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시집 ‘사람’이 한국시인협회를 생각하는 시인들의 요구와 인물 선정 기준과 특정 인물에 대한 미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10일 만에 퇴장했다는 보도와 프랑스가 동성연애를 인정하는 14번째의 국가로 등장했다는 뉴스가 아주 대조적이었다.
볼테르라는 필명의 프랑스 계몽사상가 프랑솨 마리 아루에는 그의 ‘철학적인 편지들’에서 관용과 자유의 이름을 걸고 기존 질서의 악습과 폐해를 지적한다. 그는 어조는 온건하나 대담한 표현의 자유를 구사, 억압적인 종교의 획일성, 교회의 막대한 재력과 권력, 왕정의 압제와 횡포, 귀족의 특권과 사치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같은 국민으로서 귀족과 평민의 동등한 사회적 지위, 공평한 세제, 그리고 예술과 과학의 자유로운 탐구를 촉구한다. 그 자신은 그 누구 못지않은 신념과 용기의 사나이였으나 그는 신념껏 용기 있게 정열적으로 말한다.
“그대가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의견을 달리할지는 모르나 나는 내 목숨을 걸고 그대가 그대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지키고 옹호하겠노라.”
얼마 전 무가지 AM 뉴욕 메트로 뉴스 1면 톱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사랑은 사랑이다’란 플래카드를 양쪽에서 들고 있는 두 남자는 60여 년을 서로 사랑하며 같이 살아온 동성애자들이라는 사진 설명이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심리적으로 사랑은 사랑이라면 생리적으로 사랑(LOVE)의 상징적인 글자 ‘O’, ‘구멍은 구멍이다’ 아니겠는가 하고 자문하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인생이란 생각하는 사람에겐 희극이고 느끼는 사람에겐 비극이란 말이 옛날 그리스 격언에 있다.
어렸을 때 산에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개미새끼 같아 보였다. 그리고 국군의 날 군인 아저씨들이 시가행진하는 것이 병정놀이 같았다. 결혼 후 여름 바닷가에 가서 아이들과 놀 때면 어른들이 돈 많이 벌겠다고, 유명해지겠다고, 감투 쓰겠다고 애쓰는 것이 어린아이들이 열심히 모래성 쌓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나도 어렸을 때 인정이 많아서였는지 점심을 못 가지고 오는 반 친구가 있으면 같이 나눠 먹고 때로는 도시락 채 주기도 했다. 길을 가다가 헐벗은 거지 아이를 보면 입었던 옷까지 벗어주고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한테 야단맞곤 했던 기억이 있다. 추석 다음 날엔 학교 변소가 초만원이었다. 평소에 잘 못 먹다가 모처럼 기름진 음식을 먹었거나 과식한 탓이었으리라.
좀 더 생각해 보면 6.25 한국동란 때 어른들의 전쟁놀이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다치며 수많은 비극과 엄청난 불행을 겪었는가. 다른 사람들 얘기는 그만두고 내가 직접 겪은 일들만으로도 인생이 비극인 동시에 희극인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8.15해방 전 학교에서 공출한다고 칡넝쿨을 걷으러 산비탈을 기면서 손과 발, 팔다리가 가시에 찔리고 피투성이가 되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하루는 학교 방공호에 들어가 이를 잡아서는 종이봉지에 담으라고 했다.
많이 잡는 아이에게는 상까지 준다고 해서 나는 남보다 많이 잡아보겠다고 한 손에 종이봉지를 들고 또 한 손으로만 이를 잡는 대신 종이봉지를 입에 물고 두 손으로 부지런히 잡아넣었는데, 시간이 다 돼서 선생님께 드리려고 종이봉지를 들여다보니 이가 한 마리도 없는 게 아닌가. 나중에 생각해 보니 추운 겨울날 내복을 벗어 이를 잡으니 이도 추위를 못 견뎌 따뜻한 곳을 찾아 다 내 입속으로 기어들어 갔음에 틀림이 없다. 또 해방 이후 일본 사람들이 살던 ‘적산가옥’에 미군장병들이 살게 되면서 버린 쓰례기통에서 보물 찾듯 ‘고무장화’ 콘돔을 주워다 고무풍선처럼 신나게 불고 다녔다. 장난감이라곤 없던 시절에 새롭고 신기한 횡재였으니까.
이런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모두 희극이고 느끼자면 비극 아니겠는가. 아마 느끼기를 너무 심하게 했더라면 나는 벌써 오래전에 인생을 비관해 염세자살이라도 하고 말았으리라. 반대로 인생이 희극일 뿐이라고 생각했더라면 허무주의에 빠져 케세라 케세라 될대로 되라며 취생몽사했으리라.
그러나 내 나름대로 진지하게 열심히 살아온 데는 일찌감치 내가 제3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인 것 같다. 인생은 물론 희-비극임이 틀림없지만, 그보다는 모험이란 생각에서 매사를 탐험하듯 용기와 신념을 갖고 열정으로 살아왔다. 남들이 다 안 된다고 엄두도 못 내는 일이면 더욱 해볼 마음이 생겼고 아무도 생각조차 못 해본 일일수록 더 해보고 싶었다, 남들이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새로 길을 만들어 가면서 살아보고 싶었다.
어차피 인생이 소꿉놀이 같다면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그리고 매사 너무 심각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그래도 각자 제멋대로 제 마음대로 제 가슴 뛰는 대로 살아보는 것 이상 없지 않겠는가 싶다. 프로이드도 성욕 애욕을 의미하는 ‘리비도(libido)’가 삶의 원동력이라고 했다지 않는가.
흔히 삶은 불공평하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영어로 ‘죽음은 모든 사람을 평준화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세상에 태어나는 건 그렇지 않아 보인다. 요즘 한국에선 금수저니 은수저니 동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수저론이 회자되고 있다지만 우리 좀 살펴보자. 사람이 쓴맛을 본 연후에라야 단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듯이 수고 없이 주어진 건 제대로 누릴 수 없지 않던가. 우리 모두 빈손으로 왔으니 뭘 얻고 갖게 되던 다 남는 장사하다가 다 놓고 떠나게 되지 않는가.
어디 그뿐인가. 세상사는 이치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고, 잃는 게 있으면 뜻밖에 얻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는 동안에도 평준화가 항상 이뤄지고 있다. 숨을 내쉬어야 들이쉬게 되고, 배설해야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으며, 시장기가 최고의 반찬이라고 하듯 말이다. 또 한 예로 사람들의 선호 대상인 건강하고 잘생긴 미남과 미녀의 잣대를 살펴보자.
몸은 건강해도 마음이 불구이거나 외모는 아름다워도 마음씨가 고약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1831년 출간된 장편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 영어명은 ‘노트르담의 꼽추’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1956년 개봉된 영화에선 안소니 퀸이 맡은 ‘콰지모도’ 역은 겉이 추해도 속이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픽션에선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로도 그런 예를 하나 들어 보자.
26살의 리지 벨라스케스는 한때 세상에서 가장 추한 여자로 불렸다. 키 157센티미터, 몸무게 26Kg에다 지방이 별로 없어 뼈만 앙상한데다 한쪽 눈까지 멀었고, 조로증과 아무리 음식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거미손 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2015년 10월 28일 미 의회 상-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연방 차원의 학교 왕따 방지법 입법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든 그녀의 부모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로 자라다 유치원에 간 첫날부터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고, 17세 되던 해 유튜브에 뜬 자신의 영상을 보고 ‘괴물이다’, ‘불에 타 죽어버리라’는 등의 악성 댓글을 대하며 많이 괴로웠지만 극복했다. 텍사스 주립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그녀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용감한 사람’이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올렸다. 자신과 다르다고, 상품화된 마네킹 같지 않다고, 남의 진가를 못 알아보는 사람들이야말로 눈뜬장님들이 아니랴. 예부터 겉이 화려하면 속이 빈약하다고 외화내빈이라 하지 않았나. 약방의 감초 같은 얘기 하나 해보리라.
내가 젊었을 때 바람둥이 친구가 하나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이 친구야말로 일찌감치 도통한 입신지경에 도달하지 않았었나 싶다. 이 친구는 얼굴이 못생겼거나 몸맵시가 없어 남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여자들만 상대하는 것이었다. 친구 말로는 못생긴 여자일수록 속궁합은 훨씬 더 좋더란다. 어쩜 그래서 자고로 미인은 흔히 불행하거나 병약하여 요절하는 일이 많다고 미인박명이라 하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덕이 없다고 재인부덕하다 하는 것이리라.
재주고 재산이고, 명예고, 권력이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에 상당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남 보기에 좋다고 또는 나쁘다고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는 얘기다. 그러기에 삶은 공평한 것임이 틀림없어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