 외면하라.
7. 스스로를 성찰하는 삶을 살라.
이는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함을 안다는 안분지족과 구차한 중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긴다는 안빈낙도의 삶이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테디 루즈벨트(1858-1919)가 영어로 쓰인 가장 훌륭한 스토리라고 극찬한 바 있는 영국의 자연주의 박물학자 윌리엄 헨리 허드슨(1841-1922)의 ‘엘 옴부 : 남미에서 자라는 나무’ 이야기에 이런 대사가 있다.
“어서 오게. 친구 니간드로. 이 나무 그늘에 앉아 우리 얘기 좀 나누세. 이 오래된 옴부나무 잎에는 정치도, 야심도, 모사도, 적의도, 어떤 악감정도 없지 않은가. 이 옴부나무 잎들은 우리의 월계관이지. 도시 생활을 모르는 자네는 행복한 사람이야. 나도 자네처럼 초가지붕 밑에서 고요한 평원의 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 한때는 나도 좋은 옷을 입고 금으로 된 장신구를 몸에 걸치고 큰 집에 살면서 종들을 부리기도 했지만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었네. 꺾은 꽃마다 내 손을 찌르는 가시로 변했지. 내 형편이 좋을 때 나를 따르던 자들은 초라해진 내 모습을 보자 다 날 버리고 떠나버렸어. 그래, 지금 가난하지만 이 가난을 난 소중한 유산으로 내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네. 이 부족함으로 평화가 있을 것이니”
영국의 평론가 윌리엄 해즐릿(1778-1830)은 ‘개인의 신분에 대한 논고’란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생각에 세상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어떤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잘 달리는 말들과 사냥개들, 훌륭한 마차와 옷 등을 갖고 싶어 그런 것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내 주위에서 많이 본다. 그런데 나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무엇을 소유함으로써 빛나기보다는 무엇이든 남보다 더 잘함으로 뛰어나고 싶을 따름이다. 힘을 좋아하지만. 재산의 힘은 아니다. 뜀박질로 말할 것 같으면 사냥개 그레이 하운드보다 더 빨리 뛰어보고 싶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빨리 달리는 그레이하운드를 갖는다는 일이라면 나는 부끄러워할 것이다. 인격적인 신분의 성분을 내 소유물로 옮겨 전이시킬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세상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보다 그들이 소유하는 것으로 그들 스스로의 값이 매겨지는데 만족해한다.”
서양 속담에 ‘사람이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에 따라 부자가 아니고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다’라는 말이 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너무 적게 가진 자가 아니고 더 탐내는 자가 빈자’ 라고 설파하지 않았나. 얼마 전 영국 신문에서 보니 린 러트란드는 높이 2만 6천 5백 피트의 안나푸르나 제일봉을 오르기 위해 일곱 번째 히말라야 등정에 오를 예정이라고 했다. ‘난 기록 같은 것엔 관심 없어요. 산에서는 자신과 경쟁할 뿐이지요.’라고 말했다.
남자들에게는 산은 정복의 대상이지만 린에게는 산을 오르는 기쁨과 즐거움, 그 경험 자체가 중요하고 전부다. 무섭고 춥고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의 최선이 나타난다고 린은 말한다. 한겨울 꽁꽁 얼어붙었던 지각을 뚫고 솟아나는 풀잎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노래하듯 가슴 힘차게 뛰는 싱그러운 숨결 따라 사나운 비바람과 눈사태도 무서워하지 않고 린은 높이 산을 오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하나는 세상을 물 흘러가듯 살라는 말씀이었다. 흐르다가 낭떠러지를 만나면 폭포처럼 떨어지기도 하고 바위를 만나거든 바위 밑을 뚫거나 돌아서 굽이굽이 흐르는 유수와 같이 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세상살이가 등산하는 것과 같은데 산꼭대기를 향해 일로매진, 한눈 한 번 안 팔면서 남보다 먼저 정상에 올라 보려고 사력을 다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산 오르는 길 한 걸음 한 걸음을 마음껏 한껏 유감없이 즐기면서 살라는 말씀이었다.
날씨가 변하면 변하는 대로 달라지는 풍경 속에서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산속에 피는 꽃향기에 취하고, 골짜기를 흐르는 냇물에 손발도 적셔가면서 뛰노는 노루 사슴과 벗하다 보면, 또 비 온 뒤에 하늘에 무지개가 서고, 날이 저물어 어두워질수록 총총하게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에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온 세상천지가 한없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황홀지경이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 얼마나 멀리 가느냐보다 얼마나 무엇을 보느냐가, 얼마나 무엇을 보느냐보다 얼마나 무엇을 배우느냐가, 얼마나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얼마나 배운 대로 사느냐가 문제이며 해답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