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당시 진해는 지금의 진해와는 다른 곳이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는 임란 당시엔 웅천현 소속이었다.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 일대가 진해현이었으며, 지금도 관아 터와 동헌, 역대 현감들의 선정비가 남아 있다.
1592년 음력 6월 5일~6일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조선수군 연합함대는 당항포해전에서 크게 승리했다. 경남 고성군 회화면 당항포리에서 적선 26을 격파했다. 이날 조선수군이 승리할 수 있게 도운 민초들과 함안 육군의 공로가 높이 평가된다.
비록 설화이긴 하지만 고성 땅 주막의 기생이었던 월이는 술에 취해 고주망태가 된 왜군 첩자의 품속에 있던 지도를 살짝 고쳐 놓아 조선 수군이 승리할 수 있게 했다. 지도만 믿고 당항만으로 들어갔던 왜군은 속칭 '속싯개' 일대에서 퇴로가 막혀 이순신 장군에게 거의 전멸 당했다.
현재의 통영시 미수동 통영대교 아래인 착량(鑿梁)에서 거제도민 김모(金毛) 등은 이순신 장군에게 당포에서 도주한 적들이 견내량을 지나 당항포로 들어갔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6월 5일 아침 일찍 거북선을 앞세우고 착량에서 출발한 조선수군 연합함대가 당항포로 들어가는 입구인 당목에 이르렀다.
당목과 진해현은 바로 근처에 있다. 그날 함안군수 유숭인이 기병 1,100명을 이끌고 진해로 넘어와 진해 읍치의 성 안에 있는 왜군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사람을 보내어 당항포 내만의 지형에 대해 함안 육군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했다. 당항포 입구는 지세가 좁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바다가 넓어 충분히 해전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함안육군의 말을 믿고 당항포로 진입한 이순신 장군은 크게 승리했다.



진해 읍치가 있었던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 일대는 1594년 음력 3월 4일 제2차당항포해전 당시의 전적지이기도 하다. 진해선창에 있는 적을 추격하여 인근의 읍전포와 시굿포에서 각각 적선 6척과 2척을 격멸했다. 6.25전쟁 때는 최후 방어선을 지킨 마산방어전투가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관내에는 서북산, 여항산, 수리봉 등이 있다.
진해현 관아가 있었던 곳은 문화재로서 가치가 매우 높아 최근 발굴조사를 마친 상태다. 경내에는 수령이 400년 된 푸조나무 한 그루가 말없이 역사를 전하고 있다.
[이봉수 논설주간]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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