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웃을 일

이태상

유머는 인격으로 스스로를 웃기는 일이라면 코미디는 성격으로 남을 웃기는 일일 테고, 조크는 실격으로 말을 웃기는 말장난일 뿐, 아무도 웃기지 못하는 것이리라. 몇 년 전 뉴욕타임스지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었다. 

 

그가 두 은행을 턴 무장강도범 피의자로 피소될 때까지 현직 경찰관 알렌 쇼트 형사는 그 누가 봐도 모범적인 경찰관이고 시민이었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장난감을 모아 정성껏 포장해서는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이웃에 사는 어린이들 생일날에는 자기가 키우는 조랑말도 태워주며 언제나 자진해서 기꺼이 남을 돕고 좋은 일 많이 하고 사는 그는 친구와 동료들 사이에서도 늘 농담 잘하고 놀기 좋아하는 익살꾼으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그가 지금은 보석이 허락되지 않는 중범으로 감옥에 들어가 있다. 학교에 다니는 두 딸의 아빠인 (당시) 37세인 쇼트 씨는 최근 두 은행에서 2십1만 달러를 강탈한 강도죄로 기소되었다. 한 번은 3일간의 사법경찰관 세미나에 참가한 후 귀가 도중 뉴저지주(州) 남단 케이프 메이에 있는 한 은행에서 9만 2천6백90 달러를, 또 한 번은 머서 카운티에 있는 한 은행에서 11만 7천3백10달러를 털어간 것 외에도 1989년 8월부터 그는 뉴저지주 중부 및 남부 지역에서 7개 다른 은행들도 턴 혐의를 받고 있다고 미연방수사국 FBI이 발표했다. 

 

쇼트 씨는 케이프 메이 카운티 로우어 타운십에 있는 미들랜틱 내셔널 뱅크에 작업복 차림에다 가짜 수염을 달고 짧은 검은 머리 색깔의 가발을 쓴 머리에 야구모를 그리고 색안경을 끼고 들어가 금전 출납 은행원에게 총을 들이대 은행 금고를 열어 그가 들고 간 운동 백에 돈을 넣게 한 후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이때 이 은행에 들어서는 당일 비번의 형무소 간수 고객에게 은행원이 눈짓으로 알려 그가 뒤따라 나가 지나가는 경찰차로 추격, 쇼트 씨를 검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근무해 온 경찰서 주변 사람들은 쇼트 씨가 로빈 후드처럼 그동안 은행을 털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어 온 것 같다고 말한다. 그와 가장 절친하게 지내 온 한 동료 경찰관은 이와 같은 말을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의 어린 시절에서 하나의 실마리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떠나 그는 엄마와 무능하고 무뚝뚝한 의붓아비 밑에서 불우하게 자랐다. 집세를 못 내서 번번이 세 든 집에서 쫓겨나 이사를 많이 다니는 동안 그는 학교를 열네 번이나 옮겨 다녔다고 한다. 이상이 한 인격 스타 이야기라면 다음은 분명히 한 성격 스타가 ‘그것도 성적 문제로’ 수백만 미국 어린이들의 사랑받는 ‘아이 같은 어른’ 스타에서 어른들의 쓴웃음을 자아낸 ‘어른 같은 아이’ 스타로 변신한 얘기가 되겠다. 

 

애들이 즐겨 보는 1985년 개봉된 영화 ‘피위의 큰 모험(1985)과 ‘빅 톱 피위(1988)나 1986년부터 미국 CBS에서 방영해 온 에미상 수상의 토요일 아침 TV쇼 ‘피위의 놀잇간’에 등장하는 피위 허맨의 실제 인물, 폴 로이븐스(1952 - )가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의 어느 한 포르노 성인영화관에서 자위행위를 하다 ‘성기노출죄’로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의 캐릭터 ‘피위 허맨’이란 이름부터가 우연이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어린애 오줌 누일 때 한국에선 우리말로 쉬-쉬-하듯 영어로는 ‘위-위’하고 ‘피-(P-)’는 ‘고추’란 뜻의 ‘페니스’의 머리글자인 데다 ‘허먼’은 영어로 여자를 가리키는 ‘She’의 목적격 ‘Her’에다 남자란 ‘맨’을 갖다 붙인 복합어 곧 합성어로, 여자 대용 대신 자신의 몸을 스스로 자위한다고 볼 수 있을 법도 하지 않은가. 어떻든 이와 같은 뉴스와는 대조적으로, ‘조지’에다 우리말로는 수풀을 일컫는 ‘부시’ 제41대 미국 대통령이 1991년 클래런스 토마스(1948 - )를 미국 대법원 판사로 지명하면서 “그보다 더 자격 있는 적임자가 없다.”고 한 말 같지 않은 말은 그야말로 실격의 조크조차 못 되었으리라. 

 

전(前) 부하직원이었던 미국의 법학 교수 아니타 힐(1956 - )과의 성희롱 사건으로 ‘스타’가 되었든 클래런스 토마스 판사는 ‘스타’이되, 실격 ‘스타’ 아니 땅에 떨어진 ‘별똥’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2015년에 나온 ‘풍자, 자유의 언어 웃음의 정치’란 책이 있다. 2015년 3월 16일자 중앙일보 BOOK 페이지에 게재된 ‘종교개혁-산업혁명-과학혁명, 그 바탕에는 풍자문화 있었다’는 제목의 서평에서 김환영 기자는 “번역해서 해외로 수출해 도서 한류를 몰고 올 수도 있는 역작”이라 극찬하면서 저자인 전경옥 숙명여대 정치학 교수는 풍자를 이렇게 정의한다고 인용했다. 

 

“편견-악덕-모순-부조리-어리석음 등을 비난하거나 이를 개선하려 는 기대감을 갖는 빈정거림이며, 보이는 것에만 가치를 두는 것을 경계하는 대안으로, 대중 담론을 형성하는 방법이며 대중민주주의의 장치이다.”

 

이 정의는 쉽게 한 마디로 웃을 일이라는 소리가 아닐까. 덴마크의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의 동화 ‘황제의 새 옷(1837)’에 나오는 어린아이처럼 세상은 웃을 일 천지가 아닌가. 우리가 입는 옷의 패션이나 쓰는 모자 또는 감투를 비롯해서 벗은 몸에 새기는 문신이며 치장하는 화장과 장신구 등 그리고 각종 의식과 행사가 다 웃기는 일들 아닌가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어린애도 울지 않고 빵긋빵긋 웃으며 태어난다. 우주 만물이 다 웃고 있다. 해와 달과 별들이 그렇고, 구름과 바람이 그러하며 나무나 풀이, 풀꽃과 눈꽃이, 빗방울과 이슬방울이 다 그러하다. 내가 웃을 때 거울 속의 내고 웃고 있듯이 모두가 웃고 있지 않나. 우리는 기뻐도 웃고 슬퍼도 웃는다. 그래서 ‘웃기다’와 ‘슬프다’의 복합어 합성어로 ‘웃프다’란 말도 있나 보다. 

 

영어에 Have a last laugh라고 최후에 웃는 자가 참으로 웃는 자란 말이 있지만, 우리가 고고의 소리를 내는 순간부터 숨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이란 아니 사랑이란 무지개를 타고 이 지상으로 잠시 내려와 실컷 놀다가 죽음이란 미지의 다른 안락한 무지개를 다시 타고 우리의 고향 코스모스 다른 별나라로 갈 때까지 웃을 일뿐이리. 너무너무 다행스럽고 신비로워 무한히 감사할 뿐이리. 

 

영어로 “소원이 말이라면 거지도 탈 텐데”란 속담이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말로는 꿈 밖이라느니, 꿈에도 없었다느니, 꿈꾼 셈이라 한다. 이 말대로 그 누가 백마가 아닌 흑마를 타고 세계의 모든 약소국 약소민족의 인권 챔피언으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투사가 된다면 오죽 좋으랴.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트레이스 태생의 검투사 출신 스파르타쿠스(BC 111-71), 멕시코의 농지 개혁가 에밀리아노 사바타(1879-1919), 아르헨티나 출생의 쿠바 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1928-1967), 그리고 1960년대에 흑백 인종의 통합이 아닌 분리주의를 주창하며 흑인의 자존자립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자기방어 자위책으로 정당방위의 폭력도 불사하자고 흑인의 자존자긍심을 고무, 선양한 흑인 인권 투사 말콤X(1925-1965 그의 본래 성씨 Little이 다른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백인들의 노예 시절 백인들이 지어준 것이라며 버리고 ‘X’로 개명했음)같이 말이다. 

 

그럴 경우, 그가 할 일은 무엇보다 먼저 지배계급이 독선 독단적으로 저희들만을 위해 설정해 놓고, 강압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집행하고 있는 갖가지 부당한 법률과 규칙과 관습에 도전하는 일일 것이다. 법이나 상식보다 힘, 수단보다 목적, 진실보다 거짓, 다수보다 소수, 빈자보다 부자, 약자보다 강자, 여자보다 남자, 자유주의나 진보주의보다 보수주의나 복고주의를 옹호하는 법규와 관습에. 그래서 그동안 소수 특권층만이 즐기던 ‘살만한 삶’을 우리 모두 다 같이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이럴 경우, 다시 말해 그 누가 성공했을 경우, 세상이 뒤집혔다고 열광한 나머지 복수심을 불러일으켜서는 도로아미타불이다. 그렇게 되면 “하늘에 계신 우리 하늘님 아버지”하는 대신 “땅속에 계신 우리 땅님 어머니” 부르면서 남성 백인 지배체제에서 여성 유색인종 지배체제로 바뀌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조심하고 피해야 할 함정이 흑백 논리다. 마치 세상 한쪽에는 악인만 있고, 또 한쪽에는 선인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형편과 상황에 따라 모든 비백색 유색인종, 비선민인 이방인, 비기독교인인 모든 미신자 이교도, 그러다가는 너와 나,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오로지 나 혼자만 옳다는 유아독선 유아독존이 되고 말 테니까. 

 

이와 같은 유아독선과 유아독존적 가치관이 유사 이래 인류 역사를 통해 온갖 잔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천하만행을 여호와 하나님, 기독교, 민주주의, 자유세계 또는 공산주의, 노동자, 농민, 아니면 그 어떤 왕실과 귀족 양반이나, 그 어떤 제국 제왕 천황폐하, 위대한 그 누구 그 무엇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미화시켜 오지 않았는가.

 

십자군을 비롯해 사람사냥 아니면 황금 사냥에 나선 서양의 해적들이 반항하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대량 학살, 거의 다 멸종시키고, 복종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들은 노예로 삼아 백인들의 식민지와 제국을 건설해 왔다. 이와 같은 가치관이 최근엔 한국의 분단, 캄보디아의 초토화, 니카라과의 붕괴 작전, 포크랜드섬, 그라나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한국전과 월남전을 정당화하거나 합리화 미화시켜왔다. 

 

한편 이렇게 전횡적인 가치관이 잘못된 것이라고 믿고 반대하는 반항의 정신을 가진 이상주의자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역적, 반도, 반동분자, 이단자, 광인, 악인, 죄인, 깜둥이, 빨갱이, 노랭이로 몰려 박해받고 희생된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폭군을 몰아내기 전에 우리 각자 가슴과 머릿속에 있는 폭군부터 몰아내야 하리라. 이를 앞서 깨닫고 우리보다 먼저 이 지구별에 잠시 머물다 떠난 선각자 코스미안 칼릴 지브란(1883-1931)이 남긴 그의 우화집 ‘방랑자(1932)’에 나오는 비유담 하나 우리 함께 음미해 보자.

 

눈물과 웃음

 

땅거미 질 때 이집트 나일강가에 승냥이 비슷한 들개 하이에나와 악어가 만나 서로 인사가 아닌 수사 말을 나누었다.

 

“요즘 어떻습니까, 악어 씨?”

 

하이에나가 묻자, 악어가 대답했다.

 

“좋지 아니하오이다. 때때로 고통과 슬픔에 복받쳐 내가 울기라도 하면 남들이 저건 악어가 거짓으로 흘리는 위선의 눈물일 뿐이라고 하니 내 기분이 여간 상하지 않는 게 아니라오.”

 

그러자 하이에나가 말했다.

 

“그대는 그대의 고통과 슬픔을 말하지만 잠시 내 말도 좀 들어보오.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 경이로운 기적에 감탄, 기쁨에 넘쳐 온 자연과 함께 내가 소리 내어 웃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저건 실컷 배부르게 먹이 많이 잡아먹고 좋아서 웃는 하이에나의 잔악(殘惡)한 웃음소리일 뿐이라고 한다오.”

 

극히 상식적인 얘기지만 한 사람의 웃음은 때론 다른 사람의 눈물이고, 또 한 사람의 눈물은 또 다른 사람의 웃음이다. 비근한 예로 우산 장사와 양산 장사가 그렇고, 의사와 환자, 유가족과 장의사가 그렇지 않은가. 부처님 앞에 공양드리거나 어떤 귀신한테 굿이라도 해서 대학입시, 사법고시 등 어떤 시험에 운 좋게 합격한 자식 부모의 웃음꽃은 낙방거자 부모의 울상 아닌가. 

 

부처님이나 예수님 또는 어떤 귀신이 사람에게 길흉화복을 정말 주는지 또 참으로 신(神)이 정말 존재하는지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확실히 알 수 없겠지만, 설령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신이 신다운 신이라면 약육강식의 자연계와 인간세계에서 무조건 강자의 편을 들거나 어떤 특정 인종이나 개개인의 이기적인 기도나 기구를 편파적으로 들어주는 그런 신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즐겁고 기쁜 일이 있을 때 이것이 다 내가 잘나고 예뻐서 하느님이 내게만 내리시는 축복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차라리 나만큼 축복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느끼는 미안지심에서 악어같이 거짓으로라도 눈물 좀 흘리는 편이 더 좀 양심적이 아닐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불행에 같이 울고 가슴 아파하기 전에 당장 잠시 나타난 그야말로 뜬구름같이 덧없는 내 행복부터 먼저 만끽하면서 하이에나처럼 웃어보는 편이 더 좀 인간적이고 솔직하며 정직하지 않을까. 

 

아, 이렇게 세상에는 악어탈을 쓴 심약한 토끼나 늑대탈을 쓴 천진난만한 병아리가 있을 수 있으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6.05.23 10:17 수정 2026.05.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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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